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폭풍 속에서 춤추다

(3)이 순간에 영원이 있다

by 현덕


우리가 어느 한순간 어떤 일에 완전히 집중하여 몰두하고 있을 때 시간의 흐름이 멈춘 듯 순식간에 시간이 훌쩍 지나가 있음을 느낄 때가 있다

특히 즐겁고 행복했던 시절 어느 순간 정신 차려보니 세월이 어느새 저만큼 훌쩍 지나가 있음을 아쉬운 마음으로 바라보곤 한다

반면에 힘들고 고통스러운 순간 느껴지는 시간의 흐름은 하루가 마치 몇 년처럼 멈춰버린 느낌이 들기도 한다



"우리는 매 순간 새로운 삶을 산다

이 말은 역설적으로 우리에게 죽음이란 없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젊은 시절 모든 것이 미숙하고 불안하던 그때 나는 가끔씩 어설프게 가부좌를 틀고 참선에 들곤 했다

특별한 어떤 형식이나 방식에 얽매이지 않은 채 그냥 약간의 깊은 호흡과 함께 수많은 잡생각으로부터 나를 격리하고자 마음을 집중하는 그런 식이었다

그날도 불안하고 시끄러운 마음으로부터 벗어나고 싶어 조용히 자리를 잡고 생각의 가지를 쳐내려 가고 있었다



한순간 나는 문득 나의 존재를 망각한 채 앉아 있는 나 자신을 발견하게 되었다

그리고는 천천히 눈을 뜨고 앞에 걸려 있는 벽시계를 바라보곤 깜짝 놀라게 되었다

시곗바늘이 가리키고 있던 눈금에는 무려 5시간이라는 타임점프가 되어 있었다

나는 믿기 어려운 혼란스러운 마음으로 그 시곗바늘을 바라보고 있었다



객관적으로 펼쳐진 시간은 엄연히 5시를 가리키고 있었지만 나의 의식 속에는 그냥 5분도 안 되는 물리적인 시간만을 느끼고 있었다

도대체 나에게 그 5시간이라는 시간은 어디로 가버렸단 말인가

분명 잠이 든 것도 아니고 나의 의식은 너무도 또렸히 깨어 있었던 것이다



나의 의식은 내부에도 외부에도 가 있지 않았다

기쁨이나 행복은 물론 어떠한 불안과 고통도 없었다

그냥 완전한 허용과 안식 속에 있었다

그리고 그 순간이 좋다 나쁘다를 넘어선 그냥 너무나도 자연스럽고 편안한 안도감만을 느낄 수 있었을 뿐이었다



나는 이것을 거창하게 무슨 삼매니 깨달음의 순간이라고 말하고 싶지 않다

그리고 솔직히 그것이 무엇인지 알지도 못한다

거기에 무슨 초월감이나 지복의 느낌 같은 것도 없었다

나는 그냥 존재하고 있었다

그곳에 시간이라는 단단한 실체는 굉장히 부자연스럽고 어색한 강요처럼 느껴질 뿐이었다



그때 나는 우리들 인생도 이처럼 하룻밤의 꿈과 같이 한순간에 지나가버릴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그때의 그 순간적인 느낌에서 나는 유한과 무한이라는 시간의 경계를 넘어선 그 무엇인가를 막연히 느낄 수 있었다

동시에 나는 분리되어 고립된 존재가 아닌 전체의 품 속에 안전하게 안겨 있는 듯한 기분을 느낄 수 있었다

그날 이후 시간이라는 관념은 나에게 평생의 화두처럼 따라다니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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훗날 나는 명확히 깨닫게 되었다

절대적이고 고정된 객관적인 시간은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을...

시간은 어디까지나 주관적이고 상대적이다

시간이 흐른다는 생각은 자아가 만들어낸 환상일 뿐이다

유일하게 생생하게 살아있음을 느낄 수 있는 시간은 지금 이 순간뿐이다



우리가 한순간 온마음을 집중하고 매 순간의 과정과정을 깊이 느끼는 순간 그 순간 속으로 모든 과거와 미래가 들어온다

한순간 속에 우주의 시작과 끝을 포함한 모든 것이 들어 있고 지금 이 순간을 만나는 것은 과거와 미래를 동시에 만나는 것이다

즉 무한한 시간 전체, 실체의 궁극적 차원인 영원함을 만나는 것이다



지금 이 순간 이 자리에서 잔잔한 음악과 함께 커피 한 잔 마실 때 우리는 지금 이 순간을 만나고 시간 전체와 만나게 된다

바로 지금 이 순간 진실로 나는 살아 있으며 모든 것을 감각할 수 있다

시간이란 지금 이 순간이면서 영원이며, 부분이면서 전체이다



우리에게 익숙한 시간이란 과거와 미래를 끝없이 펼쳐놓은 대나무발과 같다

과거로부터 현재 미래로 지금 이 순간순간이라는 낱대나무를 시계 눈금처럼 끈으로 엮어서 좌표 화한 것이 바로 우리들이 알고 있는 시간이다

그러나 우리에게 길들여진 시간은 우리들이 정하여 스스로를 구속하는 끝없이 펼쳐진 관념상의 좌표일 뿐 진정한 의미의 시간은 과거와 미래를 둘둘 말아 시간 전체를 말아놓은 지금 현재 이 순간이며 바로 지금 이 순간만이 지속될 뿐이다



순간 속에 영원이 있으며 이 순간 속에 무한이 포함되어 있다

시간은 오고 가는 것이 아니라 지금 현재 이 순간순간의 상황과 사건만이 전개될 뿐이다

바로 이 순간에 집중하며 성실하게 최선을 다하며 이 순간을 느끼며 누린다는 것은 우리가 영원히 새로운 삶을 산다는 것을 의미한다



방금 전의 일은 벌써 지나가버렸고 우리는 이것을 과거라고 부르고 있지만 어느새 우리는 한 번도 경험해 본 적이 없는 새로운 현실 앞에 난생처음 서 있다

그리고 방금 전까지 만지고 보았던 사실은 꿈속의 기억처럼 사라져 버렸다

동시에 그곳에 또 다른 지금이 이어지고 있다

아니 엄밀한 의미로 이어지고 있는 것이 아니라 전혀 새로운 지금이 들러와 있는 것이다



즉 우리는 매 순간 새로운 삶을 산다

이는 역설적으로 우리에게 죽음이란 없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지금 이 순간은 한 현실에서 다른 현실로의 변화의 과정이다

단 한순간도 똑같은 삶이 반복되지 않으며 우리는 매 순간 새로운 삶을 창조하며 사는 영원한 존재이다



우리 스스로가 정하여 가두어온 시간이라는 좌표의 포승줄에서 풀려나 영원한 자유를 얻을 수 있는 열쇠가 바로 여기에 있으며 우리들이 꿈꾸어온 해탈이라는 비밀의 문을 슬쩍 들여다볼 수 있는 작은 구멍이 바로 지금 이 순간임을 아는 순간 우리는 무한한 위로와 희망의 빛을 볼 수가 있을 것이다



이제 우리는 지금까지 우리를 구속하며 현혹해 온 시간이라는 미망의 대발을 하나로 둘둘 말아야 한다

그리고 그 뭉쳐진 대발을 영원이라는 무한 속에 굴러가도록 내버려 두어야 한다

과거와 현재 미래가 하나로 둘둘 말아진, 순간순간이라는 낱대나무가 하나로 뭉쳐진 이곳엔 오직 지금 현재 이 순간만이 존재한다



영원함은 이미 바로 지금 이 순간 속에 들어 있다

영원함은 곧 무한한 창조의 과정이며 창조력이 없는 영원함은 곧 재앙이며 정지다

결국 우리에게 있어 시간이란 자신만의 우주에서 매 순간 스스로의 삶을 창조해 가는 무한한 과정이다



과거의 상처나 고통은 꿈과 같이 지나가버렸고 미래의 불안은 존재하지도 않는 망상에 불과하다

현실은 하나의 현재가 또 다른 현재를 뒤따르는 '지금'들의 연속이다

오직 지금 이 순간만을 느낄 수 있다

지금 이 순간에 집중하고 충실했을 때 우리는 진정으로 살아 있으며 유한이라는 허무함을 넘어 우리 자신만의 진정한 창조적인 삶을 살 수가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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