낯선 여행의 시작을 알리는 신호음처럼 찬바람이 귓가를 스칠 때, 낡고 오래된 오코노미야끼 가게의 문을 열었다. 세월의 흔적이 곳곳에 스며든 그 가게는 마치 시간이 멈춘 공간 같았다. 벽에는 퇴색한 메뉴판과 손님들이 남기고 간 낡은 흔적들이 있었고, 바닥에는 수없이 오간 발걸음의 흔적이 고스란히 새겨져 있었다. 30년은 족히 되어 보이는 이 가게는 돌아가신 할머니와 할아버지가 생각나는 사장님 부부의 모습 덕에 더 따스하게 느껴졌다.
밤 9시를 훌쩍 넘긴 시각, 가게 안은 조용하면서도 익숙한 온기로 가득 차 있었다. 접시에 올려진 오코노미야끼의 따끈한 김이 올라오고 달콤하고 짭조름한 향이 공기 속에 퍼졌다. 낯선 공간에서 느낀 친절한 맛 덕분에 드디어 나의 여행이 시작되었음을 실감했다. 일본에는 아직도 흡연이 가능한 실내 음식점이 많다는데, 이곳 역시 테이블 위에 낯익은 재떨이가 자리 잡고 있었다. 하지만 대놓고 연초를 태우는 사람은 없었고 대신 멀끔한 정장을 입은 손님이 궐련형 전자담배를 태우며 함께 온 일행과 함께 열띤 대화를 나누는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알아듣지는 못했지만, 그들의 대화는 퇴근 후 나누는 직장 이야기가 아닐까 짐작했다. 누구나 그렇듯 업무에 대한 푸념이나 마음이 맞지 않는 상사에 대한 불만 같은 것일 테지. 그들의 웃음과 고개를 끄덕이는 제스처 속에 언어를 초월한 공감의 순간이 스며 있었다.
작고 소박한 입간판 하나만이 가게의 존재를 알리고 있었지만, 문 안쪽으로는 말로 다할 수 없는 세월이 숨 쉬고 있었다. 문고리가 닳을 정도로 많은 사람들이 드나들었을 그 공간은, 저마다의 이야기를 품고 있었다. 나는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내 인생에서 과연 단 하나를 위해 이토록 애써본 적이 있었던가. 그 생각에 나도 모르게 실소가 터져 나왔다.
오코노미야끼를 한 입 베어 물며 이 가게에 깃든 세월과 사람들의 이야기를 상상해 보았다. 사장님 부부의 주름진 얼굴과 정성스러운 손길에서 오래도록 지켜온 삶의 무게가 느껴졌다. 낯선 도시의 한 구석에서 마주한 이 순간은 단순히 여행 중 한 끼 식사가 아니었다. 그것은 내가 지나온 시간과 앞으로 걸어갈 길을 돌아보게 만드는 작은 쉼표였다. 낡고 평범하지만, 그래서 더 깊은 울림을 주는 공간. 그곳에서 나는 내 삶의 문고리를 한 번 더 붙잡아보겠다고 다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