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동 학원가 앞을 지나가는 길
살을 에는 추위에 두 다리를 파닥거렸다
자유로운 발길질은 고결했다
나를 멈춰 세운 것은 기역 자로 엎드린 학생의 모습이었다
하체는 곧추세운 채로 오로지 상체만 화강암 화단에 엎드렸다
화단에 옹기종기 모여 있던 무명의 각진 식물은 내려다 보고 있었다
잎새로 곁눈질하던 낯의 입꼬리는 오르지도 내려가지도 않았다
소년을 울지 않았다
숨도 쉬지 않았다
애초에 존재하지 않는 것처럼 고요한 포복이었다
다가가 안아줘야 할지
못 본 척, 지나가야 할지
반 만 엎드린 소년의 곁엔
망아지 같은 자전거가 옆으로 엎어져 있었다
어째서 자전거는 새근새근 편히 잠들 수 있었을까
그 순간
소년과 은륜은 어둠 속으로 가라앉았다
성난 도끼질에 꺾인 유목 한 그루와 무딘 날의 쇠도끼만이 처음부터 있었다
중학생이었는지, 고등학생이었는지는 지금도 잘 모르겠습니다. 두꺼운 외투 안으로 보이는 교복 조끼와 넥타이로 엎드린 사람이 학생인 것을 알 수 있었습니다. 처음에는 사람이 쓰러진 줄 알아, 걱정되는 마음으로 급히 그에게 뛰어갔습니다. 가까이 다가서니 숨소리가 들려서 내심 안심했습니다. 하지만 기역자로 엎드린 자세가 참으로 기이했던 까닭에 그 곁에서 오랫동안 벗어나지 못했습니다. 조금씩 멀어지며 그의 숨소리를 느껴봤습니다. 잘 들리지 않았지만 마음으로만 들을 수 있는 소리로 소년은 울고 있었습니다.
화강암은 경도와 강도가 모두 좋은 물질입니다. 그 물질로 만들어진 화단은 웬만해선 잘 무너지지 않죠. 소년은 그 화단에 힘겹게 엎드리고 있었습니다. 기대고 있었다고 말하는 것이 옳겠습니다. 그 소년이 화강암처럼 강인해지기를 멀리서 기도했습니다. 다가가서 안아주고 싶었지만, 괜한 일에 참견하는 것 같아 그러하지 못했습니다. 못 본 척 지나가고 싶었지만, 그의 엎드림은 거부할 수 없는 호소력을 띠고 있었습니다. 멀리서 관망하는 일은 무척이나 괴로운 일이었습니다.
소년의 옆에는 그가 타고 온 듯한 자전가가 있었습니다. 제대로 세우지 못한 탓인지, 자전거는 망아지가 누운 것처럼 옆으로 엎어져 있었습니다. 기역 자로 엎드린 소년 옆에 자전거가 그리 누워 있는 광경에 저는 형용할 수 없는 모호한 감정을 느꼈습니다. 모순, 당황스러움, 분개, 비애. 저 소년이 그가 타고 온 은륜처럼 시원하게 누우면 어떨까, 하는 생각을 떨칠 수 없었습니다. 비록 각진 고층 건물들이 시야를 가리긴 하겠으나, 누워야만 보이는 넓게 펼쳐진 밤하늘을 보면 그의 속이 시원해질 것 같다고 생각했습니다.
이제서야 드는 생각이지만, 사실 그 소년은 울고 있지 않았을지도 모릅니다. 이 모든 것은 제가 알 수 없지만 제가 겪었던 경험들이 무의식으로 발현되어 만들어진 망상일 수도 있습니다. 대표성 휴리스틱에 의한 오판인 것이죠. 사람은 자신이 쓰고 있는 안경으로 세상을 바라볼 뿐입니다. 진실과 믿음은 한끗 차이입니다. 타인을 향한 제 연민과 관심은 자신을 향한 시선과 상념일 때가 많습니다. 그렇지만 그 소년은 분명히 기역 자로 화강암 화단에 엎드리고 있었습니다. 그것만은 분명하게 말할 수 있는 사실입니다. 그리고 그렇게 엎드리는 일은 흔한 일은 아닙니다. 그것만은 분명하게 말할 수 있는 진실입니다. 사실과 진실, 그 사이에 펼쳐진 우리들의 믿음은 문학이자 이념이며, 인류를 이끌어가는 추동력이자, 우리가 기억해야 할 역사입니다. 역사는 벌어진 일과 일으킨 일의 총합이며, 우연과 필연의 향연이기 때문에 인류는 골머리를 앓습니다. 어찌할 수 없는 위대한 힘에 기역자로 엎드린 소년처럼 무너지곤 하는 인류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