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으로 냉소적이면서도 열정적인 자세
참으로 오랜 시간 동안 글을 쓰지 않았다. 200페이지도 되지 않는 글을 이주가 넘게 읽었다. 글을 쓰라는 알림을 무시한 채로 괴로워하면서 책을 읽지 않았다. 왜 그랬는지는 나도 잘 모르겠다. 꾸역꾸역 다 읽고 나니 글을 다시 쓰기 시작해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동안 참 많은 일이 있었다. 나는 좋아하는 남자를 잊지 못했고 수영을 다시 다니다가 다시 멈추었으며 빵집 마감 아르바이트를 시작했다가 삼일을 내리 근육통에 시달렸고 운전면허를 땄다. 그러는 동안 책 한 권을 다 읽지 못했다.
이 책은 도서전에서 사 온 책중 마지막 책이다. 식물과 영화 책을 사고 버진 수어사이드까지 샀는데 그래도 영화 관련된 책은 사야 하지 않나 싶어서 장바구니에 담아두었던 책중 출판사가 있는 곳을 찾아가 사게 된 책이다. 원래는 영화와 담배라는 책을 사려고 했는데 설명을 들어보니 영화와 시라는 책이 더 마음에 들 것 같아서 영화와 시를 사게 되었다. 책을 살 때 판매하시는 직원분과 소소한 이야기를 나누었는데 그 에피소드가 참으로 귀여웠다. 내가 영화 평론을 전공한다고 하니 그분은 문학 평론을 전공했다며 공감대를 나누었고 어느 대학을 다니냐고 묻기에 미국 대학에 다닌다고 하니까 맙소사! 하면서 쓰러지는 개그? 같은 것을 선보이셨는데 그게 참으로 재미있었다.
영화를 전공하고 문학을 쓰는 작가가 영화와 시에 대해서 쓰는 이야기인데 냉소적인 태도가 참으로 마음에 드는 글이었다. 나도 글로 보기에는 영화에 대한 사랑이 가득한 사람으로 보일 수도 있겠다만 나는 꽤나 냉소적인 편이다. 영화를 집중해서 보지 못하고 자꾸 다른 짓을 하고 싶어 한다. 이 작가도 영화를 보기 시작한 순간부터 끝날 무렵까지 잠들어 버린 화려한 전적을 자랑하고 있는데 참으로 공감이 갔다. 내가 영화를 공부하고 전공하는 거랑 별개로 열정이나 사랑을 잔뜩 줄 수 있는 성격이 아닌 거다. 그 외에도 애국심, 애향심, 애사심 이런 것들에 대한 내소적인 태도도 나랑 비슷해 보여서 앞으로 몇 번은 더 읽겠구나 하는 느낌이 들었다.
이렇게 냉소적인 것처럼 보이지만 읽다 보면 이 사람이 영화와 시에 대해서 가지고 있는 애정 자체는 깊다는 걸 느낄 수 있다. 어려운 용어나 영화감독들의 이름을 술술 말해내니 말이다. 그냥 태도 자체가 냉랭한 것뿐이다. 나는 최근에 웨스 앤더슨 감독의 필모그래피를 열심히 보고 있는데 냉소적이었던 나의 인식이 점점 좋아지고 있는데 마침 이 책을 읽고 있는 중이어서 내가 영화 보는 게 조금 더 기대되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