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매한 재능으로 먹고삽니다

함께하면 커지는 재능

by 펜 끝

월등하지가 않다.

디자이너로서의 점수를 매긴다면 60점 정도라 생각한다. 자격증 시험처럼 겨우 합격선이다. 타인들이 잘한다, 탁월하다 등등의 칭찬을 곧이곧대로 들으면 안 된다. 솔직히 스스로 알지 않는가.


재능을 단순하게 생각하면 안 된다. 복합적이다. 실력이 달리는 듯하지만, 그것에 대한 열정 하나는 끝내준다면 둘이 잘 반죽이 되어서 시너지가 일어난다. 딱 한 가지의 재능이 탁월하다고 해서 먹고사는 게 보장되는 게 아니다. 애매한 재능에 관해 쓴 책을 읽은 적이 있다. 내용은 잘 생각이 나지 않는데 그 '애매한 재능'이란 단어가 눈에 딱 꽂혔다.


난 왜 이렇게 애매한가? 싶었다. 생긴 것도 애매하고 두루두루 그렇다. 그래도 나름 좋은 점은 마음의 불안감이 덜하다는 거다. 너무 이뻐도 피곤하지 않은가. 일찌감치 그것에 대한 바람을 접으니, 돈도 적게 들고 맘도 편하다. 그렇다면 분위기로 커버해야 한다.


분위기는 거창하게 말하면 그 사람만의 '아우라'일 것이고 우리끼리 하는 말로는 '뭔가 있어 보인다'이다. 뭔가 삶의 내공, 철학적 지식, 경제적으로 궁핍해 보이지 않는 분위기면 된다. 그리고 인상이 외모다. 잘 웃는다. 잘 공감해 준다. 그것도 크게. 이건 사실 억지로 되는 건 아니다. 타고나야 하는 것도 아니다. 살면서 자신이 먹고, 듣고, 보고, 읽은 것의 총합이다. 되도록 나쁜 거, 더러운 꼴은 안 보려 노력한다.


애매한 재능을 갖고 작은 사무실을 운영하고 있지만 주눅이 들어보지는 않았다. 그 크기가 내 것으로 생각했다. 욕심내다가 허리가 뒤로 접힐 게 뻔했기 때문이다. 좋아하는 일도 주야장천 쉬는 날도 없이 하다가는 이십 년은커녕 십 년도 못 되어 녹다운되었을 거다. 진상 고객이 주는 트라우마는 오래간다. 머리카락에 껌딱지처럼 붙어서 도통 떨어지질 않는다. 외면한다고 해도 해가 질 녘 그림자처럼 길게 질기게 따라붙는다.


회복 탄력이 필요한 지점이다. 여태껏 모르고 살았던 사람이 고객이 되었다고 해서 삼십년지기 친구처럼 되는 건 아니다. 선을 지키며 다가가지만, 주어진 시간이 턱없이 짧다. 거기다 큰돈을 지불하는 일이니 얼마나 까탈스럽겠는가. 당연하다. 나라도 그럴 것으로 생각하려 한다. 마음은 그렇지만 현실적으로 잘 되는 건 아니다. 실컷 욕이라도 해서 나쁜 기운을 빼는 것도 하나의 방법이다. 그 사람이 싫어서라기보다 자꾸 생각하는 내 자신을 추스를 필요가 있어서다.


견디기 힘들 테지만 갑자기 쏟아진 소나기처럼 피할 방법이 없으므로 굳이 피하려 하지 않고 실컷 두들겨 맞고 햇살에 바싹 말리면 된다. 사회생활 하는 대부분의 사람이 그렇지 않겠는가. 내가 맞은 펀치가 가장 셀 것이란 생각, 마치 마동석에게 양 볼때기를 사정없이 맞은 듯한 느낌. 와, 생각만 해도 얼얼하다.


애매한 재능은 종종 자학적 고민을 낳는다. 난 왜 이렇게밖에 안 될까. 누구는 잘도 하는데 왜 이리 끙끙거리는 걸까부터 시작해서 한번 시작된 이런 우중충한 고민이 하늘을 가득 메운 먹구름 같다. 그 뒤에 파란 하늘이 있다는 게 느껴지지 않는다. 먹구름만 보인다. 애매한 재능을 보충할 방법을 모색해야 한다. 말발로 하려는 생각은 아예 하지 않길 바란다. '사기꾼' 소리 듣기 딱 좋으니 말이다.


인풋을 많이 필요하다. 꼭 하는 일에 국한된 것이 아니다. 뭐든 혹시 있을지 모를 나의 영감을 자극해 줄 수 있는 것이라면 다 가능하다. 시각적 자극을 좀 많이 하는 게 좋다. 이런 면에서 서울 사는 사람들이 부럽다. 지방에도 디자이너도 살고 예술가도 살고 잘 노는 사람들도 많다. 우리는 언제나 목마르다.


애매한 재능을 갖고 그 분야의 일을 하고자 한다면 그 일을 정말 좋아해야 한다. 그래야 살아남는다. 나를 찾아주는 사람들을 고마워하고, 함께 일하는 사람들을 진심으로 존경하는 마음으로 대해야 한다. 그러면 그들이 나의 애매함을 보충해 준다. 나 또한 그들에게 그런 존재가 되도록 노력해야 한다. 사람 귀한 줄 알아야 애매한 재능으로 먹고살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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