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구 밖에서 살아갈 수 있을 거라는 착각
발행은 좀 늦어지겠지만 이걸 쓰는 시점은 1월 10일이다. 원래도 우주같이 무한하고 신비로운 소재는 좋아하는데 마침 별들에게 물어봐라는 드라마를 시작하고 최근에는 가타카와 관련된 글을 써서 우주에 대한 것을 읽고 싶었다. 이 책은 신간으로 나오던 때부터 장바구니에 담겨 있었는데 연말에 셀프 선물 우선순위에 밀려서 보류되어 있었다. 김보영 작가님의 스페이스 오디세이 트릴로지 3부작도 읽고 싶었는데 마침 도서관에서 이 책을 빌릴 수 있어서 이 책을 먼저 읽어 보기로 했다.
제목부터 너무 흥미롭지 않나? 화성으로 떠날 수 없다니... 모두가 화성으로 떠나려고 혈안인 이 시대에 어째서 화성으로 갈 수 없다고 하는 걸까? 지극히 개인적인 감상이지만 저 제목이 너무 자극적이어서 한 번쯤 읽어보고 싶게 만들었다. 작가의 요지는 대충 이렇다. 화성으로 영구히 이주하는 것은 상상할 수 없을 만큼 위험 변수가 많고 삶을 유지하는데 있어서 지구에게 과의존할 수밖에 없을 것이라는 거다. 또한 화성이나 기타 다른 행성으로 이주해 살만한 환경을 구성하는데 필요한 기술을 모두 이루어 내고 나면 그 기술을 지구에서 활용하면 된다는 것이다. 가장 대표적인 이 요지만 읽고서도 책이 너무 궁금해서 도서관에서 빌려 읽었다.
책은 3장으로 이루어져 있는데 나는 2장이 주로 화성이주에 관한 이야기이고 1장은 지구의 시간과 역사, 3장은 태양계 너머의 세계와 시간에 대해서 이야기하고 있다. 전부 재미있게 읽었지만 나는 의외로 1장이 가장 인상 깊었다. 화성에 갈 수 없는 이유에 대해서 알고 싶었지만 그것보다도 지구와 우주의 시간에 대해서 읽으면서 뭔가 마음이 들쑥날쑥 해졌다. 모두들 알고 있겠지만 우주의 역사는 오래됐고 지구의 시간은 우주의 역사에서 그다지 큰 부분을 차지하지 않으며 그 지구의 시간 속에서 인류의 역사는 더 짧고 우리의 삶은 새발의 피 수준이다. 그 이 내용은 내가 굉장히 요약한 것이긴 하지만 책에서 길게 풀어쓴 것을 읽고 있으면 굉장히 나의 삶이 아무것도 아니게 느껴지기도 하고 그 와중에 노력하며 살고 있는 게 놀랍기도 하다. 몇만 년은 아무것도 아닌 시간 속에서 모든 게 덧없게 느껴지기도 했고 의미 있게 느껴지기도 했다. 지구의 시간과 앞으로 태양계에서 벌어질 일을 생각하면 지금이 가장 살기 좋은 때라는 생각도 들었다. 실제로 책을 읽으면서 한 노트에다가 이렇게 적어놨다. '지금이 가장 살기 좋고 우리는 언젠가 다 죽는다. 시간도 덧없다, 몇만 년이 너무 가깝게 느껴진다.' 우주적 관점으로 보면 몇만 년은 가깝고 인간의 삶 측면으로 봤을 때 몇만 년은 너무 길지만 우주에 관련된 책을 읽고 있자면 정신도 우주의 시간에 동화된 것 같았다.
책에서 재미있게 읽었던 부분 두 개를 뽑아보자면 바이오스피어 2와 테라포밍을 뽑고 싶다. 바이오스피어 2는 미국 애리조나에 유리로 된 건물을 지어두고 지구의 모든 환경을 조성해 둔 일종의 인공지구로 2년씩 50세대에 걸쳐 100년 동안 인간이 사는 것을 목표로 실행됐던 프로젝트라고 한다. 작은 지구를 형성해 완전히 밀폐된 공간에서 생활해 보는 취지는 너무 흥미로웠는데 예상치 못한 변수로 실험이 실패했다고 한다. 처음에는 이산화 탄소 농도가 너무 낮아지더니 이후에는 산소 부족과 이산화 탄소 부족의 고리가 이어져 실험에 실패했다고 한다. 또 참가자들도 그곳에서 2년 동안 가만히 생활하기보다는 밖에 나갔다 오는 등의 일탈행위도 즐겼다고 하니 변수가 없었어도 완전한 성공은 안 됐을 것 같다. 그리고 이것도 외부환경에 의존할 수밖에 없어서 어떻게 보면 설계도 좀 허술했다고 생각된다. 그럼에도 실험의 취지가 너무 흥미로웠고 생태계를 구현했다는 점에서 기억에 남았다.
테라포밍은 말 그대로 Terra(지구)를 forming(형성)하는 것인데 지구가 아닌 곳을 지구적인 환경으로 바꾸는 것을 의미한다. 대표적인 예로 화성은 지구와 가장 환경이 비슷하니 화성에 있는 얼음을 녹이고 산소를 만들어 내고 오존층과 비슷한 대기층을 만들어 내는 과정을 통해 지구환경을 조성하자는 주장이 있다. 하지만 저자는 이런 환경을 조성하는 행위에서도 기술력의 한계와 그 기술을 개발하면 굳이 화성에서 살 필요가 없음을 주장하고 있다. 이 부분에서는 테라포밍의 개념 자체가 굉장히 흥미로웠다.
한 가지 더 흥미로웠던 점은 지구인이 우주에서 꽤나 초기 생명체 일 수 있다는 점이었다. 우주에는 우리와 다른 생명체가 존재할 가능성이 높지만 그 생명체가 꼭 인간이나 동물처럼 고차원적 생명체가 아닐 수 있다는 것이다. 지금 존재하는 외계 생명체는 단세포 동물로 이루어졌을 가능성이 높고 지구의 생명체가 우주적으로 초기에 형성된 생명체라면 우리가 생각하는 외계인은 아직 존재하지 않을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다. 그리고 우주는 매우 넓기 때문에 지구형 행성을 찾더라도 그 거리가 멀어 어떤 생명이 어떻게 존재할지 정확히 계산할 수 없다는 점도 재미있었다.
'화성으로 이주'하면 떠오르는 사람은 많이들 일론 머스크 일거라고 생각하는데 이 책에서도 일론 머스크 이야기가 많이 나온다. 일론 머스크는 화성으로 이주하겠다. 다행성 문명을 주축 하겠다. 우주선을 재활용하겠다 등의 주장을 펼치지만 실제로 그에게는 우주에서의 위험을 대비할 계획이나 능력, 기술은 없다고 한다. 그가 화성으로의 이주를 강력히 주장하는 이유는 순전히 경제적인 이유임을 강조하면서 일론 머스크를 비판하고 있다. 평소에 일론 머스크의 파격적인 행보를 자주 접하는 사람이라면 그에 대한 호불호를 떠나 이 의견에 동의할 수 있을 것이다.
이 외에도 우주와 우주로의 이주에 대한 흥미로운 내용을 많이 담고 있는데 과학적인 것을 잘 모르더라도 이해하기 쉽게 풀어두어서 읽는데 큰 무리는 없었던 것 같다. 책을 읽고 있으면 우주로 떠나는 것에 회의감을 느끼지만 그만큼 흥미로운 건 틀림없다. 그리고 설명하기 어려운 것들에 대해서 내가 몸소 겪어 보고 싶었는데 시간보다 빠르게 달리기가 그 예시다. 책에서는 빛보다 빠른 속도로 가게 된다면 허수의 시간이 등장한다고 이야기하는데 그 허수의 시간이 뭔지 이해하기 어려워서 허수의 시간을 눈으로 보고 싶다고 생각했다. 죽기 전에 우주에 갈 확률과 빛보다 빠른 속도로 움직일 가능성은 거의 없겠지만 우주에 대한 흥미는 계속될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