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 찍어먹기
릿터는 민음사에서 격월로 발행하는 문학 격월지다. 내가 릿터를 처음 알게 된 건 지난 글에서 이야기했듯이 교수님의 추천이었다. 나는 좋아하는 사람이 하는 말을 유독 더 잘 듣는 경향이 있는데 그 교수님은 내가 아주 좋아하는 분이셨던 관계로 나는 문학 좀 읽으라는 충고에 릿터를 구매해 읽었다. 마침 50호를 기념하며 나온 빨간 표지의 책은 뭔가 가슴을 콩닥콩닥 뛰게 했다. 유망주라는 주제를 달고 나온 커버스토리가 너무 재미있었다. 한 명씩 자기가 생각하는 유망주들을 소개해 주는데 다들 어쩜 그렇게 재치 있게 글을 쓰는지 소개 글만 읽었을 뿐인데 소개된 많은 책을 읽어보고 싶게 했다.
커버스토리가 주요 소재이긴 하지만 문학잡지인 만큼 당연히 문학이 실려있다. 산문, 시, 단편소설 가끔은 만화도 실리는 듯하다. 작가, 배우 등 다양한 사람들의 인터뷰도 실린다. 산문란을 펼쳤다. 산문도 전문지식이 있는 사람이 쓰니 그냥 읽는 에세이와는 달랐다. 자기 자랑하는 에세이집만 읽다가 진짜 산문을 읽은 기분이었다. 본질적으로 그게 그거지만 나에게 에세이와 산문은 다가오는 느낌이 다르기에 산문으로 다가와서 좋았다. 마침 갯가재와 관련된 산문이 연재를 시작했는데 나와 같이 출발하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시 부분은 처음에는 어려워서 정말 글을 읽기만 하고 넘어갔다. 어려운 시 그나마 쉬운 시 골고루 있었지만 시를 어렵다고 생각하는 마음이 박히니 더 어려웠다. 시... 시란 무엇일까 시를 왜 읽을까... 이런 생각을 계속했던 것 같다. 그래서 시를 읽는 것에 대한 생각을 가지고 교수님과의 상담에서 시를 어떻게 읽어야 할까요? 시는 어떻게 이해하는 장르일까요? 하고 물어봤다. 운과 행, 은유와 상징 이런 것들을 고려해 가며 읽어야 한다고 은연중에 생각하고 있었는데 돌아온 대답은 '그냥 느끼는 대로 읽으면 돼요'. 그렇구나! 그냥 느끼는 대로 읽으면 되는 건데 왜 이리 어렵게 생각하고 살았을까? 시를 읽는 것은 여전히 쉽지 않지만 필사하기와 그냥 읽기를 실천하면서 시라는 장르와 친해지려는 노력을 하고 있다.
단편에 대해서 하고 싶은 말도 참 많다. 나는 그전에 단편소설이라고는 어린이 창작소설 단편선 같은 단편만 읽었던 것 같다. 그래서인지 꽃게와 백사장이 그려진 어린이 소설집 표지가 반사적으로 생각이 난다. 되려 연작소설이나 장편소설은 많이 읽어 보았는데 어린이용이 아닌 단편소설은 이때 처음 읽어 보았던 것 같다. 50호의 두 번째 단편이 너무 좋았다. 서로의 손가락을 교환하다니...! 내용 자체는 sf가 아니지만 소재는 sf같기도 하고 그것보다 애초에 서로의 손가락을 교환해 상대방과 닮아 간다는 아이디어는 어떻게 떠올린 거지? 왜 나는 저런 소재를 그동안 생각해 보지 못했을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저 소재도 송재고 내용과 여운도 마음에 깊이 남았다.
이외에도 여러 작품들이 실려 있기 때문에 시간 때문에 책 읽기 어려운 사람들은 한 권 사서 읽어봐도 좋을 것 같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여기저기에 빌려줄 테니 읽으라고 하지만 돌아오는 반응은 영 냉담하다. 그래 읽지 마라... 내가 두 번 읽어야지... 이런 마음이 든다.
50호를 지나 51호도 나왔고 커버스토리는 한강작가의 노벨상 수상과 관련 있는 주제였다. 국가적 경사이니 그럴만하지.. 사실 한강 작가님이 노벨상을 받기 이주 정도 전에 나는 맨부커상을 받았던 작품인 채식주의자를 읽었었다. 좀 읽기 힘든 작품이었는데 커버스토리와 박혜진 편집자님의 설명을 들으니 내가 왜 읽기에 힘겨웠는지 알 수 있어서 원래 힘겨워하면서 읽는 문학이구나 그 안에 회복이 있구나 하는 걸 알게 되었다. 여러모로 내가 책을 읽고 다양한 방면에서 생각할 수 있도록 돕고 있다. 특히 시를 읽는 것에서 많은 도움을 받고 있다. 이번에 김수영 문학상을 수상한 윤지양 시인의 시가 실려 있었는데 완전히 이해하진 못하더라도 참 좋았다. 좋았다는 표현이 참으로 단순하지만 형용할 수 없는 좋음도 있는 거다. 나는 좋았다에 많은 걸 포함해 윤지양 시인의 시가 좋았다.
내가 쓰는 글들을 읽다 보면 어렵지 않게 릿터가~ 릿터에서~ 하는 것들을 찾을 수 있다. 그건 릿터가 내 문학 읽기의 틀을 잡아주는데 많은 도움을 주었기 때문일 거다. 이 잡지를 읽지 않았다면 무엇을 토대로 책을 읽고 있을지 잘 가늠이 되지 않는다. 아마 이것저것 찾아서 읽고 있기야 했겠지만 나는 상상력이 풍부한 편은 아니라서 그런지 무엇을 읽고 있을지 상상하기는 어렵다. 아마 문학은 안 읽고 역사의 신비나 우주로 떠나는 그런 이야기들을 읽고 있었을지도 모른다. 그래서 릿터는 내가 문학을 읽는데 현재진행형으로 많은 도움을 주고 있는 가장 주요한 활자라고 생각한다.
사실 50호부터 읽기 시작했지만 8 천보 걷기의 여파로 중고서점을 다니면서 지난 호수를 몇 권 더 샀다. 읽은 것도 있고 안 읽은 것도 있는데 지난 권수더라도 그 안에 실린 작품의 가치가 변하진 않을 것 같아 사두고 읽기로 했다. 최근에는 48호를 다 읽었는데 내 추구미 OO이라는 커버스토리뿐만 아니라 그 안에 실린 다양한 작품들도 커버스토리를 포괄하고 있는 것 같아 책을 만드는 사람들은 참 대단한 사람들이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나는 별거 아닌 사람이지만 감히 릿터를 읽으라고 권유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