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은 소리없이 쌓이고(2)

부제 : 친구

by 박경민


2. 핀잔


“야 너는 나이가 몇인데 버스 하나 제대로 못 타냐?”

준은 밝은 표정을 지으며, 나를 보자마자 타박했다. 내 얼굴에도 저절로 웃음이 번지며 머릿속에 여러 변명거리가 떠올랐지만, 굳이 꺼내지는 않았다.

“몰라, 이 자식아.”

우리는 서로의 얼굴만 봐도 웃음이 터지는 스무 살 그 시절로 돌아간 듯 킥킥대며 대로변 안쪽으로 걸음을 옮겼다.

“잘 지냈냐? 어째 살이 좀 빠진 거 같다?”

“맨날 똑같지. 그대로야, 살이 빠지긴 뭘. 넌 별일 없냐?”

“나야 뭐 늘 한결같지. 야 근데 뭐 이렇게 택시비가 비싸. 만원 넘게 나왔어.”

“한 정거장일 텐데, 만원이 넘었다고?”

“그니까. 기사아저씨가 엄청 밟아주시긴 했는데… 와 택시 비싸네.”

우리는 실없는 소리를 주고받으며 근처 고깃집으로 들어갔다. 1차는 항상 삼겹살에 소맥이다. 가게는 아직 여섯 시 전임에도 테이블이 제법 차 있었다. 우리는 제일 구석에 자리를 잡고 돼지고기 모둠세트와 소주 하나, 맥주 하나를 시켰다. 자리에 앉자마자 나는 버스 기사님과 백미러로 나눴던 그 묘한 교감에 대해 이야기했다. 우리는 ‘분당 가시는 분?’이라고 기사가 물었을 때, ‘저 미금역 갑니다’라고 대답을 했어야 한다는 결론을 내리며 깔깔대며 웃었다.

“나는 미금이 분당인지 몰랐지”

내가 볼멘소리를 하자 준이 “그래, 그럴 수 있어”라며 웃으며 답해주었다.

밑반찬이 깔리고 고기가 담겨 있는 접시가 나왔다. 준이 “아. 이게 양이 맞나?”라고 말했고 나는 “어차피 이제 많이 못 먹어”라고 대답했다. 예전에는 일 차에서 소주 두 병에 맥주 대여섯 병을 마셨다. 당연히 안주도 거기에 맞게 먹었다. 기본 2인분에 추가 2인분에 모자라면 추가 1인분까지. 하지만, 언제부턴가 일 차는 소주 한 병에 맥주 두 병, 안주는 처음 시킨 것으로 끝이었다. 많이 먹기도 힘들고, 건강도 생각해야 하기 때문이다.

얼음이 담긴 아이스 버킷에 소주 한 병과 맥주 한 병 그리고 토르 망치(?)가 꽂혀서 테이블 옆에 놓였다. 소주잔 두 개, 맥주잔 두 개가 테이블 위에 놓였다. 난 아이스 버킷에서 술병을 꺼내며 말했다.

“토르 망치가 있네. 이건 라이터인가?”

잔을 세팅하던 아르바이트생이 피식하고 웃었다. 준이 또 타박했다.

“야, 그거 병따개잖아. 산속에서 살다 왔냐? 좀 힙한 데 좀 다니고 그래!”

“아 이거 병따개야? 난 화로에 불 붙이는데 쓰는 건가 했지.”

나는 다시 실없이 웃었고, 준도 나를 보며 미소 지었다. 역시나 아르바이트생은 토르 망치 없이 세련된 움직임으로 화로에 불을 붙였다. 불판에 온도가 오르자 고기가 올려졌고, 아르바이트생이 요리 저리 살펴가며 고기를 뒤집고, 잘랐다. 나는 토르 망치를 사용해서 맥주병을 따고, 소맥을 말아준다고 했다.

“야 그래도 나 소맥 타는 법 배웠잖아.”

“누구한테?”

“있어. 잘 봐봐.”

“야, 너 맥주잔 깨졌어”

맥주를 따르기 직전에 준이 말했다. 그의 말대로 내 맥주잔에 이가 나가 있었다. 맥주병을 들고 있던 손이 허공에서 멈춰버렸다.

“잔까지 씹어먹을 나이는 지났지 않았어?”

준은 정신 차리라고 말하면서 새 맥주잔을 주문했다.

“퇴근 버스도 그렇고, 오늘 일진이 사나우시네”

준이 웃으면서 말했다. 나는 지금 순간이 꿈같은 느낌도 조금 들었다. 현실감이 옅어진 느낌이었다.

“그러게, 정신이 좀 나간 거 같기도 하고”

“너 오늘 조심해야 쓰것어.”

나는 며칠 전에 받아 든 건강검진 결과가 떠오르며 등골이 살짝 서늘해졌다. 하지만 그냥 웃고 말았다. 우리가 계속 농담 따먹기를 하며 큭큭거리는 사이에 새 맥주잔이 도착했다. 나는 먼저 소주잔 두 개를 포갠 후 포개진 경계만큼 소주를 따랐다. 그리고 맥주잔에 로고가 적힌 곳까지 맥주를 따른 후 소주를 맥주잔에 부었다.

“이게 중요하다고.”

숟가락을 들어 맥주잔에 담고 바닥을 한번 ‘탁’하고 치자, 바닥에서부터 거품이 올라오며 소주와 맥주가 경계 없이 뒤섞였다.

“이렇게 거품이 쫙 올라오면서 소주랑 맥주랑 섞여줘야 맛이 좋더라고. 요것이 중요해”

“알았어. 알았어. 근데 술 좀 다시 얼음에 넣어”

“아~ 이 얼음 들어있는 게 그런 용도야? 시원하게 마시라고? 오 좋네”

“소맥 타는 건 배웠는데, 이런 건 처음 보는구나. 좀 다녀, 인마”

준이는 계속해서 나를 타박했고 나는 그 상황이 이상하게 웃겨서 큭큭 대며 웃었다.

“아이 웃긴다. 한잔 하자”

우리는 잔을 부딪치고, 시원하게 한 잔 들이켰다. 잔을 비우고 나서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내가 이런 핀잔을 받고도 신나게 웃는구나’

언제부터인가 나는 실수나 잘못을 하지 않으려고 노력했다. 긴장 속에서 살고 있는 기분이었다. 최근에 다른 사람에게서 부정적인 말을 들었던가? 밖에서는 농담이라도 나에게 핀잔을 주는 사람이 없었고, 만약 그랬다 하더라도 지금처럼 기분 좋게 웃을 것 같지도 않았다.

고기가 다 구워졌는지 아르바이트생이 조금만 더 있다가 드시면 된다고 말했다. 그리고 테이블에 놓인 와사비와 소금, 멜젓을 가리키며 쌈에 미나리와 와사비를 함께 싸서 드시면 맛이 좋다는 말을 남기고 자리를 떠났다. 나와 준은 아르바이트생이 시키는 대로 상추쌈 위에 고기를 올리고 미나리와 와사비 그리고 마늘과 청양고추를 올려서 싸 먹었다. 입 안에서 쌈 재료들이 섞이며 여러 가지 맛이 느껴졌다. 다른 곳보다 고기가 부드럽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른 시간에 손님이 많았던 이유가 있었다.

“고기 맛있네.”

“그러게 고기 부드럽네.”

나는 새로 소맥을 말았다. 마지막에 숟가락을 넣고 거품을 내는 게 은근히 귀찮다는 생각이 들었다. 두 번째 잔까지만 술을 섞었고 그다음부터는 그냥 편하게 마셨다. 우리는 먹고 마시며 서로의 이야기를 했다. 대학 때 있었던 일, 회사 이야기, 머리숱과 전립선 문제에 대해서. 우리 둘의 호탕한 웃음소리는 끊이지 않았고, 나는 이렇게 별생각 없이 신나게 웃는 것이 정말 오랜만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가슴속이 가벼워지는 느낌이 들었다.


우리는 자리를 옮겼다. 어둑한 조명에 좁다란 통로, 작게 쪼개진 공간으로 구성된 일본 주점이었다. 우리는 사케 한 병과 연어 샐러드를 시켰다. 사케와 조그마한 잔이 나왔고, 나는 사케를 따르며 건강 검진 결과를 이야기했다.

“나 건강검진 결과 나왔는데 동맥경화로 이상소견 나왔더라”

나의 갑작스러운 고백에 준이 갑자기 걱정스러운 표정이 되었다.

“병원은 가봤어? 그거 조심해야 돼. 약 먹어야 할걸”

“일단 퇴근하고 집에서 운동하면서 땀 좀 흘리고 있어. 병원은 아직…”

나는 별일 아니라는 듯 웃으며 말했다.

“그거 약 먹으면 돼. 그럼 금방 좋아질 거야”

준도 표정을 풀고 웃으며 말했다.

“나도 고지혈증 때문에 약 먹는데 수치 많이 좋아졌더라, 그냥 약 먹으면 돼”

우리는 서로를 보며 씁쓸하게 웃었다.

“야, 이제 우리가 이런 걱정하는 나이가 됐다”

제대 후 복학하기 전에 신촌에서 밤을 새우며 술잔을 기울이던 기억이 스쳤다. 여자친구와 헤어졌다며 걸려온 전화에 밤늦게 인천에서 신촌까지 달려갔었다. 그리고 죽상인 얼굴의 준을 만났다. 지금 눈앞에는 그때의 젊은 대학생이 아니라 둥그스름한 얼굴에 풍채가 제법 좋아진 아저씨 한 명이 있다. 나이를 먹어 모습이 변했지만 내겐 분명 같은 사람이었다.

“그러게, 난 그대로인데 몸만 늙는 거 같아”

지난번 만났을 때 주고받았던 이야기가 생각났다.

“아 맞다. 너 전립선은 이제 괜찮냐?”

우리는 지난번 만났을 때, ‘와 우리가 이제 전립선 걱정을 한다'며 한참을 웃었더랬다.

“괜찮지. 그때 고지혈증 약이 엄청 셌나 봐. 약 바꾸고 나서는 괜찮아졌어”

준은 고지혈증 진단을 받고 약을 처방받았는데 그때부터 이상하게 전립선에 통증이 생겼다고 했다. 회사에서 앉아있지도 못할 만큼 괴롭다며 지난번 만남 때도 엉덩이를 들썩거렸었다. 이런저런 약을 먹어보다가 고지혈증 약을 바꾼 후 증상이 사라져서 이제는 살만하다고 했다.

“야, 그 티브이에서 광고하잖아. 강호동도 나오고 안정환도 나오고 그러더구만. 그런 거라도 먹어”

“내가 그거 의사한테 물어봤지. 소용없다더라”

“와 씨, 그런 거 소용없나? 나도 요즘 밤에 깨는데, 그거라도 먹어볼까 했지.”

나는 요즘 겪고 있는 고약한 상황에 대해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어느 날부터 화장실을 가고 싶어 새벽에 깬다. 그리고 다시 잠이 들지 못한다. 다음 날에도 어김없이 새벽에 깬다. 다시 잠을 설친다. 이런 날이 며칠이고 계속된다. 피로가 쌓이고 몸과 마음이 지친다. 가끔은 가슴에 뻐근함이 느껴진다. 그러면 여지없이 퇴근 후 소파에 쓰러지거나 주말을 통째로 날린다. 이런 패턴이 반복된다. 그럼에도 나는 매일같이 회사에 가야 한다.

“죽겠더라고. 삶의 질이 너무 안좋아졌어...”

준은 의미심장한 미소를 지으며 말을 받았다.

“야, 난 한참 됐어. 주변 또래들은 다 비슷할껄. 그냥 그렇게 사는 거지, 뭐”

“그런거야? 아니 이게 이렇게 힘든데, 방법이 없나?”

“너도 이제 약 먹어야 돼. 병원가.”

우리는 계속해서 잔을 비워가며 키득키득거렸다.

“야, 맞다. 너 블라인드 안 하지?”

준이 사케 잔을 만지작거리며 넌지시 물었다.

“어, 나 그런 거 골치 아파서 안 봐. 왜, 또 누가 회사 욕이라도 써놨냐?”

“욕 정도가 아냐. 나 저격글 올라왔었어.”

준이 스마트폰을 내밀었다. [휴게실에 상주하는 '그분' 정체가 뭐임?]이라는 제목의 글이었다. 내용은 가관이었다. '매일 특정 시간만 되면 휴게실 소파와 물아일체가 되는 임원', '월급은 숨만 쉬어도 나오는 줄 아는 진정한 월급 루팡'이라며 아주 뼈 때리는 글이 적혀있었다.

나는 “와 이게 너야?”, “유명인이네”라며 또 킥킥대며 웃었다.

“야, 준아. 이건 네가 잘못했네! 임원이 왜 맨날 휴게실에 가 있었어?”

내 핀잔에 준이 억울해 죽겠다는 표정으로 사케를 들이켰다.

“야! 내가 놀러 갔겠냐? 아까 말했잖아, 전립선! 그 약 부작용 때문에 밑이 빠질 것처럼 아픈데 어떡하냐고. 사무실 의자는 딱딱해 죽겠지, 한 시간만 앉아있어도 눈앞이 노란데. 그래서 휴게실에서 잠깐 아래쪽에 쉼을 준거지. 그게 진짜... 졸라 아팠어, 인마!”

준의 처절한 외침에 나는 배를 잡고 웃었다.

“아니, 그럼 인사팀 가서 ‘저 전립선이 아파서 휴게실 좀 가겠습니다’라고 리포트라도 쓰지 그랬어? ‘전립선 보호 차원의 유연근무제 실시’ 뭐 이런 거 건의해 봐.”

“미친놈, 그게 말이 되냐? 본사에서 팀장이 와서 ‘요즘 고충 있으시냐’고 묻더라. 거기 대고 ‘제 전립선이 고충입니다’라고 어떻게 말해! 그냥 컨디션 난조라고 했지. 아무튼, 요즘 신입들 무서워.”

나는 웃음을 멈출 수가 없었다.

“야 내가 알았으면 오랜만에 키보드 워리어가 돼주는 건데. 니들이 전립선이 아파봤냐고?! 아무것도 모르면서 말이면 다냐고, 아주 그냥 눈물이 쏙 빠지게 까줄 수 있는데.”

준도 아주 어처구니가 없었다며 계속 웃었다.

“그러니까! 억울해서 잠이 안 오더라고. 내가 그 글 밑에 댓글 달 뻔했다니까? 대충 누군지도 알겠는데 말이야.”

우리는 서로의 얼굴을 보고 한참을 킥킥거렸다. 준의 억울한 사연은 어느새 안주가 되어 사케 한 병을 비워내고 있었다. 역시 겪어보기 전까지는 알 수 없는 게 인생이다. 우리도 신입시절에 맨날 상사들 욕했는데, 아마 그들도 다 나름의 사정이 있었을 것이다.

“그래도 이제 안 아파서 다행이네. 이제 블라인드에 ‘휴게실 귀신 성불했다’고 올라오겠어?”

“어휴, 이제 무서워서 화장실도 전력 질주로 다닌다 내가.”

우리는 잔을 부딪쳤다. 아저씨들의 비애가 담긴 사연이었지만, 술기운 때문인지 아니면 서로의 밑바닥 사정까지 다 아는 친구 앞이라 그런지, 그저 웃기기만 한 밤이었다. 가슴속의 남아있던 응어리가 웃음 섞인 사케 향에 씻겨 내려가는 기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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