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로소 고독을 즐기게 되었을 때.
오사카의 밤은 불빛으로 가득했다. 네온사인이 깜빡이는 간판들은 정신없지만 정갈했고, 다양한 인종이 섞여 분주하게 오가는 사람들 그 사이에서 들려오는 익숙지 않은 멜로디가 한데 어우러져 도시의 정수를 보여주는 듯했다. 알아들을 수 없는 일본어가 이곳저곳에서 흘러나왔지만, 이상하게도 그 언어의 벽은 내게 불편함보다는 묘한 편안함을 주었다. 꼭 내가 이 모든 걸 이해할 필요는 없다는 사실이 잠시나마 책임감에서 해방된 듯한 자유를 느끼게 했다.
사거리에서는 자동차 경적 소리조차 들리지 않았다. 고요하다는 말로는 부족했다. 그곳엔 조용하지만 살아있는 공기가 있었다. 사람들의 발걸음 소리, 멀리서 들려오는 자전거 벨소리, 그리고 간간이 스쳐가는 바람의 속삭임만이 나를 감쌌다. 도시는 이렇게도 차분할 수 있다는 사실이 낯설고도 반가웠다. 낯선 곳에서의 고독함은 내가 자처한 것이었다. 익숙한 일상에서 벗어나고 싶다는 마음 하나로 가방을 꾸렸고, 그 마음은 이제 나를 이곳으로 이끌었다.
하지만 나는 한낱 이방인이었다. 길가에 서서 무언가를 골똘히 바라보는 사람들의 표정을 읽으려 애썼고, 그들 사이로 조용히 스며들고 싶다는 바보 같은 생각도 했다. 어쩌면 이들은 내가 여기 있다는 사실조차 모를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그들의 일상이 되는 순간을 상상했다. 저녁 식사를 위해 음식을 사 들고 가는 뒷모습, 서로를 향해 웃음을 터뜨리는 교복 입은 친구들, 그리고 급히 지하철로 향하는 발걸음 속에서 나는 나만의 이야기를 찾아내고 있었다.
낯설지만 따뜻한, 고독하지만 평온한. 오사카의 밤은 그렇게 내게 작은 쉼표를 주었다. 익숙하지 않은 것 속에서 편안함을 느끼고, 이방인의 시선으로도 스며들고 싶어 하는 나 자신을 발견했다. 여행은 아마도 이런 순간들을 위해 존재하는 것일지도 모른다. 이곳이 나의 이야기에 스며드는 만큼, 나도 이 도시의 기억 속 한 조각이 되기를 바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