펜 하나를 찾는 데 굉장히 오래 걸렸다. 펜을 찾았으나 잉크가 없었다.
MBTI를 신봉하는 건 아니지만, J(판단형, 체계적)와 P(인식형, 융통성)는 사람마다 가진 뚜렷한 성향을 분류하는데 꽤 유용하다고 생각한다.
<교수님 성향에 대한 고찰: P>
P 성향은 교수님 개인 성향이 반영될 수도 있고 교수라는 직업의 특성상 학생에게 대하는 부분이 그렇게 비칠 수 있다. 교수님이 P 성향이라고 생각했던 부분의 몇 가지 구체적인 예시를 들어보겠다.
1. (교수님 연구실) 책상이 갖가지 물품으로 뒤덮여 있다. 펜 하나를 찾는 데 굉장히 오래 걸렸다. 펜을 찾았으나 잉크가 없었다.
2. (면담 약속) 약속 일정을 잡을 때 정확한 시간을 알려주시지 않고 오전, 오후 정도로만 구분한다.
3. (메일 내용) 나한테 쓴 메일을 다시 똑같은 내용으로 두어 번 보내신 적이 있다.
학문적으로는 교수님의 발끝에도 못 미치는 나이지만, 저런 모습을 보면 ‘교수님도 인간이시구나. 인간미가 넘치시는군.. 그렇다면 나는 교수님께 어떻게 다가가는 것이 좋을까?'라는 생각을 많이 했다.
<나의 성향에 대한 고찰: Power J>
나는 확신의 J이다. J가 계획형이라고는 하지만, 나의 J는 심플함을 추구하는 것에서 비롯되었다고 생각한다. 뭐든 간단한 게 좋다. 비효율적인 것을 싫어하고 불필요한 시간 낭비를 싫어한다.
이런 것들이 계획형이랑 무슨 상관있냐고 할 수 있다. 그러면 P 성향인 사람은 다 비효율을 추구하는 모자란 사람이냐? 이렇게 반문하는 사람도 있을 수 있겠다
내가 말하고자 하는 바는 단순함을 추구하는 것에서 비롯된 습관이다. 아침에 일어나면 침구를 정리하고 방을 나설 때 가지런히 놓인 내 물건들을 확인하고, 주말이면 청소를 하며 내 공간을 돌본다. 회사에서도 마찬가지이다. 불필요한 물건은 늘어놓지 않으며, 자주는 아니지만 주기적으로 먼지를 쓸고 닦는다. 주변이 깔끔해야 잡생각이 생기지 않는다.
정리 정돈이 생활화되어 있는 나는 주어진 24시간도 계획적으로 사용한다. 심지어 주말에도 말이다. 너무 피곤하게 사는 거 아니냐고 반문할 수 있다. 그렇지만 나는 이게 편하다. 불필요하게 시간을 쓰거나 뭘 해야 하지 하고 허둥지둥 대는 나를 보게 되면 너무 한심할 것 같다.(그렇다고 나와 생활 패턴이 다른 사람을 한심하게 생각하거나 폄하한 적은 결코 없다. 다른 이들은 다른 삶을 추구하며 또 다른 다른 가치를 추구하는 것뿐이다. 틀린 것이 아닌 다른 것 그뿐이다.)
이런 J 성향인 내가, P 성향의 지도 교수님과 같이 호흡을 맞추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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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래는 내가 선택한 방법이다.(몇 가지 예시일 뿐이나, 대부분 이러한 마인드로 대했던 것 같다.)
<확신의 J 제자가 P 교수님께 다가가는 방법>
1. 교수님이 논문 지도를 해주시다가 무언가 깜빡하시거나 잊으셨을 때, 나도 마치 처음 듣는 것처럼 행동하거나 전혀 신경 쓰지 않았던 부분인 것처럼 행동한다.(최대한 예의 바르게 말이다.) 결코 교수님을 민망하게 만들거나, 나에게 미안해하는 마음이 들지 않게 최선을 다한다.
2. 교수님이 오전 또는 오후로만 구분해서 면담 일정을 잡으실 때는 일단 알겠다고 하고 그날 오전 또는 오후 일정을 풀로 비운다.(이것 때문에 휴가 진짜 많이 썼다.) 근데 어찌 된 일인지 이렇게 몇 달이 지나자, 교수님께서 정확하게 시간을 맞춰주시고 심지어 줌(zoom) 영상(비대면)으로 면담을 대체해 주시기도 했다. 뭔가 정성이 통한 것 같아 마음이 뭉클했었다.
3. 나한테 쓴 메일을 다시 똑같은 내용으로 여러 번 보내신다면, 그냥 처음 받은 메일처럼 답장하고 또 답장한다.
지금 적으면서 생각해 보니, 교수님 개인적인 성향이 어느 정도 반영됐을 수도 있지만, 교수라는 직업의 특성상 여러 명의 학생을 상대하면 P 성향처럼 보이는 상황은 빈번하게 일어날 수도 있을 것 같다.
그럼, 대부분의 교수님이 P 성향을 보이는가? 그렇지는 않을 것이다. J 성향의 지도 교수님께 지도받은 적이 없어서 모르지만, 아마 교수님 연구실에 들어가면 느낌이 팍 올 것이다. 뭔가 정갈하고 깔끔하게 정리된 방일 것이며, 한 번에 펜을 찾아 서명해 주실 것 같다.
<나의 결론>
어떠한 성향의 지도 교수님이건 나는 그의 여러 학생 중 한 명임을 인지하고 최대한 존중하고 맞추어 나가도록 하는 것이 좋다. 나의 노력은 언젠가 교수님이 조금은 알아줄 것이며, 알아주지 않더라도 이렇게 맞춰나가다 보면 어느 정도 시간이 흐른 후 처음보다는 보다 부드러워진 관계를 느끼게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