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완벽'이라는 차가운 가면
그녀와의 첫 상담이었다. 뭔가 하고 싶은 말을 선뜻 내놓지 않고, 되새김질하고 있다는 느낌이 들었다. 실수하고 싶지 않다는 그녀의 마음이 서늘하게 다가왔다.
"말을 잘하는 스타일은 아니라서 준비를 좀 해왔어요." 파일로 정리해서 가져왔다며 패드를 꺼내 보여준다. 감이 온다.
"예전에 한 번 인테리어 공사를 한 적이 있는데...."라며 말끝을 흐렸다. 공사와 관련해 좋지 않은 기억이라도 있었는지 조심스레 물었다.
"남편의 지인이 공사를 했는데, 아는 사람이다 보니 제가 생각한 걸 말하기가 쉽지 않더라고요. 우여곡절 끝에 마무리는 되었지만, 원하던 결과물은 아니었어요. 남편은 '이 정도면 괜찮은 거 아니냐, 뭘 그렇게 까다롭게 굴어.'라고 하길래 더는 말하지 못했어요."
아니길 바랐지만 결국 듣게 될 것만 같았던 그 말을 들었다.
"저는 사실, 완벽주의 성격이에요. 마감 하나하나가 딱 들어맞게 떨어져야만 맘이 놓이거든요."
자신을 완벽주의 성격이라고 말하는 사람을 만나면 마음이 복잡해진다. '완벽'이라는 건 불가능하고 존재하지 않는다는 걸 알면서도 스스로가 내려놓지 못하는 그 무엇이다. 그녀의 직업은 의사였고, 요구는 디테일하고 그 종류도 다양했다. 상담이 진행될수록 뭔가 이상한 방향으로 흘러간다는 느낌이 들었다. 자칫 이도 저도 아닌 디자인 콘셉트가 될 것 같았다. 상담은 지체되었고, 어떤 부분에서는 협의조차 불가능했다. 여러 번의 수정작업을 거치느라 정작 작업은 일정에 맞추느라 숨 가쁘게 진행되었다. 마지막 날, 숙제 검사를 받는 마음으로 그녀를 만났다. 그녀가 공간을 대할 때 환자를 보듯 하지 않기를 바랐다.
"저기가 벽 등이 좀 이상하지 않나요? 높이가 다른 거 같은데요?" 그녀의 손가락이 거실의 중앙 벽을 가리키고 있었다. 양측 벽 등의 거리는 두 사람이 팔을 벌리고 서 있는 만큼의 거리다. 실내 공간의 높이는 어디에서 측정하느냐에 따라 약간의 오차가 있을 수 있다. 천장에서부터의 높이는 동일했다. 그런 다음 바닥에서 높이를 다시 잰다. 차이가 있다. 동전 두 개를 포개놓은 정도의 두께였다.
완벽주의라고 자신을 지칭하는 분들은 대개가 자기 말이 틀릴 수 있다는 걸 인정하지 않으려 한다. 어떻게 해서든 맞다는 걸 관철하려 한다.
전기팀장을 불렀다. '뭘 조정하라는 거죠?' 그가 되묻는다. 내가 눈을 한번 찡긋하니 눈치를 채고 상황을 정리했다. 두 달간 이어진 긴장감 탓이었을까, 얼음이 꽉 채워진 맥주 한 잔이 간절했다.
'완벽주의'라는 단어가 주는 차가움에 대해 생각했다. 타인에게 강요하는 완벽은 서로를 힘들게 한다. 마음을 조금만 내려놓을 수 있다면 창백해 보이는 그녀의 마음도 봉숭아 빛으로 물들 수 있지 않을까 생각했다.
그녀는 언제부터 완벽주의자가 되었을까? '완벽'이라는 단단한 껍질 안에 웅크리고 앉아 있을지 모를 여리고 따뜻한 마음의 그녀를 상상하며 현장을 떠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