슬픈 건 아닌데 좀 구차한 어떤 일

구차해도 괜찮아

by 펜 끝

무엇을 사든, 우리들이 버릇처럼 하는 말이 있다.

“이거 그냥 해주시면 안 돼요?”


파는 물건이라면 그럴 수도 있겠지만, 현장에서 만들어내야 하는 작업에는 그런 게 없다. 사람이 필요하고, 자재가 들어간다.

물론 모든 고객이 그런 건 아니다. 하지만 포기를 모르는 분들이 있다. 처음에는 애교 섞인 말투로 시작한다. 그러다 안 먹힌다 싶으면 반강제적인 요구로 이어진다.


“고객님, 이러저러해서 그건 좀 어렵습니다. 자꾸 그러시면 저보고 무료 봉사하라는 말씀인데… 그런 뜻은 아니시죠?”

나도 어디 가면 그런 말을 못 해 호구가 된 듯한 기분이 든다. 그래서 마음먹었다. 우리 고객에게만큼은 절대 그러지 말자.


공사를 하다 보면 추가 공사라는 것이 생긴다. 모든 경우의 수를 미리 의논하지만, 한두 번은 예외가 있다.

A 고객은 상담 중 여러 차례 내가 제안한 수납장 제작을 거절했다. 짐을 줄일 예정이니, 필요 없다고 했다. 그런데 공사 도중에 말을 바꿨다.

"아무래도 안 되겠네요. 방마다 옷장을 제작해 주세요."


가구 제작에는 시간이 필요하다. 색상, 내부 장, 손잡이 하나까지 정해야 한다. 일정이 꼬이는 건 당연했다. 그렇다고 고객에게 '왜 말 안 들었냐'고 따질 수도 없다. 추가공사는 반드시 문서로 남겨야 한다. 계약서든, 문자든, 말로만 해서는 안 된다.


공사가 끝나고 결제만 남은 상태였다. 그런데 추가 공사비 지급이 자꾸 미뤄졌다. 불길한 기분이 들었다. 돈 달라는 말을 꺼내기 힘들어 문자를 보냈다. 그리고 돌아온 답.

"어? 그거 그냥 해주시기로 한 거 아니었나요?"

전화기를 떨어뜨릴 뻔했다. 심호흡 한 번 크게 하고 다시 보냈다.

"고객님, 계약서에도 추가 항목으로 넣지 않았습니까. 문자로도 확인하셨고요."

"그건, 그런데, 뭐 그냥 해주시면 안 되나요? 제가 다음에 소개도 많이 해 드릴게요."


이런 말 하는 사람치고 실제로 소개해 준 경우를 본 적이 없다. 적은 금액도 아닌데, 어떻게 그렇게 명랑한 목소리로 말할 수 있을까.

결국은 이런 말까지 들었다.

"아, 사장님, 그렇게 안 봤는데 대개 빡빡하시네."


포기할 수 있는 금액이 아니었다. 받지 못한다면 공사비를 부풀렸다는 말밖에 안 된다. 그래서 직접 댁을 방문했다. 잘못한 것도 없으면서, 그렇다고 빈손으로 갈 수도 없었다. 사람 참 구차하게 만드는구나 싶었다. 감정이 앞설까 싶어 편지도 준비했다. 요목조목 정리해서 내밀었지만, 고객은 쓱 한번 읽고 말았다. 그 모습을 보고 있자니 가슴에 스산한 바람이 스치는 듯했다.


결국 수납장 비용은 일부만 받았다. 빨리 정리하고 다른 현장에 집중하는 게 낫다고 판단했다. 산뜻한 결말은 아니었다. 이상하게도 이런 고객일수록 시간이 지나도 종종 전화해 온다. 아무 일 없었다는 듯, 여전히 명랑한 목소리로.

"아, 사장님 잘 계시죠? 사업은 여전히 잘 되시죠? 다른 게 아니고요......."


쓰면 뱉고, 달면 삼킨다는 말이 실감 난다. 자신의 이득을 위해 순간적으로 모습을 바꾸는 사람들을 보며 나를 돌아본다. 나 역시 그런 적이 있지 않았을까. 이렇게 잊어버린 걸 보면 고객의 넉살 좋은 전화도 이해 못 할 일은 아닌 듯하다.

슬픈 건 아니다. 하지만 가끔 구차하게 느껴지는 게 삶이다. 그럼에도 포기할 수 없는 건, 구차함 속에 깃든 애틋함 때문이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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