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약속시간이 3시 30분인데, 혹시 오고 계시나요?
논문을 작성하면서 평일 오후, 주말 아침 등 시시때때로 지도 교수님을 찾아뵈러 학교를 갔다. 지도 교수님의 컨펌이 있어야 다음 단계로 넘어갈 수 있었기 때문에 나는 항상 교수님 연락에 신경을 곤두세웠고 조그만 피드백에도 충실하게 보완 후 찾아뵈려 노력했다.
이런 나의 세심한 노력과는 별개로, 난 정말 크나큰 실수를 저지르고 말았다.
교수님과의 약속 시간은 평일 오후 3시 반, 난 회사에 오후 휴가를 내고 학교 근처 스타벅스에 들러 커피 두 잔을 테이크아웃해서 약속시간 30분 전쯤 교수님 방 근처에서 대기했다. 교수님 연구실의 불은 꺼져있었고 부재중이라는 표시가 되어있었다.
약속시간에는 도착하시겠지. 5분, 10분, 20분... 약속시간인 오후 3시 29분이 지나고 있는데도 주변에 발소리 하나 들리지 않았다. 30분 정각이 되자마자 나는 교수님께 문자를 보냈다.(지금 생각해도 너무 경솔했다.)
“교수님, 안녕하세요? 00대학원 000입니다. 오늘 약속시간이 3시 30분인데, 혹시 오고 계시나요?"
교수님께 답장이 왔다. "앗.. 지금 00 지나고 있어요. 얼른 가겠습니다."
나는 그 당시, 그래도 면담 약속시간을 알고는 계시네. 다행이다. 조금만 더 기다리면 되겠다.라고 생각했고 지도 교수님은 15분쯤 후 헐레벌떡 도착하셨다. 미안하다고 말씀하셨고 나는 괜찮다고 웃으며 응대했으며, 별 탈 없이 당일 면담을 마무리하고 집에 돌아왔다.
다른 사람들이 보면 "그래서 뭐?", "이게 뭐가 문제인데?"라고 생각할 수도 있겠다. 사실 이 사건 이후 교수님께서 특별하게 나를 꾸짖거나 면담 약속 관련하여 어떠한 불이익을 주지는 않으셨지만, 나는 스스로 깨닫게 되었다. 굉장히 큰 실례였다는 것을.
정말 바쁘신 지도 교수님이 나를 위해 면담 시간을 비워주신 것에 감사하며, 조금은 느긋한 태도로 기다릴 줄 알았어야 했다. 왜냐하면 몇 번의 면담 후, 교수님께서 가끔 늦기는 하지만 절대 30분을 넘게 기다리게 하지는 않는다는 것을 알게 되었기 때문이다. 교수님은 확실히 면담 약속 시간을 인지하고 계신다.
지도 교수님과 면담을 약속했는데, 약속시간이 되어도 아무 연락 없이 하염없이 기다리고 있다? 지도 교수님은 대부분 너무 오래 기다리게 하지는 않을 것이다.(정말 면담 약속 자체를 잊지 않는 이상..) 지도 교수님은 약속 시간과 장소를 잊지 않았다. 다만, 바쁜 지도 교수님께서는 그 정도 시간은 학생이 미리 와서 기다릴 수 있다고 생각하실 수도 있다.
어느 정도는, 30분 정도는 기꺼이 기다릴 줄 알아야 하는 것이다.
교수님들의 스케줄에서 학위논문 지도란 업무의 우선순위에서 최하위권이 될 수밖에 없지 않을까 생각이 든다. 그들은 굉장히 바쁘고 나의 학위논문 따위 하나 때문에 많은 시간을 할애할 여력이 없다. 그 시간을 쪼개어 내 메일을 읽어봐 주고 면담시간을 내어주고 피드백을 주고 컨펌을 해주시는 것만으로 감사해야 할 이유가 분명히 있다.
나도 처음부터 이렇게 생각했다면 저런 무례한 문자는 보내지 않았을 것이다. 지금 생각하면 '내가 휴가도 내고 커피도 사고 심지어 30분 전부터 기다렸는데 어떻게 약속시간을 안 지키지?'라는 생각에 당당하게 보냈던 문자였다.
교수님들은 나이가 많던 적던, 일반적으로 보수적인 성향을 갖고 있으며, 학생은 우리 부모님 뻘 어른들을 대하는 예의 정도는 갖추는 것이 좋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어느 정도는 여유 있고 느긋한 마음으로 교수님을 기다려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