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겐 가장 행복했던 본가에서의 생활이 있었다. 아버지가 편찮으셨는데 수술이 잘 되어 우리는 다 같이 모여사는 시간을 이 기회에 가져보자 하고는 무작정 본가인 섬마을로 내려가 앉았다. 그때의 엄마는 아빠를 간호하시겠다고 스스로 '누구누구 관리자'라고 칭하셨고, '관리자 말 잘 들어. 안 들으면 또 큰일 나.'라며 아빠의 건강에 대한 무관심과 대충대충 먹고사는 스타일을 꾸짖곤 하셨다. (귀여운 부부의 모습같았다)
아무것도 도움 되지 못하고 그저 거들기만 해도 뚝딱뚝딱 아빠와 우리를 위해 한결같이 정성을 다하시던 엄마의 음식이 정말 그립다. 이제는 가스불 앞에서 가스를 많이 마시면 안 되는 연세가 되셨고, 엄마의 특유의 맛을 내가 배워놔야 언제라도 그리워질 엄마의 손맛을 조금이나마 신앙유산처럼 이어갈 텐데 말이다.
우리는 전기장판을 여름이나 낮이나 매트리스처럼 깔았고, 그 위에 저런 동그란 시골밥상에 옹기종기 모여 앉아 너나 할 것 없이 수저와 젓가락을 내려놓고 음식을 담아주시면 옮기며 식사 준비를 하곤 했다. 저 시기에 만난 새 가족은 항상 기웃기웃 우리 집에 와서 같이 밥을 먹으며 온기를 나누곤 했는데, 난 그게 참 편하면서도 설레었고 사랑받는 동생을 바라보는 엄마의 흐뭇한 모습과 아직 못 미덥지만 따뜻이 대하시려는 아빠의 진중한 태도가 아직도 생생하다.
다시 음식 얘기로 돌아와 보자면, 저 날은 엄마 특유의 감자채 볶음과 제육볶음, 양배추쌈과 쌈장, 간장게장 등등의 반찬들로 밥을 차려먹는 날이었다. 정확히 기억나진 않지만 모든 추억이 그러하듯 약간의 미화와 함께 그래도 행복했던 초여름의 밥상으로 기억된다.
음식의 맛은 그날 먹었던 음식이 맛있었다 아니었다를 떠나 그날 먹었던 나의 기분, 함께 나눈 온기, 그 정취, 정서 그 모든 게 뇌리에 박히는 것 같다. 그래서 음식이 계절과 같다. 덥든 춥든 선선하든 산뜻하든 그 어떤 온도라도 우리 뇌리에는 그날의 분위기가 남지 않는가. 어떤 맛일지라도 우리란 삶에는 뇌리에 박히는 생생한 맛이 남는 것 같다. 계절을 느끼는 봄을 기다리고 그다음 다가올 초여름을 꿈꾼다. 생생하듯 기운 나고, 아슬하지만 맵싸한 모든 맛 같은 그 계절의 맛을 기다린다.
청춘을 지나고 그 빛을 지나
언젠간 만개할 너와 나의 꽃
그 아름다운 꽃 한 송이
우리들의 들썩이는 허리춤과
미소 비친 웃음소리와
그 주고받는 삶의 발맞춤
우리 다시 만나겠니
그땐 조금만 환하게 웃어보자
그땐 우리 악수하고 화해하자
가슴속에 물결쳐 여울지는 설렘처럼
피어나듯 멍울 진 소망처럼
그렇게 웃음 띈 아이의 해맑음만큼
그 옅은 미소속 보조개 깊이만큼
내가 되고 싶었지만
될 수 없었던 나에게
다시 한번 화해의 손길을 내밀어본다
그리고 또 한번 웃어본다
날 사랑하는게 그런 미소다
나의 시간과 삶이 일정하지 않아, 약속을 지키고 글을 연재하는 일이 규칙적이지 않은 것 같다. 그러나 잊지 않고 찾아 주시는 분들을 위해 항상 감사하며 글을 적어낸다. 꾸준히 읽어주시고 마음으로 응원해 주고 계시는 분들께 너무도 애정한다고 말씀드리고 싶다. 마음 한가득 시골밥상처럼 풍성한 2월의 어느 날이 되시기를 바라고 응원드린다. 덕분에 많이 행복하게 글을 적고 있다. 다같이 한 뼘씩 행복해지기를 바란다. 기다려주시고 온기를 받아주셔서 감사하다 많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