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퍼펙트 데이즈』: 일상 속 소확행

- 반복되는 일상 속에서 찾는 완벽한 하루 -

by BYC

'퍼펙트 데이즈(Perfect Days, 2024년 국내 개봉)’는 영화 ‘베를린 천사의 시’로 유명한 빔 벤더스 감독이 일본을 배경으로 만든 작품이다. 주연을 맡았던 배우 야쿠쇼 코지는 칸 영화제에서 남우 주연상을 받는 등 연기력을 인정받았다. 영화에 대한 평이 좋아 기회가 되면 보겠다는 생각을 가졌고, 주말에 사무실에 나갔다 근처 극장에서 혼자 보았다.


영화는 특별한 사건, 갈등, 위기 없이 도쿄의 공중화장실 청소부 히라야마의 일상을 잔잔하게 그리고 있다. 그러면서 그 삶 속에서의 순간순간의 소중함과 의미를 다시 되짚어보게 만든다.


평범한 일상 속에서 찾는 소소한 행복


히라야마는 정해진 루틴대로 하루를 보낸다. 아침에 눈을 뜨면 세면을 하고, 작은 분재에 물을 준다. 자판기에서 캔 커피를 뽑아 마시고, 작업복을 입고 작은 승합차를 몰고 차 안에서 카세트테이프로 올드 팝을 들으면서 직장으로 향한다. 출근을 해서는 도교 시부야의 공공 화장실을 꼼꼼하게 청소한다. 점심시간에는 공원의 정해진 장소에 가서 샌드위치를 먹고, 나무 사이로 비치는 햇살을 필름 카메라로 찍는다. 퇴근 후에는 대중목욕탕에 들러 몸을 씻고, 단골 식당에서 간단히 식사를 한다. 그리고 책을 읽으며 하루를 마무리한다.


평일의 루틴이 잠시 멈추는 휴일에도 그의 삶은 여전히 큰 변화가 없고 규칙적이다. 밀린 빨래를 하고, 헌책방을 찾아 저녁에 읽을 새로운 책을 구매한다. 그리고 필름 카메라로 찍은 사진을 현상소에 맡기거나 찾아온다. 평일 저녁처럼 단골 식당에 가서 식사를 하거나 조용히 시간을 보낸다.


우리가 보기에는 단순하고 반복적이고 무료한 생활이지만, 히라야마는 그 삶 속에서 자신만의 취미와 소소한 기쁨을 찾고 또한 거기에 만족하며 살고 있다. 복잡한 세상사에서 벗어나 소확행(소소하지만 확실한 행복)을 즐길 수 있는 작은 세계를 만들어 그 안에서 평온함을 얻고 완벽한 하루를 만들어 나가는 것이다.


고요한 루틴에 발생되는 작은 소란


히라야마의 고요한 일상에도 찾아오는 작은 변화와 관계가 있다. 우선, 그의 젊은 직장 동료 다카시다. 다카시는 히라야마와 정반대의 성향을 보인다. 자주 지각하고, 대충 일하는 등 일에 성의가 없다. 매사에 불평도 많고 돈과 연애에 집착한다. 히라야마에게 돈이나 차를 빌려달라고 자주 부탁한다.

“얼마 전에 일하러 갔는데 정말 힘들었어요. 들어가서 나오질 않는 거 있죠. 10점 만점에 8점 정도로 힘들었어요. 듣고 계세요? 히라야마 씨, 뭘 그렇게까지 하세요. 어차피 더러워지는데.”


다카시는 히라야마의 조용하고 정돈된 세계에 일종의 소란을 가져오는 존재이다. 느슨하고 즉흥적이고 외부적인 관계와 돈에 크게 의존하는 젊은 다카시는 히라야마의 삶의 방식을 이해하지 못한다. 어찌 보면 히라야마를 신기하게 여긴다. 히라야마는 다카시의 철없는 행동을 뭐라고 이야기하지 않고 인내심 있게 받아주지만, 그의 가치관에 동조하지는 않는다. 묵묵히 자신의 일을 함으로써 타인이 아닌 자신만의 기준으로 삶을 채워 나간다.


고요한 일상에 스며드는 조카 니코와의 만남


엄마와 싸우고 가출한 조카 니코가 갑작스럽게 찾아온다. 처음 조카를 보고 당혹함을 느꼈지만 니코를 집에 들인다. 히라야마는 니코를 일터에 데려가고, 카세트테이프를 들려주고, 청소 일도 함께 하고, 책도 빌려주면서 자신의 삶을 공유하며 관계를 발전시켜 나간다. 이를 통해 니코는 물질적 풍요와는 다른 차원의 평온함을 경험한다.


둘은 자전거를 타고 다리 위를 건너다가 잠시 멈춰 강을 바라본다. 니코는 “이 강을 따라가면 바다야?”라고 묻는다. 그리고 바다에 가자고 말한다. 그러자 히라야마는 “다음에”라고 답했고, 다시 조카는 “다음이 언제인데?”라고 되묻는다. 그러자 히라야마는 “다음은 다음이고 지금은 지금!”이라고 대답한다. 이 영화에서 가장 널리 회자되는 이 문구는 현재에 충실한 삶을 살고자 하는 히라야마의 마음이 담겨있다고 볼 수 있다. ‘내일 일은 난 몰라요. 하루하루 살아요’라는 복음성가의 구절처럼 그에게 삶의 진정한 의미는 현재의 불완전함을 회피하고 미래의 막연한 기대나 과거의 후회에 있지 않고, 바로 이 순간 하루하루를 충실하게 사는 것에 있다. 머릿속으로 이해하지만 실제로 행하기 어려운 일을 그는 실행하고 있는 것이다.


코모레비 : 루틴 속에서의 변화


영화가 끝나고 엔딩 크레디트가 올라간다. 예전에는 당연히 자리를 박차고 나왔지만, 지금은 습관처럼 엔딩 크레디트가 끝나기를 기다린다. 그리고 기대를 배신하지 않고 아래와 같은 글이 뜬다.

“코모레비는 '흔들리는 나뭇잎 사이로 일렁이는 햇살'을 뜻하는 일본어입니다. 코모레비는 바로 그 순간에만 존재합니다.”


코모레비는 바람이 불고 나뭇잎이 흔들릴 때마다 모양과 위치가 시시각각 변한다. 그렇기 때문에 히라야마가 매일 점심시간에 같은 나무를 찍지만, 단 한 번도 같은 사진이 나올 수 없다. 히라야마의 삶은 코모레비와 같다. 평범한 일상 속에도 변화는 있고, 찰나의 기쁨과 아름다움을 발견할 수 있기 때문이다. 히라야마가 "아무것도 변하지 않는다는 건 말이 안 되잖아요"라고 말한 것처럼.


영화의 마지막 부분에는 노래 ‘Feeling Good’이 흐른다. ‘새로운 새벽. 새로운 날. 나를 위한 새로운 인생. 나는 좋은 기분을 느껴(It's a new dawn. It's a new day. It's a new life for me. And I'm feeling good).’ 매일의 평범한 루틴 속에서도 변화와 새로움은 있고, 그러한 변화에 잘 대처해 나가면서 삶의 풍요와 행복을 느낄 수 있는 것이다.


어떤 삶을 선택할 것인가?


조카 니코가 히라야마에게 묻는다. “엄마 말이 삼촌은 우리랑 다른 세상에 산대.” 이에 히라야마는 “그럴지도 모르지. 알고 보면 이 세상은 수많은 세상으로 이뤄져 있거든. 연결된 것처럼 보여도 그렇지 않은 세상도 있지. 내가 사는 세상과... 니코 엄마가 사는 세상은 많이 달라.”라고 대답한다. 그러자 니코가 다시 말한다. “나는? 난 어느 쪽 세상에 사는데?”


영화는 정답을 주지 않는다. 사실 정답이 있을 수 없는 문제이다. 결국 그녀가 사는 세상은 그녀의 선택에 달려있다. 한 가지 바란다면 떠밀리다시피 한쪽을 선택하는 것이 아니라, 자기 주도적으로 자신만의 가치를 가지고 삶을 살아가면 좋겠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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