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컴맹 자소서 지옥에 빠지다
나는 누구인가.
넌 누구니.
나를 찾겠다고, 돈을 벌겠다고, 진정한 자립을 하고 싶다고 외쳤다.
2년여 동안 여기저기에 하다 하다 허접하고 부끄러운 글솜씨로 브런치에 글도 올리며 외쳐보았다.
나를 찾고 자립을 하려면 돈을 벌려면 일단 직업을 찾아야 했다.
20대 때도 이렇게 열정을 쏟진 않았었다.
그때는 대단한 스펙이 없어도 이렇게 자소서에 목매지 않아도 그저 단정한 인상으로도 뭐든 할 수 있다고 자만했다. 자존감이 높았다 생각했지만 지금 다시 생각해 보면 그냥 철.없.음이었다.
40대 아줌마가 된 지금 난 직업이 갖고 싶다.
그리고 지금 난 자소서 지옥에 빠진듯하다.
자소서 잘 쓰는 법에 대해 엄청나게 검색해서 공부하고 심혈을 기울여 자소서를 완성했다.
내가 원하는 내가 고른 직종의 여기저기에 지원을 해본다.
그런데 계속 번번이 서류에서 1차 탈락이다.
경력이 없으니까? 물론 그것도 영향이 있겠지만 그 직종의 온라인 카페에 들어가 보니 나보다도 더 무경력의 사람들도 잘만 합격이다.
없는 경력을 하루아침에 만들 수도 없고 제발 면접이라도 보고 싶었다.
아이러니하게도 대체직으로 경력을 쌓아 공채에 도전하라면서 그 대체직도 경력직을 원한단다.
이 얼마나 모순적 상황인 건지.
계속 떨어지니 점점 더 삐딱해진다.
또한 점점 더 꿍얼꿍얼 혼잣말이 는다.
이렇게 저렇게 생각해 봐도 답이 안 나오니 난 계속 애꿎은 자소서만 고쳐대고 있다.
쓰고 쓰고 또 쓰다 보니 이젠 그 컴퓨터 파일 안에 내가 남처럼 느껴진다.
자소서를 계속 쓰고 고치고 지원하고를 반복했다.
그랬더니 컴맹인 내가 한글 파일을 PDF파일로 변환도 하고 여러 파일을 하나의 파일로 병합도 하게 되었다. 셀이란 걸 사용해서 위로 아래로, 나눴다 합쳤다도 하고 페이지 중간에 새 페이지도 만들 줄 알게 되었다.
그리고 컴퓨터와 프린터를 연결해서 스캔도 했다.
(난 심각한 기계치이다)
다들 비웃겠지만 난 스캔 할 줄도 몰랐다.
생각해 보니 대학 때도 컴을 모르면 오빠가 해결해 줬고 오빠가 군대를 가버리면서부터는
답답한 내 컴퓨터 실력마저도 매우 귀엽다 해 줬던 나의 남자친구들이 속전속결로 모든 걸 해결해 줬었다.
이때부터 난 자립은 글러먹은 사람이었을까?
그래서 40대가 된 지금 너무도 후회하면서 하나하나 배워가며 자소서를 이력서를 내 힘으로 쓰고 있다.
그 당시 남자친구 지금은 내 남편인 이 남자는 귀엽네를 쫙 빼고 진심에서 우러나오는 컴맹아~를 외치며 도와준다. 하지만 지금에 나는 자립을 꿈꾸는 아줌마기에 노땡큐라 말하며 나 스스로 검색에 검색을 해가며 하나씩 해결해 나가고 있다.
그래서 각 학교의 지원양식에 맞게 써야 하는 나의 자소서 쓰기는 컴퓨터와 씨름하며 매우 힘들게 작성이 되고 있다.
한 줄 쓰고 엔터를 누르면 갑자기 표가 쪽 늘어나고, 내 이름 쓰고 서명을 붙이기를 하면 갑자기 내 이름과 서명이 위아래로 분리가 된다. 칸을 앞당기면 확 붙었다가 띄어놓으면 갑자기 내 이름들이 저만치 달아난다.
젠장,, 뭐 이따위야.. 악!!!!!!!!!!!!
구직활동 어렵.. 다.. 이즈음 되면 컴퓨터가 더 어렵다 해야 하나.
이렇게 나름의 고충이 있는 지원서 양식에 맞게 지원서를 쓰고 있는 나였지만 그 어떤 곳도 면접의 기회는 주지 않았다.
여긴 너무 먼가? 면접 날짜가 겹치는데 어쩌지? 어디를 가야 할까? 등등 내가 고민한 게 무색하리만큼 아무 곳에서도 연락이 오지 않았다.
노안안경을 오래 써서 컴퓨터를 오래 해서 눈이 아플 지경으로 자소서를 고치다 짜증이 나서 젠장을 외치고 있을 무렵 띠링~ 문자가 왔다.
"안녕하세요. 블라블라~1차 서류심사에 합격하였음을 안내드립니다.
#월#일 15시 30분까지 학교 교무실로 오기 바랍니다"
어... 어?? 어!!!!!!!!
드디어 면접을 보는 건가?
드디어 1차 서류 광탈의 늪에서 빠져나오게 된 건가.
기쁘다. 정말 너무도 기뻤다.
그렇게 나는 하필이면 제일 추운 날 면접을 보게 되었다.
추우면 어떠고 멀면 어떤가~
경력을 쌓으라는데, 내가 직업을 갖게 된다는데.
면접 가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