4. 1. 젖은 흰 종이
아래가 있다면 위가 있을 것이다. 상대적이기 때문이다. 난 바탕으로 상대적인 것을 매우 배척하는 형상이나 이것은 꽤나 재밌을 듯하다. (B)
난 윗물이 맑아야 아랫물이 맑다는 속담을 괴상한 방법으로 아주 묘하게 뒤틀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B)
아, 잊지 말라, 이곳은 클래식 음악을 소개하는 자리가 맞다.
이제 앞을 볼 시간으로, (E) 그에 걸맞은 곡을 소개할 것이다. 이번에 소개할 곡은 F. Chopin의 Étude Op. 10 No. 3 in E Major이다. 흔히 '이별'이라는 부제로 많이 부른다.
라는 부제에 대한 말을 내 주둥이에서 꺼내게 된 것 그 자체를 독자는 괴이하다고 생각할 필요가 있다. 그러나 내 생각엔 이 화가 이것에 대해 다룰만한 기하학적 모습을 갖추고 있지는 아니하기에, 일단은 ―아마, 약간의― 낙락함을 발휘하도록 하자.
쇼팽은 이 곡을 자신의 곡들 중 이렇게 감미로운 선율은 생애 처음이라며, 자신의 놀라운 선율에 경의를 표하였다. (G)
하나 주목할만한 것이, 총 27곡의 쇼팽의 에튀드 중에서 Dbop. 36의 3곡을 제외한 24개의 곡, 또 그중에서 쇼팽이 작곡한 느린 템포의 곡은 겨우 3곡으로, 이만하면 청자가 이 곡들에 주목해야 할 점이 있다고 봐야만 할 것이다.
24곡의 쇼팽 에튀드들 중 느린 곡에 해당하는 것은 Op. 10 No. 3, Op. 10 No. 6, Op. 25 No. 7이다. 나머지 곡들도 나중에 소개될 것이다. 그러나 이곳은 일단 Op. 10 No. 3의 자리이니 비켜주시길 ―무릎을 꿇으며― 요청한다.
아무리 생각해도 쇼팽 에튀드의 느린 곡들은 돋보이기 그지없다. 단순히 쇼팽의 천재성인 걸까? 그중 첫 번째의 느린 곡인 이 곡은 앞뒤로 굉장한 곡들을 끼고 있다. Op. 10 No. 2는 쇼팽 에튀드 중에서도 손꼽을 정도로 테크닉이 어렵기 그지없고, Op. 10 No. 4는 Op. 10 No. 3과는 너무나 대조적인 전개가 보인다. 쇼팽은 어쩌면 자신이 생각해도 작곡한 그 에튀드들이 너무나 어려워 그 사이에 연주자가 쉴 수 있는 파트를 집어넣은 것일 수도 있다.
아마 내 기억으로 이 곡은 쇼팽이 무언가를 역력히 생각하며 작곡한 곡은 아닌 것으로 알고 있다. 그럼에도 이 곡은 참으로 완영하게 작게나마 거대한 그의 음악 세계를 보여준다. 즉 작곡가도 의도치 않게 ―아마 자신도 제대로 발견하지 못했을― 엄청난 세계를 관객에게 선보이는 것이다.
이 곡은 A-B-A의 형식, 즉 세도막 형식으로 이루어져 있다. 세도막 형식이란 완결된 세 부분으로 이루어진 곡으로, 이때 1부와 3부, 즉 A 부분끼리(또는 A와 A′) 비슷한 모습을 띄고, 가운데 위치한 B 부분은 이와 대조를 이룬다. 특히 이 곡의 B 부분에서 음악가 임윤찬은 사무치는 그리움이 느껴진다고 하였다.
그렇다면 이 곡은 쇼팽의 그리움이 느껴지는 곡일 것이다. 이게 어디서 발현되었겠는가? 쇼팽이 생각했을 때 처음으로 곡에 반영된 "그렇게 감미로운 선율" (G), 이것이 큰 영향을 선사했을 것이다, 그 감미로운 선율을 당신은 어떻게 듣고 싶은가?
내 생각엔 꽤나 신선한 방법(A♭)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그에 따라 오늘의 연주자는 블라디미르 소프로니츠키(Vladimir Sofronitsky). 우리에게 결코 평범하지 않은 신기로운 연주를 선보여주실 것이다.
F. Chopin Étude Op. 10 No. 3 in E Majo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