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대들에게 나는 어떤 소녀였을까
어린 시절 나의 별명을 열거하자면 이러하다. 욕쟁이 할망구, 알뜰주부, 정팔이. 다 괴짜스럽기 그지없는 표현들인데 (지금 이 별명을 있게 해 준 친구들 고맙다) 사실이 나를 제대로 표현했던 별명들이었다. 나는 어린 시절 명랑하고 수다스러웠고 말도 많았고 어린 나를 바라봐주시던 슈퍼집 아주머니 증언에 의하면 똘똘해서 똑순이라고 불어주셨다고 하였다. 지금도 그렇게 똘똘하게 살아가고 있는가? 꼭 그렇지만은 않다. 그러나 그때의 나는 그렇게 불리고 보였다고들 한다.
지난날의 내가 기억하지도 못하는 나를 불러주고 명명해 주던 별칭이 있다는 것은 참으로 새로운 의미의 과거 나를 조금 엿보는 힌트 같은 느낌이다. 고1 때까지도 이성에 관심이 없어 남자아이들의 장난에 남자화장실을 어깨동무하고 들어가도 괜찮으리만큼 당당하게 동성같이 굴던 나였기에. 전에 말했듯 나는 어둡기만 하지는 않았던 것 같다. 단지 어머니의 알코올중독 증세와 아버지의 다혈질 어리신 면모로 인해 가정이 불화스러웠고 그 과정에서 장녀였고 어깨가 조금은 더 다른 동생들보다 무거웠기에, 일찍 철이 나야만 했다. 그래서일지 지금도 흔히들 부르는 k장녀, 장녀병이 남아있기도 한 웃픈 현실이다.
아버지는 밖에서 일이 풀리지 않으시면 집에 들어와 화를 내지 않으려 꾹 참으시고 입을 닫으셨지만, 어머니의 알코올 의존 증세로 인해 폭발하고는 다 뒤엎으시기도 하셨고 그 와중에서 우리의 안전이 지켜지지 않을 만큼 위험한 상황 또한 존재했다. 나는 연년생 동생과 4살 터울의 남동생을 숨기고, 도망치게 하고 지켜내야 했고 그 과정에서 아버지를 달래고 말리며 바짓가랑이를 붙들고 애원해야 했다. 이내 나를 보고 정신을 차리신 아버지께서 본인도 왜 이렇게 까지 화를 내야 하는지 답답하고 아파서 펑펑 우셨던 모습이 아직도 생생하다. 엄마의 입장에서 들으면 아빠가 미웠고, 아빠의 입장에서 보면 아빠가 불쌍했다. 어린 눈으로 바라본 세상은 그러했다. 누가 누구의 편이어야만 하는 게 삶이라는 생각이 들어 늘 편 가르기 식으로 세상을 바라보고, 약점 잡히면 안 된다는 비합리적 신념에 사로잡힌 채 세상을 따뜻하게 바라보지 않고, 적대적으로 바라보곤 했다. 전에는 이런 삶을 살아야 했던 내가 가엾고 연민이 들어 어쩔 줄 몰라했다. 지금에서야 그때의 고통 또한 내가 나되기 위해서 꼭 있어야만 했던 시간이기에 후회스럽고 애석하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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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은 그런 어린 시절로 인해 굉장하진 않지만 조금 많이 단단해졌다. 교회를 가면 늘 하는 기도가 '지금의 나를 있게 해 준 어린 시절의 고통을 원망하고 불평하지 않게 해 주세요. 부끄러운 삶이지 않아서 감사해요'라고 속으로 외치곤 한다. 교만과 자긍심이 한 끗 차이라서 나의 이런 생각들이 누군가에게 자만스러움으로 느껴지지 않기를 바란다. 부모님께 감사한 것은 그렇게 본인들도 어렸고 부족했고 나약했기에 어려웠던 현실 속에서 지금의 내 나이보다 어린 아버지와 고작 지금의 내 나이로 나를 가지신 엄마가 되셨던 어머니께서 잘 살아내 주셔서 감사하다고 말씀드리고 싶다. 사는 게 뭘까? 이 수필책의 제목으로 삼았던 나의 사랑하는 일과 살아가는 일이 우리의 그 모든 과정들이 대체 뭘까. 통찰하고 같이 숙고해 보면 좋겠다.
크게 3번의 거친 상담에서의 내담자 경험과 상담치유학 수료과정, 그리고 상담심리학 학부과정을 통해 나의 회고록을 적어내는 데까지 많은 시간이 걸렸다. (이 과정에서 함께 해준 사랑하는 가족들, 친구들, 동생들, 사랑했던 사람들 모두 다 너무 감사하다) 그때의 시간들을 통해 내가 나를 찾아갈 수 있었고 진정한 나를 만나는 시간에 도래하게 되어 버텨준 나 자신, 도와준 지인과 사랑하는 이들에게 고맙다. 자주보지 않아도 날 진심으로 아껴주는 많은 이들이 내 버팀목이 되어 살아가게 해 주었다. 지극히 주관적인 생각일지 모르나 내가 느껴온 삶이란, 사람 없이 살 수 없고 사랑 없이 살 수 없다. 행복하기 위해서 자신의 지난날을 마주하고, 고통의 시간을 충분히 회고하며 애도하고 보내주며 과거의 자신과 화해하는 것, 지금의 자신과 손잡는 것이 소소한 만족 속에서도 기쁨을 느낄 수 있는 단순한 진리 아닐까 한다. 지켜내야 할 것이 많았던 어린아이가 이제는 나하나만 지키며 살아내기 프로젝트로 이렇게 글을 적는다. 행복하고 따뜻한 밤이다. 보고 싶은 사람이 넘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