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모님과 오랜만에 드라이브를 나섰다. 처음으로 강화도의 교동대교를 건넜다. 엄마가 북한의 가장 가까운 곳을 보고 싶다고 하셨다. 우리는 고향을 떠올리며 겨울의 논과 밭 그 휑하고 쓸쓸한 자리를 휘저었다. 어제부터 나를 줄곧 괴롭혔던 몸살이 나를 조금씩 떠나가고 있어서 함께하기로 한 것이다. 다 돌아보고 바람을 쐬고 우리는 강화도 어느 대로변 식당에서 도토리묵과 도토리묵전, 닭곰탕을 시켰고 강화도 전통 쌀막걸리를 시켰다.
혼자 마시는 막걸리였지만 함께 자리해 주시는 부모님 덕에 몸살기운을 날려버리려 전통주를 한 모금씩 삼켰다. 엄마는 특별히 묵무침이 새콤달콤하고 야채가 싱싱해서 맛있다고 하시며 연신 드셨다. 젓가락질을 멈추지 않으셨기에 다같이 맛을 즐겼다. 아빠는 아빠대로 뜨끈한 닭곰탕에 고춧가루와 소금을 본인 입맛에 맞추어 간을 하시곤 뚝배기에 담긴 국물로 속을 데우셨다. 가장 편안한 식사는 각자 자기 입맛대로 자기 상황에 맞게 먹는 식단이다.
너무 서로를 배려한다고 억지로 입에 안 맞는 음식을 누군가 먹고, 그 배려를 부담스러워하는 자리는 더부룩함을 남기곤 한다. 그렇다고 항상 편안한 사람과만 식사를 할 수는 없으니 그 또한 삶에서 받아들일 한 부분이라 생각하곤 한다.
아빠 엄마와 먹는 음식자리 후 차에 올라탄 나는 조금 솔직해진 마음에 고민을 털어놓았다. "아빠 진짜 효도는 엄마 아빠 살아있을 때 얼른 결혼도 하고, 잘 사는 모습을 보여주는 거겠지?" 그러니 운전 중에 아빠의 대답은 "해서 불행해봐라 그게 부모가 바라는 효도인가." 한 대 맞은 듯한 마음반 막걸리 기운에 조금 더 솔직해진 마음 반으로 한 대답은 이러했다. "그러니까. 나는 아직 부모가 안 돼서 부모맘을 모르겠어" 그리곤 엄마에게 물었다. "엄마 그럼 무소식이 희소식이다 하고 잘 살아낼까?" 그러니 엄마의 더듬는 한마디 "그래도 철새처럼 가끔씩 기쁜 소식은 들려줘야지."
진짜 아직도 어리고 모자란 나는 정말 부모 마음을 모른다. 갈길이 멀어서 그럴까? 아직도 성장에 대한 갈증. 나아갈 방향성에 대한 고민은 깊고 또 깊다. 엄마는 그러시며 이런 말을 읊조리셨다. "누구야 너는 보혜사 성령님이 널 도우고 계시다는 걸 잊지 마. 불안을 좀 내려놔. 너의 앞날을 왜 네가 계획하려고 해. 맡겨."
그러면 안 되는데도 나 스스로 내 인생을 계획하고 안도하려 이리저리 뛰고 있다. 그게 나의 어린 모습이다. 엄마 아빠의 나이가 되면 조금 세상을 사는 게 수월해질까? 얼른 나이가 들고 싶다는 생각이 배부른 소리로 들릴지라도 그 마음은 변함이 없다. 조금만 유연히 세상을 바라보고 조금만 너그러이 흐름을 받아들이고 싶다. 이 와중에도 도토리묵전과 묵무침은 맛깔나니, 내 입맛. 이 먹성을 어찌할까? 눈치 없는 식욕 같으니라고.
우리만의 언어로 누군가는 혼란을 겪고
그 아픔의 언어는 누군가의 허비가 되고
그 가치있음이 또 한줄기 눈물이 되니
깊은 한숨에 담긴
의미가
이제는 와닿는구나
네가 낮이라면 아침부터 기다릴래
네가 밤이라면 저녁부터 맹세할래
사랑하는 일이 두렵고도 풋풋하니
살아가는 모든 일이 아름답고 슬프구나
네가 말했던 나의 아픔
내가 말했던 너의 슬픔
우리의 그렇게 닮아있던 눈망울 속 고통의 자욱
보고싶었어 내 인연아
사랑했었어 그때만큼은
그래 우리 진심을 잊지는 말자
언제고 맹세하는 우리의 사랑시
풍부한 파도소리로 기억될 우리의 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