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모님과 먹는 회 한상차림이 있었다. 그때는 부모님 두 분 다 찬 음식을 먹어도 무방하고, 반주도 한잔씩 즐기실 수 있는 컨디션이셨는데. 그렇게 다들 맛있게 모든 음식을 추억에 곁들일 건강이 허락되었는데. 이제 부모님이 술을 드시면 안 되는 컨디션이 되셔서 우리끼리라도 마시게 배려하시곤 한다. (사실 나 또한 컨디션이 전과 같지 않아 종종 마실뿐, 그 자리 누군가 권하는 술에 대해 '오늘은 패스'를 외치곤 한다.)
나는 사실 고기보다는 어류를 더 좋아한다. 도다리, 광어, 숭어, 농어 무슨 회라도 있기만 하면 혹하고 넘어가는 회킬러인데. 요즘은 본가에 못 간 지 오래라 자연산 회를 못 먹어서 슬프다. 엄마는 엄마만의 레시피로 쌈장과 초장을 만드셨는데. 가끔은 식초에 단맛을 더해 줄 매실액기스를 쓰기도, 때로는 식초와 올리고당 설탕으로 농도를 맞추고 깨를 절구에 살짝 갈아 얹기도 하셨다. 회는 회대로 엄마의 '형님'이신 정으로 맺어진 이웃 할머님께서 많이 떠다 주셨고, 그 할머니께서 지금보다 더욱 건강하실 때는 '사람이 모여 사는 분위기, 그 음식 대접'을 너무 좋아하셔서 자주 놀러 가 이런저런 음식을 같이 먹곤 했다.
지금 생각해 보면 저때가 가장 빛났다. 맛난 음식을 즐겁게 차리면서 신나 꿈에 부풀어 차리던 분위기. 그 시끌벅적함. 정말 사람 냄새나던 시간이었고, 살아온 흔적이었다. 다시 그때로 돌아가면 너무 좋겠는데. 우리 엄마 조금만 더 건강해 주시려나? 이젠 내가 더 부지런 떨어볼 테니 말이다.
사실 나보다 여동생과 엄마의 손맛이 훨씬 정갈하고 솜씨 좋은데. 나는 그냥 식도락을 좋아하고 먹성이 좋아 미식가 기질이 조금 있는 편에 불과하다. 그래서 매번 동생의 솜씨와 살림솜씨에 비교되는데. 그럴 때마다 또 나는 나만이 잘하는 살림의 영역이 있으니. 그만 잔소리하라고 투덜대고 말아 버린다.
귀차니즘 때문에 하나에 몰두하면 설거지도 쟁여놓기도 하고. 청소기도 종종 못 돌리기도 할 만큼 멀티가 안되는데. 여동생은 너무 빠르고 부지런해서 몸이 움직이는 게 정말 분단위로 쪼개진다. 그래도 난 나만의 자질이 있으니. 그녀와의 비교도 그냥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려버린다. 그래서일까? 언제부턴가 '지금부터 나는 나답게 잘하면 된다'고 생각한다.
다시 음식얘기로 돌아가자면 이 회의 식감은 살짝 김치냉장고나, 냉동실바깥쪽에 얼려서 숙성을 시켜서 먹는 맛인데. 특히 초봄에 먹는 회는 무지갯빛이 돌아 굉장히 쫄깃하고 쫀득하다. 그 고소한 생선의 살결이 얼마나 행복하게 느껴지는지 모른다. 거기에 먹는 쌈장, 마늘, 그리고 상추나 깻잎쌈. (초장은 그냥 회만 찍어서 단독으로 먹을 때가 가장 조화롭더라) 회를 다 먹고 남으면 우리는 회덮밥으로 찬밥을 살짝 돌려 슥슥 다음날 비벼먹기도 하고, 남은 회가 변질되기 직전즈음 카레가루를 묻혀 전처럼 부쳐먹는다. 사실 귀하디 귀한 자연산 회라서 이제는 정말 그렇게 먹기는 어렵지만 버려지는 것보다는 낫다 여겨 그렇게 먹는 풍습이 동네에 있다.
10년만 더 젊으셨더라면. 저때처럼 회한상에 반주를 부모님과 넉넉히 곁들일 수 있을까? 늦을 때가 빠를 때겠지. 지금이라도 함께하고 싶다. 음식으로 추억을 새기는 일을 게을리하지 않겠다.
그리운 시간, 그리운 본가, 고향의 맛, 참 그립다.
그 장소가 주는 안락함과 그 속에서 누리는 평화로운 맛은 다시 찾고 싶은 잃어버린 낡은 지갑과 같다.
시샘달이 뜨는 이월의 어느 날
어화 둥둥 내 새끼
귀여워라 요 녀석
이것 줄까
만져 볼래
아니 아니 저거 저거
킁킁 너의 살냄새에
소담스런 네 손목에
보들보들 발바닥에
스리슬쩍 내 손끝을
어화둥둥 너를안고
둥가둥가 어루달래며
입김을 이마에 호오 불곤
머리칼을 날리던 그날 그 밤
요 녀석 내 새끼
조금만 조금만 느리게 자라자
이대로 이대로 그대로 멈춰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