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가 온다. 땡땡이 치고 싶다

꽃비가 내린다

by 펜 끝

비를 무척이나 좋아했었다. 투명 우산을 쓰고 방방 뛰어다녔다. 비가 조금 올 때는 비옷을 입었다. 투명 비옷이 없다고 직접 만들어 입었다. 문방구에서 산 비닐 위에 동생을 눕혀놓고, 모양대로 오려냈다. 호치키스로 말도 안 되는 바느질을 해놓고 그걸 비옷이라고 우겼다. 입을 수는 있었지만, 벗을 수는 없었다. 너덜너덜해진 비옷을 보면서도 마냥 좋았던 그때가 생각난다.


인테리어 일을 하게 되면서부터 비를 맘 놓고 좋아할 수가 없었다.

"아, 오늘 현장에 자재 들어오는 날인데 ", "새시 시공하는 날인데 어쩌지?"

그 좋아하던 비가 예측 불가의 현장 변수로 되면서 골칫거리가 되었다. 실내에서 하는 작업이라도 날씨의 영향을 받는 경우가 있다. 집의 창문을 모두 떼어내고 설치해야 하는 새시는 비가 오면 그날 일정은 취소된다. 아주 예민해지는 날이다. 초반에 이루어지는 날이다 보니 일정이 연기되면 그 뒤 작업의 일정이 줄줄이 꼬이기 때문이다.


자재를 반입하는 일도 마찬가지다. 특히 비를 맞으면 안 되는 목자재들이 문제이다. 지하 주차장을 통해 들어오면 별문제가 없다고 생각하지만 그렇지가 않다. 자재상에서 목재를 적재할 때 그리고 비닐을 씌워 운송한다 해도 완벽히 비를 피할 수가 없다. 페인트 작업을 하는 날도 비가 오면 페인트가 잘 마르지 않는다. 덜 마른 상태에서 재도장을 하게 되면 눈물자국 같은 게 생긴다. 고운 면이 나오지 않기 때문에 일정을 더 추가해 줘야 한다. 모든 건, 마감을 맞추지 못할까 하는 불안으로 작용한다. 공사가 시작하기 며칠 전부터 계속 날씨를 체크한다. 일기예보가 정확한 것도 아니지만 그래도 믿을 건 그거밖에 없다. 그래서 장마철에는 되도록 작업 일정을 잡지 않는다. 그랬다가는 잠도 못 자고 다크서클을 턱밑까지 내린 채 안절부절못할 게 뻔하다.


공사가 막바지였던 어느 날, 현장에 서서 밖을 내다보는데 비가 내리는 줄 알았다. 그런데 아니었다. 벚꽃이 흩날리고 있었다. 갑자기 불어온 바람에 옆으로 누운 벚꽃잎이 일제히 날리고 있었다. 아~ 이렇게 봄이구나. 동의하지 않아도 봄은 온다던 시 한 구절이 생각난다. 한동안 꽂혀있던 그 말이 그 날따라 빡~하고 이마를 때린다. 현장의 기계 돌아가는 소리가 그날따라 마치 요란한 침묵처럼 느껴진다. 한 바퀴 둘러본다. 별일은 없어 보인다. 내가 없어도 될 듯하다. '무슨 핑계를 대로 오늘 다시 현장에 오지 않아도 될까' 궁리한다. 딱히 떠오르는 게 없다. 갑자기 아프다고 하면 좀 전까지 소리소리 지르던 게 거짓말이 될 터이고 뭐가 좋을까. 그냥 솔직히 말하기로 한다. 내 성격을 모르는 이들도 아니고 얼굴에 다 표가 날 테니 말이다.


"저, 반장님~ 저 오늘 마감하러 안 들어와도 되겠죠?"

"예! 예, 내일도 안 오셔도 됩니다. 푹 쉬다 오세요" 반장님이 두 번 예라고 대답할 때는 이미 다 알겠다는 뜻이다.

"쉬기는요? 그런 게 아니라요. 밖에 꽃비가 오네요. 비 좀 맞고 올게요."

"아이고, 대표님 또 그럴 때가 됐다 싶었습니다. 걱정 말고 나가보세요"

뭔 씻나락 까먹는 소리인가 할 만도 하지만 함께 한 20년 세월이 거저 된 건 아닌가 보다. 두 시간도 못 되어 다시 돌아올 거란 걸 안다. 생색도 인심도 후하다. 서로를 아니까 이렇게 변덕을 부려볼 수 있는 날이 있어서 다행이다.

keyword
이전 12화내가 납작만두로 보입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