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계약만료
2024년 12월.
학교에도 크리스마스가 찾아왔다.
특수반 교실에는 커다란 트리가 자리 잡았고 선생님은 아이들에게 캐럴을 틀어 주셨다.
하지만 그 캐럴에 신이 난 건 본인의 관심사가 아니면 반응이 없는 자폐아이들보다는
40이 넘어 감수성이 풍부해진 40대 선생님들과 나였다.
커다란 트리를 꾸미고 캐럴을 틀어 놓으니 이 겨울도 얼마 남지 않았음이 느껴졌다.
더불어 나의 1년 계약만료 날짜 또한 얼마 남지 않았음이 떠올랐다.
설렘과 걱정을 한 아름 안고 시작한 특수아동 보조로서의 나의 일이 이제 며칠 뒤면 끝이었다.
난 퇴근하며 하루에 하나씩 1년의 나의 흔적을 챙겨 집으로 가져갔다.
하루는 읽으려고 갖다 놓은 책을,
하루는 커다란 텀블러를,
또 하루는 추울 때 입으려고 놓았던 경량 패딩을,
그렇게 난 퇴근할 때마다 학교에 놓아두었던 물건을 하나씩 집으로 가져갔다.
내 흔적을 치울 때마다 선생님들은 아쉬워요, 내년에도 그냥 또 하세요, 진짜 다음 주면 마지막이세요,,를 얘기하며
너무도 아쉽다는 눈빛을 보냈다.
그리고는 아쉬움을 밥으로 달래는 우리나라 사람들답게 아쉬우니 밥 한 끼를 외치며 맛집이라는 중국집에서 거한 밥 한 끼를 사주셨다.
초등학교가 방학을 했다.
그날은 정말 마지막 날이라며 특수선생님이 아주 거한 프리미엄 한우갈비 도시락을 배달시켜 주며 또 한 번의 밥 한 끼를 대접해 주셨다.
우와~를 연발하며 맛있게 싹싹 먹은 그 프리미엄 도시락을 마지막으로 이제 나의 일도 끝이 났다.
마지막으로 학교에서 신었던 슬리퍼와 아이들을 보조할 때 사용하였던 작은 크로스백을 챙겨 왔다.
크로스백 안에는 각종 스티커와 클레이, 휴지, 물티슈 등등 맡았던 아이가 학급에서 돌발 행동 시 달랠 수 있는 여러 가지 것들이 들어있었다.
이제는 필요 없는 물건이라 가져올까 그냥 거기서 다 버릴까 잠시 잠깐 고민하다가 1년의 흔적이 싹 다 없어지는 것 같아 일단 집으로 들고 왔다.
그렇게 난 또다시 전업주부가 되었다.
학교 방학은 우리 집에도 돌아왔다.
큰애 작은애의 밥, 밥, 밥을 차려주는 돌밥시대가 다시금 왔다.
하지만 난 여름방학 때처럼 단기 아르바이트를 찾지 않았다.
이제는 취미가 되어버린 당근알바 앱을 뒤로하고 난 학교에서 일할 계획에 맞춰 서울시 교육청 일자리를 뒤지기 시작했다.
이제 시작해 보자.
이젠 보조인력이라 불리는 봉사자 말고 경력증명서를 떼어주는 근로자가 되어보자.
45세에서 46세가 된 2025년 1월.
난 잘 못하는 컴퓨터를 다시금 끌어안고 자기소개서를 다듬으며 새로운 직업 찾기를 시작했다.
계속 고치고 고치다 보니..
자소서 안에 내가 내가 아닌 듯,
넌 누구니? 질문하면서 몸은 편하지만 뭔가 맘은 조급한 방학이 시작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