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2월 31일 광화문에 있는 교보문고에 다녀왔다. 그동안 열심히 걸어 다니면서 모았던 포인트, 책 사읽으면서 모은 교보문고 포인트와 출석미션으로 받는 교환권, 거하게 한번 쓰고 10월 즈음부터 다시 알음알음 모았던 은행포인트를 다 모아보니 대략 2만 원이 조금 넘었다. 마음 같아서는 다 통장에 집어넣고 싶었지만 걷기 포인트는 교보문고 교환권으로 바꾸거나 별로 관심 없는 기프티콘으로밖에 교환이 안 돼서 열심히 앱테크를 한 나에게 내 돈 조금 보태서 책을 사주기로 했다. 연말에 친구도 없는 나는 기왕 책을 사는 김에 나 자신과 놀자고 마음먹고 광화문에 있는 교보문고에 다녀왔다.
장바구니에 담아두고 찜해둔 책들 중 가장 읽고 싶은 두 권을 골라 편하게 받을 수 있게 미리 주문해 두었다. 이미 포인트는 다 소진했지만 연말을 함께 보낼 친구는 없어도 연말을 함께하는 장학금은 들어온 터라 가서 구경하고 몇 권 더 사보자 하는 마음으로 집을 나섰다. 미리 주문한 책을 받고 서점을 돌아다니며 구경을 했다. 내가 사는 동네 교보문고보다 크고 매대도 많아서 이것저것 구경하는 재미가 있었다. 표지가, 제목이 마음에 드는 책들을 들춰 보고 첫 페이지를 읽어보기도 하면서 책을 구경했다. 사람은 누구가 자기가 좋아하는 무언가가 있고 그게 잔뜩 있는 공간에서 내심 들떴다. 그렇게 한두 시간 정도 둘러보다 고심(?) 끝에 두 권을 더 구매했다.
문학만 읽으려는 의도는 없었는데 어쩌다 보니 소설 세 권과 시집 한 권을 샀다. 시집을 살지 다른 영어 원서를 살지 고민했는데 임의로 펼친 한 시가 너무 충격적이어서 이 시집을 사야지 하고 구매했다. 얼마 전에 시집은 무엇으로 사느냐고 한탄을 했는데 책이 잔뜩 쌓인 곳에 가니 마음 가는 대로 사게 되었다. 완전히 충동적으로 산건 아니고 얼마 전에 김수영 문학상을 수상하신 윤지양 시인의 시집이었고 릿터에 실린 몇 권을 읽어보았을 때 시가 좋다고 느꼈기에 시집을 사게 된다면 저 시집을 사게 될까? 하고 생각했는데 진짜로 그 시집을 사게 됐다. 천천히 읽어보려고 한다.
초등학생 때 정도였던 것 같은데 나는 기억이 안 나지만 엄마가 나한테 어린이날 선물로 책을 주신적이 있다고 한다. 내가 책 읽는 걸 좋아하니 책을 주면 좋아할 거라고 생각했다고 한다. 옛날에 선물로 책을 받고 싶다고 하자 카드를 한 장 쥐어주고 언니랑 알라딘 중고책방에 가서 원하는 만큼 책을 사 오라고 했던 기억도 있으니 엄마가 그렇게 생각할 법도 하다. 그런데 내가 어린이날 선물을 받고 떨떠름한 표정을 지었다고 한다. 그러고 나서 어른들이 어린이날에 뭐 좋은 거 받았니? 하고 물어봤을 때 '책이요... 엄마가 선물로 숙제를 줬어요...'라고 말했다고 한다.
기억은 안 나지만 참 나다운 발언이라고 생각한 다음에 한참을 웃었다. 책이 좋아도 누가 읽으라고 주는 책은 숙제처럼 느껴졌나 보다. 초등학생의 어린이날은 꽤 특별하니 그럴 수 있지... 아마도 엔터테인먼트를 기대했던 것 같다. 정작 그 문제의 책이 우리 집에 있는 수많은 책들 중 어떤 책이었는지도 잘 기억이 나지 않지만 그 숙제는 다 하지 못했던 걸로 기억한다. 우리 엄마는 아직도 가끔씩 저 이야기를 하곤 한다. 그래서 나도 가끔 책을 사려고 구경하면 저 일화가 떠오르곤 한다.
지난 12월 31일에도 나에게 주는 선물이라며 책을 잔뜩 사고 나니 저 이야기가 떠올랐다. 요즘에도 책을 읽고 간단한 독후감을 적으니 어떻게 보면 책 읽고 독후감까지 쓰는 과정이 숙제이긴 하겠다는 생각을 했다. 연말에는 선물이었던 게 연초에는 숙제가 되는 거다. 하지만 누가 하라고 강요한 적은 없으니 그냥 스스로와의 약속을 잘 지키면 된다. 그리고 나는 그걸 꽤 잘하는 편이다. 그래서 힘내서 읽어보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