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린다는 거, 쉽지 않네요

드디어 헤어질 결심

by 펜 끝

오늘 상담도 순탄치 않을 듯하다. 부부가 초반부터 기 싸움을 시작한다. 싸울 만한 일인가 싶은데, 사뭇 진지하다.


"그거 우리 결혼할 때 산 거잖아. 사실 바꿀 때도 한참 넘었잖아."

"아니, 아직 멀쩡히 돌아가는 걸 왜 버리고 새로 산다는 거야?"

"곧 사달이 날 것 같은데 어차피 바꿔야 할 거 이번 참에 바꾸면 좋잖아, 인테리어 공사 싹 해 놓고 그걸 다시 넣고 싶냐고? 난 싫거든."

"당신말대로라면 그것만 바꿔서 되겠어? 싹 다 바꿔야 하겠네"

"맘 같아서는 그러고 싶어. 못 바꾸는 게 딱 하나 있지."

"뭔데?"

"당신!"

이야기의 끝은 늘 이렇다. 20년 이상을 함께한 부부가 서로를 배려하면서 조심스럽게 살살 말하기는 쉽지 않다. 막말이 오고가는 건 아니지만, 결론은 항상 누군가의 완패로 끝난다. 행복한 완패, 져주는 게임이다.


인테리어 공사를 하면 정말 살던 집이 완전히 딴 집처럼 변신하길 원한다. 그래서 사용하던 가구나 가전제품들을 어떻게 할 것인가 하는 고민이 시작된다. 주로 혼수로 장만한 가전들을 여전히 사용하고 있는 경우가 의외로 많다. 요즘 가전이 성능이 좋다는 걸 실감하지만 문제는 디자인이다. 바꾸고 싶어하는 가전 중 으뜸은 냉장고다. 주로 한때 유행했다는 게 믿어지지 않는 큰 꽃무늬, 너무도 강렬한 레드와인 컬러, 원래는 화이트였는데 지금은 누렇게 바랜 모습이 마음을 짠하게 만든다.


작동이 되느냐의 문제가 아니다. 멀쩡한 걸 버려야 한다는 일말의 죄책감 비슷한 감정이 들기 때문이다. 비록 말못하는 가전일지라도 함께한 세월이 얼마인가. 하루에도 수십 번씩 여닫았어도 여지껏 고장나지 않고 버텨준 것에 대한 안스러움이라고나 할까. 고민이 될 수밖에 없지만 바꾸기로 결정이 났다. 아무리 생각해도 그림이 나오지 않으니 별수 없는 일이다. 바꾸고 싶어 하는 목록 중 소파도 늘 상위권이다. 사이즈가 크고 눈에 잘 띄니, 인테리어 공사후에 어울리지 못하고 존재감을 뿜어낼 게 뻔하다. 누가 봐도 아니다 싶으니 쉽게 의견을 모은다.


고객님들은 이런저런 사야 할 것은 많은데 돈은 없다고 하소연한다. 이유는 인테리어비용을 어떻게 좀 줄여볼 생각으로 방법을 모색하는 것이다. 아무리 생각해도 빼야 할 것은 없고, 앞에 앉은 내가 만만치도 않아 보이니 그저 하소연으로 끝나는 경우가 많지만, 나름 2안, 3안을 제시해 본다. 눈높이를 낮추지 않는 이상 비용을 줄일 방법은 없지만, 상담의 분위기가 우울해지기 전에 분위기 전환이 필요하다.


"고객님~ 요즘은 할부도 잘 되잖아요. 아니면 살다가 바꾸셔도 되고요. 인테리어는 할 때 안 하면 못 하는 거잖아요. 살다가 또 집 비우고... 어휴, 생각만 해도 머리 아프시죠?"

이렇게 내 말을 글로 써서 보니 내가 봐도 좀 밉살스럽긴 하다. 고객님들이 정말 돈이 없어서 그러는 게 아니란 걸 안다. 돈 많다고 유세를 부리는 사람들보다 훨씬 이런 분들이 인간적이긴 하다.


공사를 위해 짐을 빼기 전 한 달 전부터 묵은 살림들을 정리하라고 이야기한다. 몇 년 동안 한 번도 쓰지 않은 물건들을 이번 기회에 정리해야 한다. 재활용할 건 하고 팔 수 있는 건 팔고, 버릴 건 버리고 하다 보면 얼마나 불필요한 걸 많이 갖고 살았는지 알게 된다. 거주하면서는 하기 힘든 일이다. 꺼내놓으면 한방 가득하다. 며칠내로 끝낼 일들이 아니므로 매일 조금씩 한 달정도의 시간을 갖고 하라고 넌지시 말한다.


정리하면서 추억이 새록새록 떠올라 버리지 못하는 경우도 의외로 많다. 버릴지 말지 고민되는 물건이 늘어날 수도 있다.

버린다는 거, 생각보다 쉽지가 않다.

정리한다는 건 결국, 되돌아보고 마음을 정리하는 일이다. 다시 새롭게 시작될 삶을 위해 꼭 필요한 과정이라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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