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려움과 마주할 용기
오랜 기간 일을 해왔어도 변하지 않는 게 있다. 상담을 앞두고 늘 설렘 반, 걱정 반이다. 어떤 분을 만나게 될까, 행여나 상담이 매끄럽지 못하면 어쩌나 하는 걱정이다. 미리 걱정할 일도 아니지만 마음처럼 쉽지가 않다. 사업 초반에, 경험이 별로 없었을 때는 오히려 걱정이 없었다. 모르면 용감하다고 누구나 다 내 맘 같은 줄 알았다. 경험이 쌓이면서 괜한 걱정이 늘어난 게 사실이다.
두려움이란 표현을 쓸 정도는 아니지만 가장 긴장되는 때는 일을 시작하는 날이다. 바로 전날까지 거짓말을 좀 보태서 발 뻗고 잘 수가 없다. 공사 시작일은 첫 단추를 끼우는 날이기도 해서 예민해진다. 뭔가 좋지 않은 변수라도 생기면, 작업 내내 그럴 것만 같은 징크스가 있다. 제발 민원이 들어오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이 가장 크고, 크든 작든 어떠한 사고라도 생기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에 숨조차 크게 쉬지 못한다.
강박에 가깝다. 익숙해질 만도 한데 그렇게 되지 않는다. 고객의 돈을 집행하는 일이다 보니 더 그렇다. 내 돈이 아니다. 단돈 천 원도 허투루 사용할 수 없고, 실수라도 하는 날에는 더 큰 비용이 발생하게 된다. 성격상 현장에서 발생하는 추가적인 비용에 대해 타인에게 책임을 전가할 수도 없는 노릇이다.
모든 책임은 관리 감독하는 나에게 있다. 작업자들을 원망하며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며 화를 내는 일은 상상조차 할 수 없다. 그런다고 해결되는 건 없기 때문이다. 제대로 감독하지 못한 내 잘못으로 여기고, 수습에 온 힘을 쏟는 게 최선이다. 작업자들에게도 내가 '믿는 구석'이 되어 주어야, 그들도 자기 일에 집중할 수 있다. 서로 생각해 주는 마음이 현장 분위기를 따뜻하게 만든다. 위압적인 분위기로 지시만 한다고 될 일이 아니다. 입장을 바꿔 생각해보면 단번에 이해할 수 있는 일이기도 하다.
또 다른 두려움은 나 자신이다. 디자인이 잘 풀리지 않거나, 아무리 궁리해도 그 어떤 아이디어도 떠오르지 않을 때의 초조함은 이루 말할 수가 없다. 어쩌면 불가피한 일일 수도 있고 필수적인 감정일 수도 있다. 강도의 차이는 있을 수 있겠지만 나름 창의적인 일을 하는 사람들에게 숙명과도 같은 일이다. 고객의 기대치에 부응하기 위해 자기만의 역량을 젖 먹던 힘까지 끌어올려야 하는 일이다. 어디 고객의 기대뿐이겠는가.
스스로 만족할 만한 디자인은 어제도, 오늘도 그리고 내일도 불가능할지 모른다. 만족을 모르는 게 인간이지 않은가. 만족이란 말 대신 흡족이란 표현을 쓰는 게 낫겠다. 그려진 도면을 보면서 혼자 씩 웃을 수 있으면 대체로 고객들도 마음에 들어 하는 경우가 많다. '이건 좀 아닌데' 하는 마음이 생긴다면 여측없이 수정에 수정을 거듭할 일이 생긴다.
쓰고 보니 고객, 현장, 디자인, 이 세 가지 두려움에 관한 내용이다. 처음부터 끝까지 다 두려우면 어떻게 하냐고 물을 수 있다. 두렵지 않다면 이 일을 제대로 해내지 못할지도 모른다. 공포영화를 볼 때와 다른 감정의 두려움이다. 사랑하는 사람을 볼 때 마음 한구석에 이 사람과 헤어질지 모른다는 두려운 감정과 비슷하다. 이 일을 사랑하지 않는다면 두려움을 느낄 필요가 없을 것이다. 두려움 하나 없이 일을 대할 수 있다면 그건 인제 그만두어야 할 때가 되었다는 뜻이 아닐까 싶다.
두려움이 사람을 진지하게 만든다. 더 잘하려고 노력하게 만든다. 끝내고 난 후 더 큰 기쁨을 안겨준다는 걸 알기에 오늘도 두려움과 마주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