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은 소리없이 쌓이고(3)

부제 : 친구

by 박경민


3. 속내


사케를 비우고 나오자 시간은 9시가 다 되어 있었다. 우리는 보통 2차까지만 하고 깔끔하게 헤어진다. 다음 날의 숙취와 체력을 걱정해야 하는 나이가 됐으니까. 하지만 오늘은 왜인지 조금 아쉬웠다. 내가 가게 앞에 서서 신발 끝으로 바닥을 툭툭 치며 밍기적거리자, 내 눈치를 살피던 준도 같은 마음이었는지 “3차?”를 외쳤다.

“좋지!”

나는 기다렸다는 듯 맞장구를 쳤다. 우리는 근처 수제맥주집으로 자리를 옮겨 맥주 두 잔과 감자튀김을 시켰다. 가게는 조용하고 한적했다. 시끌벅적한 고깃집과 이자카야를 거쳐 오며 에너지를 쏟아낸 탓인지, 준과 나도 어느 정도 차분해졌다.

준이 맥주 거품을 한 입 머금더니 물었다.

“참, 너 글 쓰는 건 잘 돼가냐? 요즘도 퇴근하고 맨날 노트북 붙잡고 있어?”

준은 내가 글을 쓰고 있다는 걸 아는 몇 안 되는 사람 중 하나다. 그의 물음에 나는 씁쓸한 미소를 지으며 잔을 만지작거렸다.

“잘 될 리가 있냐. 지난여름에 땀 흘리며 쓴 장편이 하나 있는데, 그거 요즘 출판사에 보내는 족족 까이고 있어. 아니 애들은 ‘아니면 아니다’라고 메일이라도 한 통을 줘야 될 거 아냐. 답도 없어, 답답하게”

“그래? 야, 그래도 한 권을 다 썼다는 게 어디냐. 대단하네.”

“대단하면 뭐 해, 아무도 안 읽어주는데. 야, 너라도 읽어볼래? 한 10만 자 정도 되는데.”

내 제안에 준은 단 1초의 망설임도 없이 손사래를 쳤다.

“됐어, 인마. 10만 자? 야, 나 요즘 노안 와서 책 같은 못 읽어. 눈이 엄청 침침해. 그리고 너무 길다, 패스!”

“야, 친구가 말이야! 응원하는 마음으로, 야밤에 불을 밝혀가며 독파할 생각은 안 하고. 너무 길다니? 작가 지망생의 꿈을 너무 무시하네.”

내가 장난 섞인 핀잔을 주자 준이 껄껄거리며 웃었다.

“안 돼, 안 돼. 눈 아파. 요약본은 없냐? 요새는 숏폼 시대잖아. 한 세 줄로 요약해 봐.”

“세 줄 요약 같은 소리 하네. 내 땀방울이 서린 문장들을 어떻게 세 줄로 줄여.”

우리는 다시 킥킥대며 맥주를 들이켰다. 투고를 하면서 느껴졌던 막막한 좌절감이 준의 무심하고 솔직한 반응 덕분에 이상하게 조금 작아지는 느낌이었다. 가슴이 조금 가벼워졌다.

"어쨌든 열심히 써라. 응원은 하고 있어."

준은 말없이 감자튀김 하나를 케첩에 푹 찍어 입으로 가져갔다. 맥주잔 표면에 맺힌 물방울이 테이블 위로 떨어져 잔의 경계를 타고 번져나갔다.

“애들은 잘 크고 있고?”

준이 물었다. 내가 이혼 후 아이 둘을 키워낸 시간을 가장 많이 알고 있는 이가 준이었다. 나는 잠시 잔 속에 거품이 올라오는 모양을 지켜보았다.

“잘 크지. 뭐, 애들이야 가만히 두면 저절로 크는건데”

“저절로 크긴, 다 손이 가고 맘이 가고 돈이 가고… 그러면서 크는거지”

나는 얼마 전에 아이들과 함께 있으면서 느껴졌던 기분을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이제 둘 다 중학생인데, 전보다 더 힘든 거 같아”

준이 잔을 들었다.

“왜 뭐가 힘든데?”

나도 맥주잔을 집어 들고 잔을 부딪쳤다. 유리잔이 부딪치는 소리와 함께 탄산이 한꺼번에 잔을 타고 올라왔다. 나는 맥주를 한 모금 마신뒤 말을 이었다.

“예전에 애들 어렸을 때, 지금보다 몸은 훨씬 힘들었거든? 씻기고, 먹이고, 입히고, 재우고. 근데 그때는 힘들다는 생각이 안 들었어. 오히려 애들이랑 있으면 좋고, 에너지가 막 충전되는 기분이 들고 그랬거든. 애들이 노는 것만 봐도 웃음이 절로 나고, 안아달라고 하면 와서 와락 안기고... 그러면 참 행복했단 말이지”

준은 가만히 내 이야기를 듣고 있었다.

“근데 요즘은 안 그래. 애들이 어느 정도 크고 나니까, 내가 무슨 말을 해도 벽에 대고 말하는 것 같아. 무슨 말을 해도 무신경하고. 고맙다는 소리는커녕 귀찮아하고 대답도 안 하니까... 물론 뭐 내가 그동안 잘하지 못했으니까 그럴 수도 있는 건데… 그냥 이제는 애들이랑 있는 시간이 에너지가 충전되는 게 아니라, 내 에너지가 조금씩 줄어드는 느낌이 들어. 소모되는 기분이랄까.”

내 얼굴 위로 씁쓸함이 묻은 표정이 새겨졌다.

"무슨 말을 해도 '내 맘이지'하고 끝이야. 그래 그 네 마음이 어떤 마음이냐고, 그걸 말해달라 해도 답이 없어."

내 머리맡에 와서 자신의 긴 머리카락을 내 머리 위로 펼쳐 나를 장발로 만들고는 깔깔대며 웃던 딸의 모습이 떠올랐다. 그리고 작고 귀여운 손으로 함께 블록을 쌓고 박수치며 기뻐하던 아들의 모습도 떠올랐다. 그때는 그 모습이 이렇게 소중하고, 그리운 순간이 될지 몰랐었다.

“이제는 어디 놀러 가자고 해도 싫다더라. 같이 나가서 밥 먹자고 해도 싫다고 하고.”

준이 다시 잔을 들었다.

“사춘기네.”

나도 잔을 들고 다시 짠을 했다.

“나도 귀찮긴 하거든. 어디 놀러 가고, 밥 먹으러 식당 가고. 근데 함께하는 시간을 갖고 싶다는 생각이 드니까, 같이 좀 해줬으면 하거든. 근데 그런 내 마음은 전혀 신경도 안 쓰고 그냥 귀찮으니까 싫다는 거야. 친구가 부르면 쪼르르 하고 바로 달려 나가면서 말이야. 이제... 그런 게 서운하다.”

준이 얼굴에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갱년기네. 넌 갱년기야.”

그리고는 감자튀김을 입에 넣으며 말을 이었다.

“근데 우리도 똑같았을걸. 우리 사춘기 때도 말이야. 넌 안 그랬어? 나도 생각해 보면 그때는 부모님이 하는 말이 다 그렇게 싫더라. 알지도 못하면서 하는 말 같고. 괜히 무시하게 되고, 안 그래?”

“그치. 나도 살가운 아들은 아니었으니까. 지금도 그렇고.”

“다 보고 배우는 거지 뭐… 근데 있잖아, 네가 노력하고 있다면 애들도 알 거야. 지금 당장은 몰라도, 언젠가는 알게 될 거야. 그리고 그게 당연한 거야. 어릴 때야, 애들이 너한테 전적으로 의지하니까 네가 세상의 전부였던 거고, 지금은 걔들도 자기들만의 우주를 만드느라 바쁜 거지. 네가 서운한 건 네 우주에 걔들이 예전처럼 안 놀러 와서 그런 거고.”

준은 감자튀김으로 나를 가리키며 덧붙였다.

“글 쓰는 것도 그렇잖아. 10만 자나 써서 출판사에 보냈는데 답장 하나 없으면 에너지 소모되는 기분 아니냐? 그래도 너 내일 또 노트북 켤 거잖아. 애들도 똑같아. 대답 안 해도 걔들 마음속 어딘가엔 네가 준 마음이 차곡차곡 쌓이고 있을걸?

삶은 실시간이 아니더라고… 톡처럼 바로바로 답이 오지 않아.

새벽에 내리는 눈처럼 소리 없이 쌓이다가, 어느 날 아침 문을 열었을 때 온 세상이 하얗게 변해 있는 걸 보게 되는 거지. 애들도 너한테 답장을 안 할 뿐인 거야. 근데 그거 다 쌓이고 있어. 그러다가 어느 순간 ‘짠’하고 나타나는 거라니까.

크으, 졸라 멋있지 않냐?”

나는 꽤 괜찮은 삶의 문장들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야, 우리 준이 말이 많이 늘었네. 책 써도 되겠어?”

“책은 네가 써라. 난 노안이라 눈 아파서 안돼. 그냥 옆에서 훈수나 둘란다.”

우리는 서로를 마주 보고 웃었다.

“짠이나 하자”

우리는 맥주잔을 다시 부딪쳤다. 맥주잔을 비우고 바닥에 내려놓자 하얀 거품이 맥주잔을 타고 흘러내렸다.


나는 괜히 핀잔을 줬지만, 준이 한 말이 가슴 한구석에 닿았다. 출판사의 무응답도, 아이들의 침묵도, 내 뜻대로 되지 않아 '소모'된다고 느꼈던 그 모든 순간들도 어딘가에 쌓이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그런 노력들은 언젠가 내가 살아있음을 증명하는 순간이 되어 나에게로 돌아올 것이다.

준이 남긴 말이다.


“너네 애들은 잘 크고? 둘째가 아직 유치원생이지?”

“응. 우리 첫째도 사춘기라, 말이 없어. 둘째는 아직 귀엽지. 근데 둘째가 스무 살이면 내가 환갑이다.”

“와, 진짜 장난 아니다. 힘내야겠어.”

놀리는 말에 진심을 담아 위로를 건넸다.

“너 운동 졸라 열심히 해야겠다? 환갑까지 일하려면?”

“아이… 몰라. 어떻게든 되겠지.”

“그래도 시간 날 때마다 애들한테 시간을 좀 써. 지나고 나면 그때가 그렇게 그립더라. 와이프한테도 잘하고.”

조용한 수제맥주집의 조명이 우리 머리 위에서 따뜻하게 빛나고 있었다.


우리는 맥주를 한 잔씩 더 마시고 가게를 나왔다. 밖으로 나오자 밤공기는 아까보다 조금 더 차가워져 있었지만, 이상하게도 춥다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 우리는 나란히 미금역을 향해 걸음을 옮겼다.

“야, 그래도 이렇게 너 만나서 웃고 떠드니까 좋다.”

가슴속이 몽실몽실하다 못해 하늘을 떠다니는 깃털이 된 것만 같았다.

“그래. 좋네. 오래 보자.”

“오래 보려면 운동해야 돼. 너 병원도 좀 가보고.”

골목길에서 고양이 한 마리가 나타났다. 그 고양이는 반짝이는 눈으로 우리를 주시하더니 건물 주차장으로 휙 하고 숨어버렸다.

“이제 곧 겨울이니까 추워서 못 볼 거고, 내년 봄이나 돼야 한 번 보겠네.”

“겨울에는 추워서 안돼. 몸이 못 버텨. 고생이야, 고생.”

우리는 나이 들어버린 몸이 문제인지, 해이해진 정신이 문제인지를 놓고 티격태격하며 웃었다.

“전립선 건강 잘 챙기고.”

“야 난 이제 괜찮아졌어. 너 전립선 잘 챙기면 돼.”

미금역에서 헤어지기 전에 준의 얼굴을 한번 더 봤다. 젊었을 때와 같은 안경을 쓰고 있었지만 얼굴은 확실히 둥그렇게 변했다. 하지만 활짝 웃는 얼굴은 예나 지금이나 같았다. 나도 준을 보고 활짝 웃었다. 역시 기분이 좋았다. 이렇게 기분 좋게 웃고 떠든 것이 얼마만인가. 예전에는 귀찮기만 했던 저녁 약속이 이제 은근히 기다려지는 이유가 이런 기분 때문일 것이다.

“재미있었다. 담에 또 봐.”

“그래 조심해서 들어가고, 봄에 보자.”

그렇게 우리는 헤어졌다. 나는 개찰구를 통과하기 전에 뒤를 돌아봤다. 저 멀리서 터벅터벅 걷고 있는 준의 뒷모습이 보였다. 곧 코너를 돌아 내 시야에서 사라졌다. 그가 사라진 자리에는 지하철 역의 흐릿한 조명빛만이 조용히 남아 있었다.

이제 나는 분당선을 타고 망포역으로 준은 신분당선을 타고 광교역으로 향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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