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해뜨기 전이 가장 어둡다

밤과 새벽 사이.

by 유 정

발 디딜 틈 없는 인천공항. 수많은 사람들이 자신만의 목적지를 품고 걸음을 재촉한다. 어디로 가는지 알 수 없는 그들 속에서 나도 한 점, 점처럼 섞여 있다. 이곳의 북적임에 휩쓸려 바쁘게 눈과 다리를 움직인다.


여행은 아직 시작도 하지 않았는데 벌써부터 돌아올 걱정이 마음 한구석을 차지하고 있다. 여행에서 돌아오는 것이 싫다는 이 마음, 혹시 여독이라는 게 어쩌면 이런 마음에서 시작된 그리움이지 않을까? 그렇다면 나는 아직 떠나지도 않은 여정에서 이미 여독에 시달리고 있는 셈이었다.


밤과 새벽의 경계가 흐릿한 시간, 체크인 카운터의 인파를 지나 보안검색대를 통과한다. 비행기 탑승구로 향하는 길목은 비교적 한산하다. 여러 비행기들이 대기 중인 창밖의 조명들이 마치 별빛처럼 반짝인다. 시간이 멈춘 듯 고요한 이 순간, 마음은 이미 하얗게 덮인 구름 위를 비추고 있다. 잠시 숨을 고르고 깊게 들이마신 공항의 공기는 차가웠다. 하지만 그 차가움마저도 설렘으로 바뀌어버린다. 입에서 뿜어져 나오는 흰 입김은 마치 내 안의 흥분과 기대를 시각적으로 드러내는 것만 같았다. 이제 이곳을 떠나면 내가 익숙했던 모든 것들이 저 멀리 희미해질 것이다. 여행은 언제나 그렇게 시작된다.


목적지에 도달하기 전의 불확실함, 그러나 그것이야말로 여행을 여행답게 만드는 요소다. 비행기에 올라앉아 작은 창 너머로 희미하게 밝아오는 동쪽 하늘을 바라본다. 나를 기다리는 낯선 풍경들, 그리고 아직 만나지 못한 나 자신. 이 순간이야말로 내가 가장 기다려온 시간임을 깨닫는다.


익숙한 곳을 떠나는 발걸음은 늘 무겁지만, 그 속에는 수천 가지의 가벼움이 숨겨져 있다. 짐이 무겁게 느껴질수록 마음은 더 가벼워지고, 길 위에 놓인 불확실함은 곧 내 발자국으로 채워질 것이다. 그렇게 나는 오늘, 밤과 새벽 사이의 공항에서 나를 발견하는 여행을 시작한다.


keyword
이전 01화도피하는 삶