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엇을 지키고 싶었던 걸까
인테리어 일을 하면서 생긴, 나만의 원칙이 있다.
첫 상담은 반드시 사무실에서 한다.
이유는, 현장에서 처음 만난 사람과의 상담이 얼마나 어색하고, 때론 무례할 수 있는지… 그 쓰라린 기억 때문이다. 사업 초창기엔 몰랐다. 전화 한 통이면 무조건 달려갔다. 그러다 겪은 첫 경험은 충격적이었다.
현장에 도착하니, 나 말고도 여러 업체가 줄을 서 있었다. 마치 면접을 보듯 집주인이 차례로 상담을 받고 있었다. 현장에 들어서자 다른 업체와 눈이 마주쳤고, 우리는 서로를 안쓰럽게 바라보다 짧게 몇 마디 나누고 나는 그냥 나와버렸다. 초짜 사장 시절이라지만, 그날 자존심은 화끈하게 구겨졌다.
그 이후로 '첫 상담은 반드시 사무실에서'라는 원칙을 세웠다.
몇 달 뒤, 그 원칙을 흔드는 전화가 왔다. 상냥하고 교양 있는, 연배가 느껴지는 여성의 목소리였다.
“아, 00인테리어에 대해 많이 들었어요. 포트폴리오도 봤고요. 제가 서울에서 내려와서 이쪽 지리를 잘 모르기도 하고, 시간이 좀 없기도 해서 그런데… 혹시 와주실 수 있을까요?”
거절하기엔 미안한 마음이 앞섰다. ‘와 주시기만 하면 계약할 것 같은’ 뉘앙스도 마음을 흔들었다. 결국 원칙을 접고, 현장으로 향했다.
아파트 로비에서부터 이상한 기운이 느껴졌다. 아파트 전체에 묘한 소리가 울리고 있었다. 익숙한 듯하지만, 이 공간에선 어울리지 않는 울림.
올라갈수록 소리는 또렷해졌다. 현관 앞에 섰을 때, 나는 귀를 의심했다.
목탁 소리. 그리고 징 소리. 전화를 걸려는 순간, 문이 열렸다.
스님 두 분이 있었다. 한 분은 목탁을 두드리고 있었고, 한 분은 징을 치고 있었다. 거실 한가운데서 울려 퍼지는 그 소리는, 아파트라는 현실 공간에 어울리지 않는 묘한 장면이었다.
어리둥절한 나를 보며, 고객은 손가락을 입술에 댔다.
“쉿! 잠깐만 기다리세요. 금방 끝나요.”
바로 그 상냥한 목소리다.
“우리 딸이 이번에 결혼해서 살 집인데, 액땜해야 해서요. 이해하시죠?”
솔직히 말하면, 이해 불가였다. 공동주택 한복판에서 이건 좀 아니지 않나 싶었다. 하지만 이미 와버린 이상, 뒤돌아설 수도 없었다.
공사 첫날, 나는 방구석마다 뿌려진 팥을 줍는 일부터 시작했다.
딸 부부는 메일로만 소통했는데, 요구는 디테일 그 자체였다. 심지어 방 하나를 ‘피규어 수백 개를 위한 전용 진열장’으로 만들어달라는 요청까지.
며칠을 고민하다 전화를 걸었다.
“저희는 그런 진열장 제작은 전문적이지 않아서요. 따로 전문 업체에 의뢰하시는 게 어떨까요?”
그러자 대답은 너무 쿨했다.
“아, 그러세요? 그럼, 그건 빼 주세요.”
며칠간 골머리를 앓던 일이 단 한마디로 없던 일이 되었다. 그 쿨함이 오히려 서늘하게 다가왔다.
딸 부부를 직접 본 건 단 한 번, 공사 마무리 날이었다.
“생각보다 괜찮네요.”
칭찬인지 아닌지 알 수 없는 그 한마디가 끝이었다.
그리고 1년 뒤, 딸에게서 다시 전화가 왔다.
“아파트가 별로라 건물을 하나 지으려고요. 커피숍이랑 피규어 전시 공간을 만들 건데, 네 개 층인데, 작업 해주실 수 있으세요?”
나는 망설임 없이 대답했다.
“너무 축하해요. 그런데… 저희는 아파트 전문이라.. 죄송해요.”
사실 지금이라면 수락했을지도 모른다.
그때 나는 젊었고, 세상을 너무 정면으로만 봤다. 상식을 벗어난 세상이 얼마나 많은지, 그들만의 세상이 따로 존재한다는 걸 그땐 알지 못했다.
지금도 가끔 그날을 떠올리면, 목탁 두드리는 소리와 징의 울림이 귓가를 맴돈다.
그들은 무엇을 지키고 싶었던 것일까.
가진 것이 많으면, 지켜야 할 것도 두려움도 많아지는 게 아닐까? 그날의 현장이 내게 남긴 질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