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제 : 친구
1. 약속
버스가 텅 비어버렸다.
퇴근 버스에는 이제 나와 버스 운전기사 단 둘 뿐이다.
조금 전부터 기사 아저씨의 눈빛이 묘하다. 백미러를 통해 계속해서 나를 힐끔거리는 눈치다. ‘왜 아직 안 내렸지?’ 딱 그런 얼굴이었다. 나는 애써 무시하며, 핸드폰 화면에 떠 있는 내비게이션을 확인했다. 버스는 판교에서 방향을 틀어 미금역 쪽으로 향하고 있었다. 녹색 줄을 따라가면 5시 15분에 약속 장소에 도착할 것이다.
하지만 무언가 찜찜했다. ‘가스불은 잠갔나?’, ‘차 시동을 껐던가?’와 같은 종류의 느낌이 들었다. 이건 아마도 저 시선 때문이겠지? 그는 여전히 머리 위에 ‘저 사람은 왜?’라는 커다란 물음표를 띄운 채로 백미러를 들여다봤다. 그때 저 앞에 보이는 신호등이 초록색에서 노란색으로 바뀌었다. 이제 3초쯤 후에 빨간색으로 바뀌며, 버스가 잠시 멈출 것이다. 나는 무언가 말을 꺼내야 할 것만 같았다.
빨간색 신호등, 브레이크 소리 그리고 멈춰 선 버스.
나는 괜히 말을 걸었다.
“아 저… 이거 미금역 가죠?”
기사는 잠깐 나를 보더니, 아차 싶은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가 다시 저었다.
“아뇨, 이거 미금역 안 가요.”
그리고는 덧붙였다.
“얼른 내려서 택시 타세요.”
나는 급하게 문 앞에 섰고, 신호등 앞에 정차한 버스의 문이 ‘치익’ 소리를 내며 열리기 시작했다. 문이 열리길 기다리는 시간이 꽤나 길게 느껴졌다. 나는 내려서 신호등을 건너는 사람들 틈으로 스며들었다. 그리고 준에게 톡을 날렸다.
“야 버스 잘못 탔대 ㅋㅋㅋ 택시 타고 가겠음”
바로 톡이 왔다.
“에라이 ㅋㅋㅋㅋㅋ”, “천천히 와. 난 4번 출구에서 기다릴게”
‘요 맨?’
‘오늘 고?’
점심을 먹고 사무실에 올라온 후 준에게 톡을 날렸다.
지난주에 잡은 약속이었다.
‘당근’
‘미금 5시’
‘이따 봐 ㅎㅎ’
친구와의 약속이 과거의 그것과는 다른 느낌을 준다. 과거의 나는 저녁 약속을 귀찮다 여기는 사람이었다면, 요즘의 나는 그 잠깐의 시간을 기대하고 있는 것만 같다.
준과 내가 처음 알게 된 건 1999년, 대학 신입생 때다. 우리는 성이 같았고, 출석이 불릴 때 나 다음으로 불리는 이름이 준이었다. 대학은 수업시간마다 출석을 불렀고, 매번 50명도 넘는 이름이 하나씩 호명되는 시간은 당연히 지루할 수밖에 없었다. 그래서 준은 딴생각을 하며 내 뒤통수만 바라봤다고 했다. 내가 손을 들면 그다음 자기가 손을 들면 됐으니까. 우리는 그 시절에 꽤 친했다. 녀석은 좋은 사람이었고, 스무 살 무렵에 나는 지금 정도까지 차갑고 까칠하진 않았으니, 특별한 이유 없이 친해질 수 있었다. 물론 스무 살, 청춘의 시절에는 모두가 별 이유 없이 친해지긴 했지만.
우리는 졸업 후 같은 회사에 다녔다. 하지만, 워낙 큰 회사고 일하는 도시도 달랐으므로 따로 연락하며 지내지는 않았다. 그때는 각자 바쁘기도 했고, 우리는 딱히 연락까지 해가며 유지해야 하는 관계는 아니었다. 남자들은 보통 그럴 것이다.
그렇게 시간이 꽤나 흘러 10년 전쯤인가? 유부남이 되어버린 우리는 청춘의 시절을 그리워하기 위해 다시 만나게 되었다. 아니, 그 시절이 그리워졌다기보단 회사일이나 개인적인 사정으로 힘든 일이 있을 때, 그 이야기를 꺼내기에 가장 편한 상대가 옛 친구였기 때문일 것이다.
준과 나는 계절마다 만났다. 준은 언젠가부터 만나면 회사 이야기를 했다. 상사를 욕하고, 짜증 나는 일을 털어놓고, 술을 취하도록 마셨다. 그때마다 그만두고 싶다고, 장사나 할까 한다고 했을 때, ‘그래. 회사 모 천년만년 다닐 것도 아닌데.’라며 맞장구를 쳐주었던 게 나다. 부추겼던 건 아니다. 그냥 평소에 가지고 있는 내 생각을 말했을 뿐이다. 내가 평소에 그런 생각을 했기에 준이 나와의 술자리를 즐겼을 수도 있고.
그러다가 준이 정말로 회사를 관뒀다. 준의 와이프도 같은 회사에 다니고 있었고, 이런저런 사정이 겹치며 와이프를 회사에 남기고 본인은 탈출을 감행한 것이다. 우리는 그때 만나서 축하주를 마셨다. 그는 서른한 가지 맛의 아이스크림이 있는 점포를 낸다고 했지만, 시간이 어느 정도 흐르자 그게 쉽지 않은 일이 되어 버렸다. (이때 그는 덜컥 상가 분양을 받지 않았다. 김 부장 보단 나은 선택을 한 놈이다.) 결국 그는 심심한 날이 많았고, 매달 나와 똑같은 동네에서 똑같은 안주와 똑같은 종류의 술을 마시곤 했다. 그렇게 시간이 흐르다, 어느 날 그는 장사 생각을 접고, 다시 취직을 하겠다고 말했다. 나는 평소 생각대로, ‘너라면 잘할 수 있을 거야’라고 말해주었다. 우리가 졸업한 학교는 꽤나 괜찮은 학교였고, 퇴직 전에 버텨낸 기간도 결코 의미 없는 시간은 아니었을 테니, 당연히 좋은 곳에서 다시 일하게 될 거라고 말이다. 과연 그는 몇 개월 후 경력을 살려 새로운 회사에 취직했다. 그리고 지금은 능력을 인정받으며 누구나 부러워할만한 회사 생활을 하고 있다.
‘우리 Sedra/Smith 책으로 공부했던 거 기억나냐? 야, 요즘은 그 책 아니야.’
그는 새로운 회사에 들어간 후 요즘 대학생들이 공부하는 전자회로 책을 사서 첫 장부터 마지막 장까지, 책이 너덜너덜 해질 정도로 공부했다고 했다.
‘야, 대학교 때 이렇게 공부했으면… 진짜 장학금 받으면서 다녔을 거야.’
웃으며 농담을 던지는 녀석은 얼굴에는 현재 자신이 하고 있는 일에 대한 자신감이 담겨있었다.
나?
언제나 그만두고 싶다고 말하던 나는, 20년째 같은 회사에 다니고 있다. 소속도 업무도 사람도 자주 바뀌었지만, 어쨌든 같은 회사에 다니고 있다. 여전히 그만두고 싶다는 말을 하면서…
준은 버티는 게 장땡이라고 말하지만, 나는 이제 정말 카운트다운을 하고 있다. 한 5년 후쯤에는 분명 시간 여유가 넘치는 내가 준이 일하는 회사 근처로 놀러 가서 그가 가진 법인 카드로 맛있는 걸 얻어먹을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하고 있다. 왠지 그럴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아마 90 퍼센트 정도의 확률로?
나는 5시쯤 미금역에 도착하기 위해 4시 15분에 사무실을 나왔다.
우리는 작년까지 망포역에서 만났었다. 입사했을 무렵에 그는 기흥에서 나는 수원에서 일했으므로 그 중간 지점인 망포역에서 만났다. 내가 기흥으로 사업부와 집을 옮겼고, 준은 일을 관두며 광교 쪽으로 이사를 했을 때에도 우리 만남의 장소는 언제나 망포역이었다. 가끔 준은 술자리를 마치고 집에 가는 게 꽤나 힘들고 어려운 일이라고 투정을 부렸으나, 약속 장소를 바꾼 적은 없었다. 그러다 올해 초 내가 한번 광교 쪽으로 가서 만난 적이 있었다. 10시쯤 헤어지고, 술이 취한 채 버스를 타고 집에 도착하니 12시쯤이었다. 거리가 멀지는 않았지만 교통편이 형편없었다. 나는 술에 취한 상태로 집으로 돌아가는 것이 엄청 힘들다는 것을 깨닫고 ‘미안했다’ 고백하며, 약속 장소를 바꾸자고 했다.
준은 강남에서 일하고, 나는 화성에서 일하므로 미금역으로 정했다. 미금역에서 나는 분당선을 타고 망포역으로 준은 신분당선을 타고 광교역으로 갈라지는 게 가장 효율이 좋았다.
건물 밖으로 나오자 도로 위로 포근한 햇살이 쉴 새 없이 쏟아지고 있었다. 나는 온몸으로 태양광 에너지를 받으며, 사무실의 백색등이 주지 못하는 따스함을 느꼈다. 마음이 조금 움직였다. 약간 몽실몽실해졌다고 해야 할까? 도로 양쪽의 가로수들은 종일 햇살을 받아 밝게 빛나고 있었다.
이른 시간이었지만 퇴근하는 사람들의 숫자가 제법 되었다. 중간에 있는 횡단보도에서 녹색불을 기다리며, 6시쯤 이 길을 걸으면 어떤 풍경을 볼 수 있을까?라는 생각이 스쳤다. 어렸을 적, 아버지와 단둘이 서울역에서 목포로 가는 기차표를 사기 위해 줄 서 기다리던 장면이 떠올랐다. 역 앞에는 사람들이 만든 끝이 보이지 않는 줄이 있었다. 아무것도 모르던 나는 그 많은 사람들에 압도되었다. ‘정말 사람이 많구나’라는 생각과 함께.
“이거 미금역 가나요?”
분당-판교가 써진 버스 앞에 서서, 지나가는 기사 아저씨에게 물었다.
“이 버스 타시면 돼요”
아저씨는 미금역 가는 버스라고 확인해 주었다.
중학교, 고등학교 시절에도 걸어서 통학을 했고, 회사를 다니면서도 먼 곳에 살아본 적이 없는 나는 항상 버스를 탈 때 어느 정도 긴장이 된다. 솔직히 말하면, ‘이 버스가 맞는지’, ‘내려야 하는 정류장은 어디일지’, ‘몇 정거장이나 남았는지’ 이런 것들을 항상 생각하게 된다. 나만 그런가?
나는 사무실에서도 미금역을 향하는 퇴근 버스의 플랫폼 번호와 노선을 확인했고, 기사 아저씨에게 확인까지 받았으므로 안심하며 버스에 올랐다. 분명 지난번 미금역에서 만났을 때도 탔던 버스건만, 혹시 문제가 생기면 골치 아파질 것이므로 확실히 하는 게 마음이 놓였다.
곧 운행을 하는 기사 아저씨가 탔고, 나는 핸드폰을 꺼내 내비게이션을 켰다. 지난번에 세 번째로 버스가 섰을 때 내렸던 기억이 있지만, 그래도 혹시 모르니 지도를 보다가 미금역이 가까워졌을 때 내리는 게 정확할 것 같았다. 아저씨는 안전벨트를 확인하며 ‘분당 가시는 분 계세요?’라고 물었다. 난 분당이 아니라 미금역을 가기 때문에 대답을 하지 않았다.
4시 30분이 되자, ‘취익’하고 바람 빠지는 소리와 함께 버스의 문이 닫혔다. 버스에는 퇴근하는 직원이 열 명쯤 되었다. 버스는 조심스럽게 회사 주차장을 벗어나 금세 경부고속도로로 진입했다. 분명 이른 시간이지만 고속도로는 벌써부터 차로 붐볐다. 버스는 좌측 깜빡이를 연신 깜빡이며 전용차선으로 올라섰다. 이제는 쭉 달리기만 하면 된다.
도착까지 남은 시간 17분. 나는 내비에서 시간을 확인하고 창 밖으로 시선을 옮겼다. 그곳에는 이미 많은 차들이 꼬리를 물며 조금씩, 조금씩 앞으로 나가는 모습이 보였다.
‘이렇게 집으로 오가는 길이 험난한데, 왜 사람들은 서울에서 살려고 하는 걸까?’
나는 서울 도심을 꽉 채운 차들과 주차 때문에 고생했던 기억이 스쳤다. 역시 ‘서울은 별로야’라고 결론지을 수밖에 없었다.
버스는 전용차선 위를 시원하게 달렸다. 이제 곧 죽전으로 빠지는 타이밍이다. 그런데 버스가 오른쪽 깜빡이를 켜며 속도를 줄이지 않는다. 나는 이상하다고 생각하며 내비게이션을 다시 확인했다. 내비게이션은 어느새 경로를 바꿔서, 판교를 거쳐 미금역으로 다시 내려오는 선을 녹색으로 밝히고 있었다. 도착 시간은 20분쯤 늘어났다. 나는 스쳐 지나가는 고속도로의 풍경을 보며, ‘버스가 판교를 먼저 갔다가 미금역 쪽으로 향하나 보다. 4시 30분 버스는 그렇게 가나 보네’라고 생각했다.
나는 준에게 한 5분쯤 늦을 것 같다고 톡을 보냈다.
판교 어디쯤에서 버스에 있던 승객들이 출입문 앞 쪽에 섰다. 버스는 정차했고, 나를 제외한 승객들은 모두 내렸다. 사람들이 내리고 나서도 한동안 버스의 문이 닫히지 않았지만, 나는 내비게이션 화면을 보며 과연 몇 분이나 늦게 도착할지만 신경 쓰고 있었다. 버스는 판교에서 다시 미금역 쪽으로 방향을 틀었다. 이제 도착 시간은 5시 15분을 가리키고 있었다. 그런데 자꾸 기사 아저씨가 백미러로 나를 살핀다.
결국 나는 정자역 못 미쳐서 급하게 내려야 했다. 다행히도 내리자마자 택시를 잡을 수 있었고, 나는 ‘미금역 4번 출구로 가주세요’라고 말했다. 택시는 내 낌새 때문인지 요리조리 차선을 바꿔가며 빠른 속도로 달렸다. 택시비가 어느새 만원이 훌쩍 넘었다. 나는 쓰린 가슴으로 택시비를 결제하고는 4번 출구에서 기다리고 있던 준을 만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