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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바.주.부의 자아성찰기16

- 40대의 취업이란

by cream

떨리는 마음으로 면접을 보러 갔던 학교에 합격 후, 업무 안내와 서류작성을 위해 다시 한번 방문을 하는 날이었다.

조금은 편해진 맘으로 한결 여유롭게 가던 그 길은 특별날 것 없는 흔하디 흔한 도심의 풍경이었다.

하지만 내 눈에는 크리스마스나 연말이 다시 온 듯 온통 반짝반짝 빛나 보였다.

가는 내내 바보처럼 큭큭 웃음이 났다.

내가 취업을 하다니 믿기지 않았다. 전업주부로만 18년을 살아온 내가 이 나이에 취업을 하다니.

박봉의 1년짜리 계약직이었지만 기쁨의 크기는 대기업 입사 못지않았다.


나와 함께 뽑힌 실무사님들 얼굴을 보니 면접 날의 떨림이 다시금 떠오르고 괜스레 내적 친밀감이 생겼다.

교무부장님의 지시대로 교장실과 이사장실을 왔다 갔다 하며 인사를 드리고, 계약서를 썼다.

살펴볼 것도 없는 뻔한 계약직 계약서였지만 서명을 함부로 하면 안 된다는 각종 막장 드라마의 가르침대로

엄청나게 꼼꼼하게 확인하며 서명을 했다.

내 이름을 쓰는 것이 그렇게 즐거운 일인지 몰랐다.




새로 뽑힌 실무사님들 중 한 분은 내가 대학교를 입학할 때 태어났고, 또 한 분은 큰애와 불과 6살밖에 차이가 나지 않았다. 내가 성인이 된 기쁨을 만끽할 때 태어났고, 내가 대학교 졸업을 앞두고 사회로 나갈 준비를 하고 있을 때 태어났다.

낯설다. 너무나 낯설다. 이렇게 나이 어린 20대의 분들과 내가 대화라는 걸 해본 적이 있었나..

대화,, 대화라,,, 없.다.

그분들이 나에게 뭐라 한 것도 아니고 대화를 나눈 것도 아니었지만 분명 나와는 다른 무언가가 느껴졌다.

(다행히도 나와 출생 연도 앞자리가 같아 보이시는 마지막 한 분을 보며 난 왠지 모를 안도의 한숨을 조그맣게 내쉬었다.)

특수학교라서 특수 실무사님들이 꽤 많으셨지만 연령대는 너무도 다양하다 들었다.

20대는 진짜 모르겠고, 30대는 후반이나 돼야 말이라도 해 볼 것 같고, 40대 50대는 생각만으로도 마음이 편하다. 내가 벌써 이렇게 나이를 먹었구나 싶다.

새삼스레 내 나이를 실감하던 순간이었다.


갑자기 일보다는 인간관계에 덜컥 겁이 났다.

계약서 작성을 같이 했던 20대의 실무사님들을 보며 저분들과 내가 혹시나 다른 언어를 쓰는 것은 아닐까

말도 안 되는 상상을 했다.

면접 때는 뭐든 할 수 있습니다를 외치던 내가 지금 이 순간엔 과연 할 수 있을까요?로 바뀌고 있었다.


계약서를 들고 집으로 오는 길은 아까의 반짝거림은 다 없어지고 뱅글뱅글 돌아 어지러운 팽이 같아 보였다.

잘할 수 있을까?

잘할 수 있겠지?

잘해야 할 텐데.

뭔지 모를 걱정이 내 기분을 잡아먹고 있었다.


집에 도착해서 옷을 갈아입고 난 내 마음의 안정을 위해 40대의 누구 씨와 누구 씨가 있는 단톡에 인사를 건넸다. 카톡에 물결무늬도 잔뜩 쓰고 한마디 하면 두 마디 하며 합을 착착 맞춰주는 40대의 그들과 대화하며 난 내 마음의 안정을 찾아갔다.




계약서에 사인도 했고, 이제 곧 출근이다.

주사위는 던져졌다.

학교에서의 내가 40대의 꼰대가 되지 않도록 잔소리하는 엄마로 빙의되지 않도록 나에게 바라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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