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럴 리가요. 저도 디자이너인걸요.
상담이 시작되었지만, 누가 상담자고 누가 고객인지 모를 지경이다.
고객은 자신이 준비해 온 걸 나에게 브리핑하듯 한다. 하고 싶은 말을 삼키며 입술에 힘을 주고 참고 듣는다. 할 이야기를 다 했는지 마지막 멘트를 날린다.
"이렇게 똑같이 해주실 수 있나요?"
"(그럴 리가요!) 정말 정리를 잘해두셨네요. 그런데 보여주신 자료가 어느 업체의 것으로 보이는데, 맞나요?"
"네. 여기저기 스크랩을 하다 보니 00업체 게 맞네요. "
"그럼, 혹시 그 사이에 저희 포트폴리오도 한 번쯤 보셨을까요?"
"보기는 봤어요. 그런데 저희 취향이 좀 더 이쪽인 거 같아서요."라고 말하며 가져온 사진을 가리킨다.
"똑같이 하려면 그쪽 업체가 더 유리할 텐데 그쪽에 의뢰하시는 게 맞지 않을까요?"
나는 알고 있다. 이미 그 고객이 그곳을 다녀왔다는 것을. 분명 자신의 예산과 맞지 않았을 것이다. 그리고 좀 더 싼 견적을 제시하는 업체를 찾느라 업체 투어 중인 걸 말하지 않아도 알 수 있다. 나의 답변에 고객의 인상이 바뀐다. 좀 불쾌하다는 표정이다. 이런 이야기를 듣는 우리 역시 불쾌하다는 걸 조금은 알아주었으면 한다.
"고객님, 어떻게 생각하실지는 몰라도 업체끼리도 상도덕이라는 게 있지 않겠습니까? 그리고 저는 디자이너로서 이 일을 좋아하지요. 고객님이 다 정해서 오시니 제가 할 일이 없어지네요. 저를 필요로 하지 않는 일에 참여하는 게 의미가 있나 싶긴 합니다."
고객의 입꼬리가 묘하게 올라간다. 비웃음인지, 당황함인지 알 수 없다. 나 역시 마음이 편치 않다. 속으로 '개뿔, 디자이너는 무슨...'이라고 생각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타인의 것을 마치 내 것인 양 아무렇지도 않게 생각하는 것에 약간의 분노마저 느껴진다.
그러면 안 된다. 적어도 그대로의 카피는 있을 수 없다. 그것을 궁리하고 애쓴 사람을 완전히 배제하고 작당이라고밖에 할 수 없는 그런 일을 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한다. 그런 생각을 하는 사람들이 이 글을 읽을 리는 없겠지만, 아니 읽고 욕하더라도 상관없다. 그들의 비위를 맞춰야 할 이유는 없기 때문이다.
그렇게 고객은 별 대꾸 없이 사무실을 떠났다. 뒷모습을 보며 속으로 인사를 했다.
'찾아주셔서 감사합니다. 원하시는 답변을 해드리지 못해 죄송합니다.'
이건 진심이다. 어떤 의도를 가졌든지 간에 찾아준 건 고마운 일이고, 듣고 싶어 하는 답변을 해주지 못한 것이 미안한 마음이기도 하다.
업체들은 이런 카피에 대해 피해자이면서도 가해자의 입장이 되기도 한다. 우선 피해를 보지 않으려 워터마크로 사진에 로고를 집어넣기도 하지만 큰 효과는 없는 듯하다. 편집 프로그램에서 감쪽같이 없앨 수도 있다. 고객이 스크랩해서 보여주는 경우도 있으니 그런 경우 업체는 가해자의 입장이 되기도 하는 것이다.
이 모든 것에 대한 결정은 업체 대표에게 있다. 만약 대표가 디자이너라면 가장 망설이는 쪽일 것이다.
고객들은 모를 수도 있다. 무엇이 오리지널이고 아닌지. 오리지널이라고 해서 세상에 없던 그 무엇은 아니겠지만 제발 짝퉁을 양산하지는 말자고 이야기하고 싶다.
지방에서는 디자이너에 대한 대우가 박한 편이다. 별로 인정받지 못하는 게 현실이다. 따로 디자인료라는 걸 책정하면 "이건 뭔가요?"라는 질문을 받고 낯 뜨거웠던 기억이 있다. 디자인료라는 개념이 자리 잡지 않아서일까, 디자인은 마치 옵션처럼 취급된다. 널리고 널린 게 카피할 수 있는 것들이다. 최근 몇 년 동안 정말 업체 간의 디자인의 차별화를 찾아보기 힘들다.
상담 오는 고객들도 그런 이야기들을 한다.
"요즘은 인테리어 업체들 포트폴리오를 보면 다 똑같아 보여요."
"네. 저도 그렇게 생각합니다. 트렌드라는 이름으로 뭉뚱그려 비슷비슷해지고 있지요. 트렌드에 편승해서 쉽게 가는 게 꺼림직하긴 하지만 완전히 무시할 수도 없고 그러네요."
대답은 이렇게 하지만 착잡한 마음이 든다.
업체만의 스타일이라는 게 있던 때가 그리워진다. 업체 간에도 순수한 마음으로 댓글을 달고, 하트를 눌러주며 서로를 응원하던 그때 말이다. 서로를 경쟁상대라고 생각하지 않고 함께 응원하며 성장하기를 바란다. 세상은 하루가 다르게 바뀌고 있다. 좋은 방향으로 조금씩이라도 나아가리란 믿음을 안고, 오늘 하루를 조용히 닫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