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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부 결혼

chapter1. 20대의 마지막 생일

by 연이작가 Dec 28. 2024

다리에서 머리까지 갈라지는 듯한 통증, 아주 깊은 곳에서 내면의 갈라짐일까? 뼈가 산산조각 났다는 것을 느끼는 순간을 기억한다. 그때 그 통증 비슷한 것을 순간 느꼈고 나는 정신을 잃었다.

에엥에엥~~ 사이렌 소리가 가까워졌고 나는 그땐 눈을 잠시 떴다가 다시 감는다. 어떻게 119차에 태워졌는지 기억은 없다. 아직 숨은 쉬는 것 같았고 눈꺼풀도 움직였다. 다급하게 동해에서 가장 가까운 대학병원으로 옮겨졌고 응급으로 x-ray부터 MRI 촬영을 했다. 검사를 하는 동안 난 기억이 없다. 어떻게, 무엇을 검사했는지 전혀 기억나지 않는다. 하반신 마비가 올 수 있다는 의사의 목소리가 들렸다. 그 목소리가 현실의 목소리인지도 알 수 없을 정도로 멀게 느껴졌다. 한참 눈을 감고 있었는데 큰소리에 들려 눈을 떴다. 간호사와 현모가 나를 깨우고 있었다. 입원 수속을 해야 한다는 것... 그리고 보호자로 내 옆에 있는 건 남자 친구 현모뿐이었다. 다른 친구들은 같이 오지 않았고 현모가 나의 보호자로 와있었다.


" 현모야 나 다시 서울로 갈래..."

" 서울로 간다고?"

" 응, 엠블런스 타고 서울전문병원으로 가자. 거기 친척오빠가 있는 병원이야. 나 거기 가야 조금 안정될 것 같아."

" 잠시만, 선생님이랑 이야기 좀 하고 올게"


몇 분이 지났을까? 현모는 다시 돌아와 갈 수 있다고 한다. 이곳에 올 때는 119 비용이 없지만 이렇게 사설로 가면 본인부담 몇십만 원은 들어간다고 한다는 말과 함께 바로 출발하자고 한다.


촬영한 영상들을 모두 챙겨서 다시 119에 올라탔다.


몇 시간을 달렸을까, 119 안에서 나는 발가락을 움직여 본다. 아직 움직이는 것 같은데 아닌 것도 같고.. 마비가 올 수 있다는 상황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는 것일까. 아무 생각이 없다.


서울에서 척추센터에서 의사로 일하는 친척오빠를 통해 진단을 받아야 어떤 결정도 내릴 수 있을 것 같았다. 시간은 새벽 3시가 넘어가고 있다.


오빠는 아직 자겠지...? 눈을 감는다. 눈물은 내 것인 것 같은데 계속 흐른다. 아픈 건 아니다.

정적 속에서 엠블런스는 4시가 넘어가고 있다.


" (따르릉~) 여보세요?"

" 여보세요."

" 무슨 일이야? 이 시간에?"

(참았던 눈물이 터진다). 말도 못 하고 계속 운다. 그리고 한참을 울고 오빠와의 통화를 잇는다.

"오빠 나 다쳤는데 하반신 마비가 올 수 있데... 지금 엠블런스 타고 오빠 병원으로 가고 있어."

":....... 무슨 말이야? 알았어, 언제 도착이야?"

" 2시간 더 가면 도착이야. 6시 될 것 같아."

" 알았어. 울지 말고."


오빠와 전화를 끊고 나는 잠이 들었다.

20대 마지막 생일인 오늘 나는 친구들과 마지막을 즐기기 위해 동해로 출발했다.

이쁜 옷도 챙기고 이번에 사귄 남자친구와 커플링도 했다. 그렇게 한껏 29살 생일을 준비하여 동해로 여행을 갔었던 것이다. 한잔 하면서 산책도 하며 시원한 바닷바람을 피부로 느끼기 위해 바닷가로 뛰어가는 중 나는 아래로 추락했다. 시원한 바람에 몸을 맡기고 뛰고 있었다. 깊은 새벽 캄캄한 바닷가에서 3미터쯤 되는 난간밑으로 추락했고 뒤에서 오고 있는 일행도 갑자기 사라진 내 모습을 찾기 위해 바로 뛰어와 119를 불렀던 것이다. 그렇게 행복한 생일을 꿈꿨던 8월의 여름밤은 엠블런스의 사이렌 소리에 모든 것은 삼켜지고 사라져 버렸다.




죽는 순간에는 시간이 천천히 흘러간다고 했다. 죽을 고비를 넘긴 것인지 사고 난 후 이틀 동안 아무 생각이 없이 흘러갔다. 그래서 살았구나 생각하고 며칠이 지나자 모든 일상이 변화했다는 것을 직감했다. 오빠에게 엄마에게는 비밀로 해달라고 당부했지만 오빠는 그 약속을 지키지 않았다. 그리고 내가 걱정하는 것까지 엄마에게 말한 것 같다. 엄마가 찾아와 울었다.

"무슨 일이냐. 이게.."

"왜 죽으면 전화하려고 오빠한테 전화하지 말라고 했어?"

위에 언니도 엄마와 함께 왔다.

언니는 무슨 말을 할 수가 없었는지 아무 말이 없이 그냥 나를 안쓰럽게 안아주고 쓰다듬는다.

언니는 연차를 쓰고 간병을 도왔다. 매일 검사는 진행되었고 침대에서 하루 24시간 온종일 누워있어야 했다. 입원한 지 3일째 오빠는 무겁게 입을 연다.


"지연아 병원생활 이젠 좀 어때?"

" 처음보다는 정신 차렸지. 그런데 나 어떻게 돼?"

" 병원 의료진이 회의를 했어. 정말 다행히도 마비증상은 아직까지 안 보이는 것 같고 아직은 젊으니 수술은 상황을 보면서 하는 게 좋다는 결론이야. 대신 보조기는 3개월 차야 해. 혹시나 조금이라도 이상증상 있으면 바로 알려줘야 해."

" 응...(눈물이 흐른다.)"

안도의 눈물일까? 서러움일까?


병원에서 2인실을 혼자 쓰게 도와주었다. 아무도 없는 2인실에서 창밖을 바라보고 책을 읽었고 오빠에게 빌린 의학서적도 조금 읽었다. 오빠는 가끔 보조기를 차고 있는 나를 불러 병원밥이 입맛에 안 맞을까 봐 병원 근처 식당에서 밥을 사주며 병원생활을 하는데 즐거움을 주었다.

2주일 정도가 지났을까. 엄마는 시골로 다시 내려가셨고 언니는 가끔 간병을 도와주러 왔다. 그리고 간병인을 불러 간병을 돕게 했다. 간병을 하는 분은 나이 60이 넘은 분이다. 내 다리를 마사지하기엔 나이가 너무 많은 분이었지만 어쩔 수 없었다. 다리를 주물러야 할 땐 무릎에 손을 올려 살살 돌려주었다. 힘이라고는 전혀 느껴지지 않을 정도로..

가끔은 현모가 찾아왔다. 현모는 첫날의 공포 때문인지 찾아오는 횟수가 많이 줄었다.

엄마와 언니가 왔을 때 현모를 봤었다. 그리고 모든 원망의 화살이 현모에게 갔을 것이다. 그때 왜 아이를 혼자 두게 했는지, 무슨 술을 그렇게 마셨는지. 하며... 현모는 그 잔소리와 비난의 소리를 들었어야 했을 것이다. 어느날 부터 현모는 나를 찾아오는 횟수가 줄었다. 불길하다.


현모는 키가 컸고 약간의 반곱슬에 귀여운 말투를 가졌다. 법학을 전공했고 다정한 사람이었다. 하지만 이러한 다정함이 한 명을 위한 것이 아니라 모든 이에게 향했다. 나와 사귈 때에도 그 다정함이 좋아 사귀었지만 사귄 후에는 그것 때문에 다툼이 잦았다. 왜 그렇게 모든 이에게 다정한지 나도 불만이 쌓였다. 현모는 그런 날 이해하려 하지 않았고 다른 여자들에게도 다정함은 지속되었다.

사고가 있던 날도 현모는 같이 간 친구들 사이 다른 여자에게도 무척 다정했다. 내가 잠깐 자리를 비운사이 둘은 거실에 없고 방에서 같이 나오는 것을 봤다. 거실에는 다른 남자들도 있었다. 그 여자는 다른 남자친구의 여자 친구다. 많이들 취해있었고 어떠한 미묘한 감정이 왔다 갔는지는 모르지만 나의 직감은 좋지 않았다. 왜 둘이 문 닫고 들어갔다 나오냐고 따지고 싶었다. 하지만 거실엔 다른 친구들이 있었다. 그 친구들 눈에는 아무렇지 않았던 것일까? 아니면 서로 어떠한 약속이 있었던 것일까? 어지러웠다.

그렇게 그 자리에서.. 내 생일 술자리에서.. 나는 술을 연거푸 마셨다.

그리고 바람을 쐬고 싶다는 충동을 이길 수 없었다. 바람을 쐬고 싶었고 그 자리에서 누구 하나 나를 풍요롭게 채워줄 수 있는 사람이 없었다. 외로웠다.

그때 나는 남자친구가 있어도 외로웠다.

밥을 먹어도 허기졌고 원하는 물건을 모두 사도 부족했다.

그날은 더 그랬다. 마음이 너무 허전했고 남자친구는 이런 나의 마음을 알아주지 않았다.

의미 없는 친절이 더 나의 목을 옭아매는 것처럼 느껴졌다. 그렇게 찬공기에 목말랐고 시원한 바람을 따라 달렸던 것이다.


불길한 예감은 남자친구의 SNS를 통해 현실이 됐다. 이별의 아픔을 인정하는 것보다는 기다리는 것이 편했다. 인정해야 했지만 인정할수 없었다 어떻게 사과도 없이...어떻게 말도 없이...

나에게 찾아와 변명을 하고 다시 나를 안아주기를 기다렸다.

하지만 그 기다림은 진행중인 연애감정을 느끼고 싶었던 나만의 착각이 되었다.

내 생일날 다른여자에게 친절을 베풀었던 그 때 나의 예감이 맞았다는 것을 일부러 증빙을 하려는 듯 그 여자와 찍은 사진으로 남자친구의 프로필은 채워져있었다.

누구에게 말하지 않고 이별을 통보한 것은 잔인했다.

나는 이별을 받아들여야 하는 것일까? 모른척하고 어디냐고? 왜 안오냐고? 그리고 그 프로필 사진은 무엇이냐고? 아무것도 모르니 변명을 하고 다시 나에게 달려오라고 허공에 이야기를 해야 하는 것일까?

그렇게 생각했지만 핸드폰으로 그의 연락처를 누룰수는 없었다.


허리 골절 진단을 받고 보조기에 의지한 체 병원생활 1달을 하고 퇴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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