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엄이라니
"계엄?!"
24년 12월 4일 출근하자마자 메신저로 친구 녀석에게 말을 걸었다.
어젯밤 계엄 관련 담화를 본 후 '이게 무슨 일인가?', '이제 어떻게 되려나?'라는 걱정으로 눈을 떼지 못한 채 계속해서 뉴스만 지켜봤었다. 다행히도 불미스러운 사태가 발생하지 않은 상태에서 시간은 자정이 넘어있었고, 현장의 분위기도 험악해 보이지는 않았다. 어느 정도 안도하며 '내일 출근해야 하니 일단 자자'라고 마음먹고 잠자리에 들었다. 근데 도저히 잠이 오지를 않았다. '속이 부글부글 거린다. 계엄이라니...' 바로 TV를 다시 켜고는 빨리 의결되어 해제 안이 통과되기를 기다리고 또 기다렸다. 결국 40분쯤 가결을 선포하는 의사봉의 탕, 탕, 타앙 소리를 생방송으로 들을 수 있었고, 이후로도 관련 뉴스를 좀 더 보다가 잠을 청했다.
내일 아침에 눈을 뜨면 계엄 상태이거나 그 전과 같은, 아니 조금은 다른 평범한 일상일 것이었다.
아침이 되니 다행히 전과 같은 평범한 일상으로 하루를 시작할 수 있었다. 나는 출근 후 친구에게 바로 사내 메신저를 날렸다.
"계엄?!"
평소 약간은 보수적인 성향의 친구였지만, 계엄이라는 것이 너무도 비상식적인 행위였다고 생각했기에 비슷한 감정이지 않을까 싶었다. 방식이 너무나도 갑작스럽고 거칠었다.
"아니, 칼을 뽑았으면 무라도 잘라야지. 몇 명 쏴 죽이고 말이야..."
친구의 메신저 글을 본 순간 나는 어젯밤 계엄 선포를 지켜보던 때보다 더 정신이 아득해지는 느낌을 받았다.
"여기 더 미친놈이 있었네..."
"ㅡㅡ; 농담이야 인마, 아니 무슨 계엄을 저딴 식으로 해"
"야.. 어제 실수로 발포라도 한 발 됐으면 오늘 아침 아수라장인 거야..."
"ㅎㅎ 그래도 별 일 없이 끝났으니 다행이지 모"
우리는 아침 내내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다가 서로 "ㅋㅋㅋㅋㅋ"로 마무리하며 대화를 끝냈다.
그리고 가만히 주고받은 대화를 곱씹어 보았다. '그들은 정말 죽이고 싶을 만큼 싫은 사람이 있었던 걸까?'라는 생각이 들어 평범하게 시작된 오늘 아침이 새삼스레 더 감사하게 느껴진다.
내가 회사 생활 초반에 읽었던 책 중에 '2080의 법칙(?)'이라는 이름의 책이 있었다. 자세히 기억이 나지는 않지만 어떤 경우든 20%만 열심히 일하거나, 좋은 성과를 내며 결국 그들이 80%의 결과를 가져간다, 나머지 80%의 경우는 남은 20%의 결과만을 가져갈 수밖에 없다는 내용이었던 것 같다. 따라서 그 법칙을 개인의 삶에 적용하여 내 삶에서 80%의 결과를 내는 20%의 활동을 파악하여 거기에 더 집중할 필요가 있다는 내용의 자기 계발 서적이었을 것이다. 꽤나 타당성 있는 내용이라 내 시간 중 중요한 상위 20%의 시간은 무엇인가?라는 고민도 해봤던 것 같다.
그런데 삶을 더 살아보니 상위 20%와 하위 20%는 관점의 차이일 뿐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만약 하얀색에 가치를 두고 있는 상태라면 하얀색 상위 20%에 집중하는 것이 효율적일 것이다. 반대로 검은색에 가치를 두고 있는 상황이라면, 하얀색에 집중하는 행위를 하찮은 짓으로 볼 수밖에 없을 것이다.
하지만 현실은 꼭 하얀색이거나 검은색이거나로 구별되지 않았다
회사 업무를 예를 들면, 내가 만약 불량 분석 업무에 중요한 가치를 두고 있는 사람이라면 이런저런 기능을 자꾸 개발해서 없던 불량을 만들어내는 개발자를 싫어할 수밖에 없다. 반대로 더 좋은 제품을 만들고자 새로운 기능을 개발하고 적용하고 싶은 개발자라면 불량 발생 가능성을 이유로 사사건건 딴지를 걸거나, 중요해 보이지 않는 불량을 자꾸 들이밀면서 개발을 지연시키는 그들이 싫을 수밖에 없는 것이다.
이때 둘 중에 틀린 사람은 없다.
또, 이것도 해보고 싶고, 저것도 해보고 싶은 모험가의 성향을 가진 사람은 자신에게 큰 만족감을 가져다주는 도전 정신이 삶에서 중요한 20%가 될 것이지만 반대로 안정적이 삶을 추구하며 현재를 지키고 싶은 성향의 사람이라면 위험이 큰 도전 정신을 절대로 본인의 중요한 가치 20%에 포함시키지 않을 것이다.
이때 둘 중 하나의 성향만 가지고 있는 사람은 없으며 성향이라는 것은 상황에 따라 변한다.
그래서 생각했다. 모든 일에는 20%의 내 맘에 드는 무엇과 20%의 내 맘에 들지 않는 무엇이 함께 있다. 하지만 상황에 따라 맘에 드는 무엇이 맘에 들지 않는 결과로, 맘에 들지 않는 무엇이 맘에 드는 결과로 바뀔 수도 있다. 그러니 너무 한쪽에만 집착하지는 말자라고 말이다.
아침에 친구와의 대화에는 아래와 같은 내용도 있었다.
"야 너가 왕인데 백성이 100명이 있어"
"내가 왕이야? 좋아, 아주 좋아"
"ㅋㅋㅋㅋ", "근데 그중에 20명은 너 맘에 들고 20명은 맘에 안 들어"
"ㅇㅇ"
"그럴 수밖에 없잖아. 어떻게 100명이 다 너 맘에 쏙 들겠어?"
"그래, 그렇다 치고?"
"그래서 넌 맘에 안 드는 20명을 죽였어"
"ㅡㅡ 내가 미친 왕이야?"
"그렇지 미친 왕이지.", "ㅋㅋㅋㅋ"
"ㅋㅋㅋ 그래 그렇다 치고?"
"그렇게 맘에 안 드는 20명을 죽이고 나서 왕은 아주 태평성대가 될 줄 알았지.", "그렇게 일 년이 지났어"
"ㅇㅇ"
"백성이 80명이 남았잖아. 근데 이게 또 일 년이 지나고 보니깐 그중에 20%인 16명은 맘에 들고, 16명은 맘에 안 드는 거야. 그럴 수 있잖아, 정치라는 게 그런 거니깐"
"ㅇㅇ 그래서 또 죽여? 16명을?"
"그렇지. 맘에 안 드니 같이 있고 싶지 않은 거지. 자기가 바라는 이상향은 백성 모두가 내 말을 잘 따르는 지상낙원이거든. 그래서 맘에 안 드는 사람이 있으면 안 돼"
"그럼 이제 백성이 64명 남은 거네. 일 년이 지나면 또 12명이 맘에 안 드는 거고?"
"너 머리가 상당히 좋구나? 하나를 알려주면 둘 정도까지는 아는 가 보네?ㅋㅋ"
"ㅋㅋㅋ 똘아이인가?"
"자 그럼 백성이 이제 몇 명 남아?"
"52명?"
"그래 그렇게 되겠지. 근데 그런 식으로 계속 시간이 지나면 끊임없이 누군가는 맘에 안 드는 사람이 되버리는 거야. 그러다 보면 너에게 소중했었던, 지금까지 언제나 너 맘에 드는 축에 속했던 최초의 측근 20명 중에서도 결국 마음에 안 드는 사람이 나오게 될 거야. 넌 배신자라고 낙인찍겠지"
"그래서 하고 싶은 말이 무언데?"
"착하게 살라고 븅딱아, 맘에 안 든다고 쏴 죽이지 말고"
"또 지랄이네, 잊을만하면 지랄이구만"
"ㅋㅋㅋㅋ"
"ㅋㅋㅋㅋㅋ"
'결국 너에게 소중한 사람을 지키는 방법은 너 마음에 딱 맞는 완벽한 세상을 만드는 것이 아니라 마음에 들지 않는 구석이 있더라도 함께하는 세상을 만드는 것이다'라는 그럴싸한 말까지 하려고 했으나, 하나를 알려주면 못해도 둘은 아는 녀석이니, 어련히 알고 있겠거니 하고 메신저에 글을 더하지는 않았다.
어떤 종류의 집착은 너무나 파괴적이다.
그러므로 너무 과도하게 집착할 필요는 없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