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기록] 단편영화선 2 : 3월 서울영화센터

by 굴러가유


<9 순 어머니와 퍼즐 맞추기> 강헌구, 12분

투박하지만 정성이 가득 담긴 영상이다. 첫 순서의 강렬함 때문인지, 혹은 생소한 주제에서 시작해 예상치 못한 묵직함을 남겨서인지, 네 편의 영화 가운데 가장 인상 깊게 남았다.


제목만 보았을 때는 연세 지긋한 어머니와 퍼즐을 맞추는 따뜻한 이야기일 것이라 생각했다. 그러나 이 영화에서의 ‘퍼즐’은 단순한 놀이가 아니다. 어머니의 머릿속에 남아 있는 오래된 기억의 조각들을, 가족들이 함께 맞추어 가는 과정이다. 아들은 어머니의 고향을 회상하며 과거의 마을 지도를 완성하려 한다. 커다란 화이트보드를 들이는 것에서 시작해, 수차례 그리고 지우기를 반복한다. 누나와 매형, 그리고 당시 마을에 살던 어르신까지 모여 기억을 보탠다. “이게 맞네”, “저기 그 집이었지”라는 말들이 오가고, 그 과정 속에서 자연스럽게 웃음이 피어난다. 기억의 조각들이 모여 하나의 스케치가 완성되면, 아들은 이를 다시 정교하게 다듬는다. 서울역사박물관을 찾아 자료를 참고하고, 결국 커다란 도화지 위에 색을 입혀 하나의 지도를 완성해 낸다. 단순한 그림이 아니라, 시간을 되살려낸 결과물이다. 이를 바라보는 어머니의 표정은 그 모든 과정을 충분히 설명해 준다.


영화를 보는 내내 ‘왜 이런 일을 하는 걸까’라는 질문이 따라다닌다. 그러나 마지막에 이르면, 그 질문은 더 이상 중요하지 않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이 영화가 말하는 것은 결과가 아니라 과정, 그리고 그 과정 속에서 만들어지는 연대이기 때문이다. 나라면 과연 이렇게 할 수 있었을까. 솔직히 쉽지 않았을 것이다. 많은 시간과 노력이 필요한 일이다. 그래서 더더욱 아들의 정성과 사랑이 깊게 다가온다. 우리는 종종 이러한 시간을 들이기보다, 값비싼 선물과 같은 물질로 마음을 대신하려 한다. 하지만 이 영화는 말한다. 진짜 선물은 결과물이 아니라, 함께 만들어가는 시간 그 자체라는 것을.


지도는 목적이 아니다. 그 과정이 곧 선물이다. 이 영화를 보며, 효도를 미루거나 형식적으로 대했던 나 자신의 모습이 떠올랐다. 마음 한편의 죄책감을 적당히 덮어두려 했던 지난 행동들이 부끄러워진다. 이 작품은 점점 희미해지는 연대의식에 대해 조용히 질문을 던진다. 각자의 삶에 치여 가족조차 돌보지 못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비록 거창하지 않더라도, 함께 이야기하고 웃을 수 있는 순간은 우리를 다시 이어준다. 마을 지도를 만드는 일처럼 특별하지 않더라도, 작고 엉뚱한 시도들이 결국 우리를 하나로 묶어줄 수 있다.


<물건의 주인> 김나경, 13분

아버지가 돌아가신 지 한 달. 딸 정숙은 자신의 딸 아라와 함께 아버지의 유품인 카세트테이프를 중고로 판매하려 한다. 영화는 두 모녀가 할아버지의 집을 정리하고 나오는 장면으로 시작한다. 아직 한 달밖에 지나지 않았지만, 그들에게서 큰 슬픔은 겉으로 드러나지 않는다. 정숙은 어린 시절 살던 마을을 오랜만에 찾았고, 거래를 위해 직접 사람을 만나기로 한다. 길이 잘 기억나지 않는다며 아라에게 도움을 청하지만, 아라는 무심하게 반응하며 마지못해 따라나선다. 길을 헤매던 중, 정숙의 태도는 서서히 변한다. 잊고 있던 기억이 되살아난 것인지, 어느 순간부터는 스스로 길을 이끌기 시작한다. 표정 또한 점점 밝아진다. 그러나 거래 상대를 만난 순간, 분위기는 달라진다. 남자의 모습이 아버지와 겹쳐 보이며 정숙의 마음이 흔들린다. 당당하던 태도는 사라지고, 결국 거래를 망설이게 된다. 이를 눈치챈 아라는 물건을 팔지 못할 것 같다고 말한다. 잠시의 망설임 끝에, 정숙은 돈을 받지 않겠다고 하며 물건을 건넨다.

이 장면에서 정숙의 눈빛은 인상적이다. 슬픔과 그리움이 스쳐 지나간 자리에는, 어딘가 가벼워진 듯한 해방감이 남는다. “사람은 물건으로 기억하는 게 아니다”라는 대사는 영화의 메시지를 분명하게 드러낸다.

우리는 종종 물건에 담긴 기억 때문에 그것들을 쉽게 버리지 못한다. 그것은 단순한 물건이 아니라, 어떤 시간과 사람을 붙잡고 있는 매개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렇게 붙잡고 있는 동안, 오히려 기억은 점점 멀어지는 것은 아닐까.


영화 속 남자는 할아버지의 테이프를 듣기 위해 카세트 플레이어를 구한다고 말한다. 그 물건이 정말 필요한 사람에게 가야 한다고 생각했기 때문인지, 정숙은 더 많은 돈을 제안받고도 이를 거절한다. 나였다면 어땠을까. 아버지의 물건을 돈과 바꾸는 일은 쉽게 받아들여지지 않았을 것이다. 오히려 그 물건이 필요한 사람에게 전달되는 것이, 서랍 속에서 먼지만 쌓인 채 잊히는 것보다 더 의미 있게 느껴진다.


어쩌면 기억은 붙잡는 것이 아니라, 흘려보낼 때 비로소 이어지는 것일지도 모른다. 그 물건을 통해 흘러나오는 테이프의 소리처럼, 어떤 존재는 다른 방식으로 계속 살아갈 수 있기 때문이다.



<완숙 씨의 외장하드> 박율례, 15분

영상에 담긴 이야기로 한 사람을 얼마나 변화시킬 수 있을까? 인생의 황혼에서 자신의 시간을 외장하드에 저장해 온 사람과 그를 돕는 친구의 노력으로 친구와의 우정과 인간의 존엄에 대해 이야기해보고자 한다.




<그냥 열심히 일만 하면 되는 줄 알았지> 남현우, 26분

의료급여 심사를 받기 위해 아들의 금융정보 제공 동의서가 필요한 현자. 그러나 그녀에게는 치매를 앓는 남편 태완뿐, 유일한 아들과는 5년째 왕래가 끊긴 상태다. 현자는 매일 무거운 리어카를 끌며 폐지를 줍는다. 하루를 버텨낸 뒤 집으로 돌아오면, 태완은 변함없이 환하게 웃으며 그녀를 맞이한다. 그 일상이 그녀를 겨우 지탱하고 있다. 아들의 동의를 받을 수 없는 상황에서, 주민센터는 가족해체신청서를 권한다. 동시에 노인 일자리 사업을 같이 신청한다. 더 이상 폐지를 줍지 않아도 되고, 의료급여 심사도 통과할 수 있을 것이라는 희망이 생긴다. 오랜만에 현자의 얼굴에 여유가 스친다. 그러나 그 기대는 오래가지 않는다. 심사 결과는 탈락. 노인 일자리로 얻은 근로소득이 기준을 9,200원 초과했다는 이유였다.

그 순간, 모든 것이 무너진다. 다시 리어카를 끌고 길 위로 나선 현자. 인도로 다니지 말라는 경찰의 경고, 차도로 나가자 울려대는 경적 소리. 위태롭게 쌓인 폐지는 결국 쏟아지고, 그녀 역시 무너져 내린다. 집으로 돌아온 현자는 아무 일 없다는 듯 자신을 반기는 태완을 끌어안는다. 영화는 그 장면에서 멈춘다.

최근 나 역시 이와 비슷한 일을 겪었다. 아르바이트로 번 소득이 기준을 몇 만 원 초과했다는 이유로 국민연금과 건강보험료 납부 대상이 되었다. 안정적인 직장이 있는 것도 아닌데, 한 달에 10만 원 가까운 금액을 내야 하는 상황이 버겁게 느껴졌다. 억울함과 막막함에 여러 기관에 문의하고 해결 방법을 찾으려 애썼다. 결국 부담을 조금 줄이긴 했지만, 그것도 일시적인 조치일 뿐이었다. 이 경험 덕분에 영화 속 현자의 상황이 더 이상 남의 이야기처럼 느껴지지 않았다. 20대인 나조차 이렇게 흔들리는데, 현자는 얼마나 막막했을까.


우리는 종종 거리에서 리어카를 끌고 폐지를 줍는 어르신들을 마주한다. 안쓰럽다는 마음과 동시에, 위험해 보인다는 생각을 하기도 한다. 그러나 이 영화를 통해 깨닫게 된다. 그 위험은 개인의 선택이 아니라, 사회가 만들어낸 결과일 수도 있다는 것을. 리어카는 차도로 다녀야 한다는 사실도 처음 알았다. 과연 누구를 위한 규칙일까. 생존을 위해 선택한 방식이 오히려 더 큰 위험으로 내몰리고 있는 것은 아닐까.


이 영화를 보고 난 뒤, 같은 장면을 다시 마주하게 된다면 이전과는 다른 시선으로 바라보게 될 것 같다. 쉽게 판단하기보다, 그 상황에 놓이게 된 이유를 먼저 떠올리게 될 것이다.


이 작품은 묻는다. 지금의 제도는 과연 누구를 위해 존재하는가. 그리고 우리는 그 안에서 어떤 사람들을 놓치고 있는가. 마지막에 이르러 깨닫게 된다. 이 단편의 주인공은 단지 ‘현자’ 한 사람이 아니다. 우리 사회에서 점점 밀려나고 있는 수많은 어르신들이다. 그리고 그들과 우리의 거리를 어떻게 좁힐 것인가에 대한 질문이, 이 영화의 진짜 메시지다.

금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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