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뜻밖의 여행지에서 먹는 맛

by 숨고


예전에 맺었던 만남의 순간들 중 여행길에서 무심코 들렀던 도시에서의 맛과 추억을 담는다. 우연히 들른 경기도의 한 도시에서, 급히 지정하여 잡은 숙소 근처의 이자카야에서 먹었던 맛. 그 우연의 맛을 추억해 본다.


모든 여행이 그러하듯, 계획대로 되지 않아 중간에 멈추기도 돌아가기도 더 빨리 도착하기도 하여 다른 곳을 더 둘러보기도 하는 것 같다. 그래서 우리의 삶과 여행이 닮아있다고 하는 것 같다.


그러한 의미에서 바라본 삶에 대한 나의 시선은 이러하다. 내가 이 삶에 언제 어디서 어떻게 왔는지 모르듯, 언제라도 떠날 준비를 하는 삶을 사는 듯하다. 우리의 삶은 그렇게 영원할 것 같은 이 무거운 짐을 들고 서로 나눠가지고 나란히 걸어가다가 언제라도 각자의 날에 다다를 때면 다 내려놓고 목적지를 두고 뚜벅뚜벅 돌아가는 여행 아닐까. 삶이라는 여행이 목적지를 정해두고도 다른 곳으로 향해가서 재밌다가도, 알 수 없는 여행지 구석구석에서의 에피소드들로 풍류를 즐기게 되곤 하니, 삶의 흐름에 충실한 우리 모두는 어쩌면 진정한 의미의 여행 중인지도 모르겠다.


계획대로 흘러가지 않는 여행길에서 삶의 의미와 그 모든 조각들의 의미들을 느낀다. 여행길과 같은 삶의 색은 고통의 탈출구이며, 우리의 희망이다. 삶이 마냥 숙제하듯 살아가는 삶이라면 얼마나 고행길 같겠는가?


이날 우연히 예상보다 교통상황이 지연되어 들르게 된 도시에서 맛보게 된 음식은, 그 도시 특유의 음식은 아니었지만 누구보다 나를 편안하게 배려해 주었던 인연과의 음식이라 더욱 색달랐다. 우리는 숙소에서 편안히 짐을 내려놓고는 편안한 차림의 가벼운 몸으로 가벼운 발걸음에 이자카야를 향했다. 소고기를 직접 테이블 앞에서 여러 면을 골고루 익혀주시며 구워 잘라주셨던 손길과, 그 불의 향과 멋. 그리고 그 음식을 기다리며 느꼈던 설렘까지. 모든 게 완벽했다.


곁들여 먹었던 꽈리고추와 방울토마토, 표고버섯, 대파, 양파구이의 향과 색감까지 어우러져, 눈과 귀와 입 모두를 행복하게 해 주었다. 같이 곁들인 차돌숙주볶음은 숙주 특유의 향과 아삭함과 함께 묻어나는 고기의 고소한 냄새. 그리고 홍고추의 살짝 알싸한 뒷향까지. 특별히 튀지도 않고 그렇다고 묻히지도 않을 조화로운 맛이었다.


삶도 이와 같지 않을까 싶다. 전혀 다른 색들과 재료들의 조화. 그 모든 게 한 불에 어우러져 적절히 구워졌을 때 뽐내는 향과 색 그 묘미들의 조화. 우리는 각자는 이런 각각의 재료들처럼 다른 모양, 다른 색을 내고 있지만 세상에서 하나로 조화될 때 비로소 음식이 되고 멋이 되는 듯하다.


삶의 짐이 무겁디 무거운 여행길 같을 때, 이와 같이 새로운 도착지가 된 곳에서 맛보는 음식의 조화를 떠올려 보자. 또 누가 알까? 우리가 계획과는 달라 실패라고 여겼던 여행지에서. 새롭게 맛본 음식이 뜻밖의 조화를 뽐내어 새로운 인생의 맛을 그대에게 선사해 줄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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