둘째 조카의 돌잔치에서 사돈어른과 와인 한 병을 다 마시고 돌아왔다. 내가 미쳤지 정말 밑도 끝도 없는 행동이었는데. 그렇게 마시게 된 이유는 너무 내성적이라 그런 공적인 자리가 부담이기도 했고, 또 엄마를 택시에 모시는 이슈는 둘째치고 우리가 사정으로 엄마와 둘만 참석을 했는데, 그 허전한 테이블에 마음 크신 사돈어르신 (조카의 할머니 되시는 분)께서 함께 자리해 주셔서 기쁜 마음이 컸기 때문이었다. 둘이 앉기에는 더없이 큰 자리었는데 민망함을 달래주시듯 먼저 다가와 앉아주셨기에 감사해서 더 와인이 홀짝홀짝 들어갔던 것 같다. 또 한 마음으로는 동생이 그만큼 조카를 키워낸 게 기쁘고 뿌듯하기도 했다.
사돈 어르신은 농사일을 이것저것 안 하는 곡물이 없이 하시며 내 몫까지도 보내주시던 마음 넉넉하신 분인데. 정말 특별한 인연일까? 사돈으로 맺은 우리는 오래전 고향, 같은 동향분이었다. 이렇게도 인연이 닿는구나 싶어 신기하기도 하였다. 그날은 손을 다치셔서 꿰매는 수술을 크게 하시곤 참석해 주셨는데 나를 배려하시며 와인을 음미하시던 모습이 참 좋아 보였다. 같이 주거니 받거니 우리 사이에 앉으신 엄마를 두고, 계속 눈빛을 나누며 한잔 한잔 와인타임을 가졌는데. 마실수록 긴장도 풀리고 그 자리가 즐겨지더라. 조금씩 우리 둘째 조카의 얼굴이 얼마나 자랐는지도 보이고. 얼마나 시간이 흘렀는지도 느껴지고.
사돈어르신은 드시다가 이런저런 얘기를 나와 나누셨는데. 나에게 살 빼지 말라고 지금도 이쁘다고 하시며 따뜻한 말씀을 해주셨었다. 이런 어르신이 동생의 어머님이라는 게 좋았다. 사돈 어르신이 취기가 조금 오르셨던 걸까? 나에게 조카 누구의 이모이시니 '이모님'이라고 부르시겠다고 하셔서, 나는 그냥 "그냥 편하시게 사돈처녀라고 불러주세요."라고 했는데. 그래도 '이모님'이라시며 웃으시기에 "그럼 저는 동생의 어머님이시니 저도 '어머님'이라고 할래요"라고 너스레를 떨었고, 그 와중에 자리가 조금씩 정리되자 동생의 작은 형님은 내게 화이트 와인 한 병을 또 들고 우리 테이블에 오셔서 내가 따라드리려 하는데 모두들 다급히 말렸다. 남들이 볼 때 웃기는 상황이었지만, 스스로도 웃겼던 건 내가 생각해도 나 어디로 튈지 모르는 럭비공 같긴 했다.
그래도 실수 없이 잘 마무리하고 돌아서는데, 제부가 마중하면서 표정을 어둡게 짓길래 등짝스메싱을 날렸다. 이런 날 내가 여기까지 와서 이런 것도 못 즐기냐고. 그런 의미의 스메싱. 그리고 동생에게 더 잘해달라는 의미도 담긴 손길이었다. (아프셨으려나?) 우리는 헤어질 때까지 같이 동생네로 가서 뒤풀이 하자며 모임을 주도했는데 부담스러워하던 동생네 내외를 위해 이만 파하기로 하였다.
경조사만 되면 부담스럽고 걱정부터 앞서던 내가 항상 그런 자리에 가서 와인이나 무언갈 마시는 이유는 그런 소심한 내 성격을 조금 털어내기 위함이다. 오해들 말아주시라. 나는 술을 사랑하는 게 아니라 솔직한 내면 깊은 곳 어딘가의 명랑함을 끄집어내기 위함이라. 사돈어르신, 돌잔치에서 만난 '와인친구님' 감사했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