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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인들의 자아가 뚜렷하지 않은 이유(2)

에리히 프롬 <자유로부터의 도피>

by kmj Mar 04. 2025

에리히 프롬의 <자유로부터의 도피>를 읽으며 내가 썼던 글과 유사한 점이 많다는 것을 발견했다. 이 책은 사람들이 자유를 감당하지 못할 때 권위에 복종하거나 집단에 동조하며 자기 자신으로부터 도망친다고 말한다. 여기서 자유란 단순히 구속에서 벗어나는 것이 아닌, 스스로 생각하고 판단하며 개척하는 '책임'을 포함하는 개념이다. 이러한 자유가 주어졌을때, 사람들은 종종 이를 짐으로 느끼고 스스로를 포기해버린다. 결국 그들은 자유를 빼앗기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도피하는 길을 선택하는 것이다.

현대사회에서 이러한 현상은 더욱 극명하게 나타난다. 전 글에서 중점적으로 쓴 것이 현대사회속 이러한 현상의 배경인데, 결국 이러한 흐름에서 벗어나려는 사람들은 배척당하거나 패배자 취급을 받기도 한다.



자유를 견딜 힘이 없으면 결국 두 가지 선택지가 남는다. 하나는 권위에 복종하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다수에 동조하며 자아를 지워버리는 것이다. 여기서 프롬은 사람에게 가학적, 피학적 성향이 존재하는데, 가학적 성향을 가진 사람들은 새로운 조직을 만들어 그 집단을 지배하고, 피학적 성향을 가진 사람들은 그 집단에 순종하게 된다고 한다. 두 성향은 다른 것처럼 보이지만, 타인에게 의존한다는 점에서 본질적으로 같은 성질을 띈다. 우리는 자주 자유를 '뺏긴다'라고 표현하고 걱정하지만, 실상은 우리가 스스로 '포기하는' 것이다.


자유를 위해선 고립을 견딜 힘이 필요하고, 자기 자신을 온전히 마주할 용기가 필요하다. 하지만 지금 우리 사회는 그 힘과 용기를 길러주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집단 속에 숨는 것이 편한 길임을 끊임없이 주입하고 있다.


​프롬은 자유를 회피하는 현대인의 태도를 비판하며, 진정한 자유는 자기 자신이 되는 것임을 책 속에서 반복해서 강조한다. 개인이 자아를 잃어버릴수록 사회는 더 병들고, 고통받으며, 불안해진다. 나중에 더 자세히 쓸 주제이긴한데, 세상에 허상이 많아질수록, 본질이 흐려질수록 인간이라는 존재가 피폐해진다. 현대사회에서 끊임없이 만들어지고 없어지는 집단이라는 허상은 우리를 병들게하고 고통을 주는 존재이다.


​그렇다면 본질이란 무엇일까? 국가는 결국 땅덩어리 위에 선을 그어둔 것이고, 돈은 결국 종이 위에 숫자를 세겨넣은 것에 불과하며, 심지어는 생명체라는 것도 따지고보면 우연과 기적이 만들어낸 생화학적 기계일 뿐 아닌가? 데카르트는 이렇게 말했다. 나는 생각한다, 고로 존재한다! 모든 것이 허상으로 보이는 불안정한 세계 속 거의 유일하게 확실하게 증명가능한 명제는 바로 '나는 존재한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나는 생각하니까! 우리가 존재에 집중해야하는 이유도 바로 이 때문이다.


​아무튼 다시 책으로 돌아가서, 프롬이 소개한 자유로부터 도피한 현대인들의 특징 3가지를 소개하고 글을 마무리짓도록 하겠다.



1. 권위주의적 복종​


과거에는 종교나 왕권, 독재자 같은 절대적 권위가 사람들이 기대는 대상이었고, 현대에는 강력한 국가, 기업, 유명한사람(인플루언서, 정치인)등에 맹목적으로 복종하려는 경향이 나타난다. SNS에선 '이 사람이 그렇다는데 사실이겠지' 라고 쉽게 받아들이며, 스스로 생각하기보다 권위 있는 사람의 의견을 따라가려는 모습을 볼 수 있다. 이는 '정보의 바다'라 불리는 SNS에서 별 다른 노력없이 끊임없이 새로운 정보를 얻을 수 있는 현대에 들어서 더 심해진 경향이 있다.


사람들은 자유를 감당하기 어렵거나 불안할때, 자기보다 더 강한 권위에 복종하면서 안정을 찾으려는 특징이 있다.


​이는 한국사회에서도 잘 나타나는데, 한국에서는 유독 학벌, 대기업, 특정 정치 세력이나 인물에 대한 권위를 맹신하는 경향이 강하다. 또 학생들은 부모나 사회가 제시하는 '안정적인 길' (의사, 변호사, 공무원 등 + 크게 보면 대학입학)을 따르려하고, 스스로 탐구하는 자유를 포기하는 경우가 많다. 게다가 SNS에서는 특정 유명인이 '이게 유행이다!'하면 모두가 따라하는 우스꽝스러운 문화가 형성되기도 한다. 결과적으로 모두가 '나는 뭐를 좋아할까?'보다 '다들 뭐를 좋아하지?를 먼저 생각한다.



2. 기계적 동조​


기계적 동조란, 사람들이 개성을 버리고 평균속으로 숨어버리려는 심리다. '너무 튀면 혼자 고립될 것 같고, 너무 뒤쳐지면 도태될 것 같아!' 그래서 자기도 모르게 '절대다수'가 가는 길을 따라가며 안도감을 느끼는 것이다. 프롬은 이걸 '자신을 사회적 로봇으로 만들어 불안을 회피하는 것'이라고 설명한다.


모든 사람들이 똑같은 여행지(제주도, 오사카, 발리)를 가고, 똑같은 카페에서 사진을 찍고, 아무튼 '트렌드'를 따라가는 것이 잘못됐다는 것은 아니지만 자신이 과연 '사회적 로봇'으로써 살아가고 있는 것이 아닌가하는 의문은 한 번쯤 생각해볼만 하다.


3. 파괴적 행동​


프롬은 자유를 감당할 수 없을 때 사람들이 두 가지 방식으로 반응한다고 설명했다. 첫번째는 자신을 공격하는 방식이다. 자기 혐오, 우울증, 자아 상실. 세 키워드 모두 현대에 들어 한국에 급격히 상승하는 키워드같지 않은가? 두번째 방식또한 마찬가지다. 타인을 공격하는 방식, 비난, 혐오문화 ,악플 등.. 에리히 프롬의 책을 읽을 때마다 나는 프롬이 비판하는 '현대인'이 한국을 겨냥하고 쓴 것처럼 느껴진다. 내 또래에서도, '난 왜 이렇게 멍청하지?', '난 왜 저 사람처럼 살지 못하지?'라는 생각을 반복하며 자기혐오에 빠지거나 타인을 끊임없이 비난하면서 자신의 불안감을 해소하려는 경향을 가진 친구들을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다.


내가 평소에 몸으로 느끼던 현상들을 체계적으로 분류하고 명쾌하게 해설하는 매력에 에리히 프롬의 책에 빠져드는 것 같다. 그러나 이렇게 사람들을 몇 가지 유형으로 단순하게 나누는 것은 항상 조심해야 하는 부분이다. 똑같은 환경적 요인에 모두가 같은 영향을 받는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누군가는 고립을 두려워 하면서도 자신만의 자아를 키워나갈 수도 있고, 반대로 독립적인 사람이라도 어떤 순간엔 집단에 의존할 수도 있다. 또, 집단에 속하는 것이 반드시 부정적인 것만은 아닐 수도 있다. 프롬의 말처럼, 소속은 인간이라는 동물이 원초적으로 가진 욕구로, 중요한 것은 휩쓸리는 것과 주체적으로 존재하는 것의 차이이다.


그래서 이런 논의를 할때는, 모든 분류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기보다, 명쾌하게 풀어냈다는 점에 초점을 맞추어 '이런 경향이 있다'정도로 이해하는 것이 좋다. 중요한 것은 분류가 아니라, 이러한 현상을 어떻게 극복할 수 있을지 논의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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