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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피하는 삶

도망친 곳에 낙원이 있을까?

by 유 정

하루가 끝나갈 무렵, 도시의 불빛은 나에게 말한다. ‘넌 어디로 가고 싶니?’ 그 질문 앞에 나는 한동안 아무 대답도 하지 못했다. 도망치고 싶었다. 무언가를 해보려 했지만 그저 서 있을 뿐이었다. 막막함, 불안, 그리고 아주 작게 꿈틀대는 희망. 이 모든 감정이 얽혀 나를 이곳에 서 있게 했다.


언제부터였을까. 출근길에 밀려드는 사람들 속에서 숨이 턱 막히는 기분이 들었다. 매일 반복되는 하루가 마치 내 삶을 잠식하는 것 같았고, 그 속에서 나는 점점 작아졌다. 마치 나에게 주어진 하루가 내 것이 아닌 느낌이었다. 나는 도피하듯 현실 속에서 빠져나왔고 어디로 가야 할지 모르겠는 이 순간에도 나는 여전히 나를 찾아 헤매고 있다.


이제 나는 자유다, 그렇게 생각했는데 이상하게도 마음이 가벼워지지 않는다. 현실을 벗어나면 모든 게 괜찮아질 줄 알았다. 하지만 막상 벗어나 보니 내가 가장 두려운 것은 자유였다. 내가 원하는 게 무엇인지조차 모르는 나 자신을 마주하는 것이 이렇게 힘든 일이었다니.


아침에 눈을 뜨면 더 이상 가야 할 곳이 없다. 정해진 시간표도, 나를 부르는 상사의 목소리도 없다. 처음에는 그것이 해방처럼 느껴졌다. 하지만 이내 시간이 갈수록 자유는 나를 끝없는 질문으로 몰아넣었다. ‘그래서 이제 너는 무엇을 할 건데?’ 그 질문에 답하려 애썼지만, 나의 머릿속은 텅 비어 있었다. 매일 숨만 쉬어도 통장에서 새어나가는 고정지출이라는 이름의 밧줄이 내 손목과 발목을 엮어 위협하고 있었다.


현실에서 도망치면 괜찮아질 줄 알았다. 하지만 막상 벗어나 보니, 나를 막고 있던 건 현실이 아니라 나 자신이었다. 무언가를 원하면서도 그 ‘무언가’를 정확히 알지 못한 채 떠나온 나는, 지금 어디에도 발을 딛지 못하고 허공을 맴돈다. 바람에 위태롭게 흔들리는 나뭇잎처럼, 나의 마음도 갈피를 잡지 못하고 흔들린다. 그러다 문득, 아주 작게 스며드는 생각이 있다. 그래도 이곳이 나의 출발점이 될 수는 있지 않을까? 도피하는 삶이지만, 끝끝내 도망친 곳에 낙원이 있지 않을까?


이제라도 나에게 진짜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물어볼 기회가 주어진 것일지도 모른다. 내가 어디로 갈지는 아직 모르겠다. 다만 조금은 알 것도 같다. 어떤 곳으로 도망가도 결국 나 자신과 마주하게 된다는 것을. 꿈꾸었던 땅을 밟지 못하더라도 나는 내 그림자를 따라 걸어보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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