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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바.주.부의 자아성찰기13

- 내가 누구냐면요. 저는 그러니까..

by cream

20여 년 만에 면접이라는 걸 보러 간다.

하필이면 날씨가 너무도 춥다고 한다. 눈도 내려 길엔 눈도 쌓여있다.


면접 전날 안방 침대엔 뭘 입고 가야 하나 고민의 흔적이 겹겹이 쌓여갔다.

아이들 입학 졸업식 때나 꺼내 신는 구두를 꺼내 본다.

이 날씨에 이 눈길에 괜히 자빠질라.. 다시 넣고 낮은 로퍼를 꺼낸다.

춥지 않고 약간의 격식은 차리는 단정한 옷과 굽 낮은 로퍼를 신고 거울 앞에서 요리조리 쳐다보다 됐다! 를 외치며 그대로 잘 걸어 놓았다.

그리고 10군데 중 유일하게 1차 합격의 연락을 보내 준 그곳에 감사하며 잠자리에 들었다.


면접 당일 3시 30분의 면접 시간은 왜 이렇게 더디게 다가오는지 면접준비로 뽑아 놓은 프린트는 눈에 들어도 안 오고 자꾸 시계만 쳐다보았다.

에이.. 봐도 외워지지도 않네..

눈에 들어오지도 않는 프린트를 던지고 아침 댓바람부터 곱게 화장을 했다.

그렇게 나름의 면접용 풀세팅을 하고 시계만 쳐다보다 2시가 땡! 하자마자 집을 나섰다.

와,,, 춥다,,, 날씨가 정말 어마무시하게 춥다.

낮은 로퍼를 택한 건 정말 잘한 선택이었다.

너무도 추운 날씨 덕분에 그 추위와 싸우느라 긴장감을 느낄 겨를도 없이 면접 볼 학교에 도착했다.


면접 대기실에 들어서니 비로소 면접이 실감 났다.

생각보다 많은 인원에 당황했다. 난 8번째였고 오랜 기다림 끝에 내 차례가 되었다.




면접실에는 세명의 면접관이 기다란 테이블 끝에 앉아 있었고 내 자리는 맞은편 끝이었다.

긴 테이블은 정말 길게 느껴졌고 내 목소리가 저 끝까지 들릴까 걱정이 되었다.

면접의 긴장감은 내가 생각했던 그 이상이었다.

난 너무 오랜만에 면접을 본다. 무려 20여 년 만에.

앉자마자 내 심장소리가 저들에게까지 들릴까 걱정될 정도로 나의 심장은 쿵쾅댔고

자기소개 1분 내로 하라는 면접관의 목소리는 현실이 아닌 꿈 속에서 들리는 듯했다.

아... 내가 나를 소개하라는데 왜 그걸 못하는 걸까.. 난 내가 초면인 걸까?

나는 누구냐면요...... 내가 그러니까.... 저는요... 머릿속이 하얘지고 심장은 터질 것 같고..

이러다 이 자리에서 그냥 픽 쓰러지는 게 아닐까 말도 안 되는 상상을 하며 난 이대로 집으로 순간이동을 하고 싶었다.


- 죄송합니다. 제가 너무 긴장을 해서요. 자기소개 다시 해도 될까요?

안녕하세요. 저는 cream입니다....... 그러니까 저는.... 아무 말을 못 하고 있다가 비로소 내뱉은 말이었다.

-그럼요. 편하게 하세요. 긴장 말고 편하게. 다시 시작해 주세요.


다시 한 나의 소개는 역시나 횡설수설 그래서 넌 누군데? 였어서 면접관들의 갸우뚱을 유발했지만

그다음 질문부터는 (생존본능인지 40대 중반의 처세술인지 알 수는 없지만) 나에게 호감의 눈빛을 보이는(그렇게 믿고 싶었다) 한 사람을 캐치하여 최대한 정신줄을 잡아보았다.

긴장감으로 굳어진 내 어깨는 그대로 조각상이 될 것 같아 난 두 손을 적당히 휘적거리며 여유로운 척 제스처도 취해보았다.

내 이력서와 자소서를 보며 꼬리에 꼬리를 물며 질문은 계속되었다.

생각보다 압박 면접이다.

계속된 쪼임을 당하다 보니... 말도 안 되지만.. 알 수 없는 욱함이 몰려왔다.

맘 속에서 꼬일 대로 꼬인 목소리가 들려왔다.

나이 40 넘어 직업 좀 가져보겠다는데 왜 이렇게들 말 한마디 한마디 물고 늘어지나 싶은 생각도 들고

전공 살려 밥 벌어먹는 사람이 얼마나 된다고 23년 전 졸업한 전공은 왜 안 써먹었냐며 계속 얘길하고..

MZ세대들에게 지시받을 텐데 MZ세대와 가능하시겠냐고..

그 MZ세대보다 더한 미친 중2와 그것보다 더한 나 고3이야~와 매일을 함께합니다만..


하지만 그건 내 안에서의 생각일 뿐 나의 입은 미소를 띠고 있었고 나의 눈은 바쁘게 그들의 눈치를 살피고 있었다. 그리고 마지막엔 면접의 기회를 주셔서 감사합니다를 마무리로 한껏 예의를 차린 나의 몸짓이 있었다.

그렇게 나의 면접은 끝이 났다.

망했나 싶다가도 주된 질문엔 그래도 꽤 적절하게 대답을 한 것 같다는 생각도 들었다.

이러거나 저러거나 이제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없었다.

그들의 결정을 이틀 동안 기다리면 끝이다.


그리고 이틀뒤 아침 9시 55분에 합격문자를 받았다.

난 내가 졸업할 때까지 친해지지 못했던 나의 전공을 20여 년 만에 다시 끄집어내어 면접을 보았고

이제 곧 특수학교로 출근을 한다.

얼마나 힘들지 예측이 되는 이곳에서 1년 동안 부딪혀보고 이 일을 계속할지 말지 결정해보려 한다.

시작은 단지 돈을 벌어보자였지만 지금은 그와 더불어 스스로의 자립이 목적이 된 나의 직업 갖기는 이렇게 시작되려나보다.

cream 씨의 우아한 50대를 위해 나는 나의 자립의 첫 발을 내디뎌볼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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