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망한 여행도 힐링이 된...다?

by 유 정 Jan 16. 2025

 우리는 흔히 여행이 삶을 바꿀 마법 같은 경험을 선사해 줄 거라 기대한다. 하지만 때론 여행은, 특히 아무런 계획 없이 무작정 떠난 여행은, 그 기대를 산산이 부숴 놓기도 한다.


 여름의 밤 나는 "어딘가로 떠나야겠다"는 충동에 휩싸여 가방을 쌌다. 숙소 예약? 없다. 가고 싶은 곳? 애매하다. 그저 머릿속에 떠오르는 낯선 지명이 반짝였을 뿐이다. 그렇게 기차에 올라타고, 세 시간이 지나 도착한 곳은 이름만 근사한 소도시였다. 역사적 가치? 글쎄. 맛집? 기대 이하. 그래도 "무언가 특별한 게 있겠지"라는 희망으로 골목길을 기웃거렸지만, 특별한 것은커녕 적막한 거리가 나를 맞이했다. 


 도착하자마자 드는 생각은 "내가 여기 왜 왔지?"였다. 그저 지루한 일상을 도망치고 싶었던 마음이 무지성으로 가득 찬 여행을 만들었고, 결과적으로 아무런 수확도 없는 하루를 선사했다. 그러다 골목 끝에서 만난 오래된 서점에 들어갔다. 군데군데 벗겨진 표지가 대부분인 낡은 책 냄새는 좋았지만, 취향에 딱 맞는 문체를 찾지 못해 읽을 수 없었다. 서점 주인 할아버지가 말을 걸었지만, 대화가 이어지지 않아 머쓱한 웃음만 주고받았다. "그래도 나름 정겨웠다"며 스스로를 위로했다.


 점심은 현지 추천 맛집이라는 작은 국숫집에서 해결했다. 하지만 면발이 덜 익어 있었고 국물 맛도 내 입맛엔 지나치게 짜서, 결국 반도 먹지 못한 채 자리에서 일어났다. 옆 테이블에 앉아 있던 지역 주민들 사이의 웃음소리를 들으며 나도 모르게 "내가 외지인인 게 너무 티 나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도 그들의 유쾌한 대화 덕에 잠시나마 외로움이 사라졌다.


 저녁 무렵, 근처에 위치한 작은 언덕 위에서 본 풍경은 나쁘지 않았다. 도시 전체가 한눈에 들어왔고, 석양은 꽤나 근사했다. 하지만 그 순간도 오래가진 않았다. 바람이 점점 거세지면서 카메라를 꺼내기 전에 추위에 못 이겨 다시 내려와야 했다. "그나마 좋은 장면도 남기지 못했구나"라는 자책이 뒤따랐다.


 허탈감은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절정을 찍었다. 쓸모없는 기념품 한두 개와 몇 장의 밋밋한 사진이 가방 속을 차지하고 있었다. SNS에 올릴 만한 사진도, 친구들에게 자랑할 에피소드도 없었다. "왜 그 도시를 갔냐"는 질문에 머뭇거리며 대답할 나 자신이 떠올라 털털 웃고 말았다.


 이처럼 여행은 꼭 성공적일 필요는 없다. 때론 아무것도 얻지 못한 여행이야말로 우리가 삶에서 진짜로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돌아보게 만든다. 실패했으니, 다음엔 더 나은 이야기가 기다리고 있을 거라고 믿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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