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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 층계참에 머무르는 다락방

by 어린길잡이 Feb 12. 2025

 

계단을 두 칸 씩 건너뛰는 자에게는

빨리 도착했다고 알리는

숫자로 이뤄진 시간의 결과가 놓인다

우리는 그렇게 빠르게 오르려 한다

 

애석하게도 나의 발은 느리다

똑같은 모양의 계단이 끊임없이 반복되며

거대한 피라미드의 한 면이 될 때

어차피 느린 김에

나는 소박한 층계참을 놓아본다

 

제아무리 높아봐야

네모진 층계참 하나면

쉬엄쉬엄 올라가게 된다

계단의 폭포가 현실을 내리쳐도

층계참은 꼿꼿이 핀 우산이 되어

흐르는 콘크리트를 반으로 가른다

 

계단만이 이어진 오르막은

자꾸만 어서 오르라고 재촉해도

층계참은 잠시 멈춰 보라고 말한다

오르고 올라 찾으려는 아늑한 다락방은

경사로가 아닌 평면에 있기에

 

층계참에 머물러도 시간은 무정하게 간다

그럼에도 다락방의 시간은 내게 머무른다

그 머무름에 별안간의 미소가 지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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