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삶은 계속된다
그날도 무겁게 드리워진 짙은 커튼 속에 몸을 숨긴 채 세상과 단절된 상태로 어두운 방 속에 홀로 누워 있었다
남들이 보기에는 아무 걱정 없이 완벽해 보이는 사람들도 그 속을 들여다보면 어느 누구 한 사람 사연 없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하지만 유독 하는 일마다 삶에 태클이 걸리고 뒤틀린 인생길을 걷게 되는 사람이 있다
나 역시 그러한 사람 중의 한 사람으로서 수많은 실수와 실패를 경험하며 지치고 황폐해진 영혼에게 어느 한 곳 의지하고 쉴 수 있는 안식처는 없었다
어느 것 하나 내세울 것도 없는 실패한 인생임이 분명했다
숱한 시행착오와 방황 끝에 청구된 삶의 명세표엔 절망과 패배감으로 가득 차 있었다
유일한 희망이라곤 하루빨리 이 구차한 호흡이 멈추어 이 어두운 세상으로부터 벗어나는 것밖에 없었다
“인생이란 폭풍을 피하는 법을 배우는 것이 아니라
폭풍 속에서 춤추는 것을 배우는 것이다” -이름 모를 어느 현자-
어디서부터 잘못된 것일까
도대체 나에게 무슨 문제점들이 그리 많아 이렇게 인생의 나락까지 내려앉게 되었을까
습관처럼 뒤틀린 지난날을 되돌아보고 있는 내 모습을 지켜볼 수 있었다
봄에 흐드러지게 핀 꽃들이 환한 미소를 보내와도 보지를 못했다
호주의 집 앞 그 아름다운 해변에서 파도들이 춤을 추며 손짓해도 머릿속에는 온갖 지난날의 기억들이 가슴을 할퀴었고 언젠가는 반드시 잃어버린 세월을 보상받을 그날을 꿈꾸었지만 지금 현실의 막막함만을 확인할 수 있었을 뿐이었다
그렇게 세월은 흘러갔지만 내 마음은 단 한순간도 쉬지를 못하고 끊임없이 이곳저곳을 헤매고 있었다
앞으로 나아갈 목표나 희망을 생각하기에는 너무도 이 영혼은 지치고 어두워져 있었다
할 수 있는 것이라곤 죄 없는 술병만이 바닥을 나뒹굴게 만들 뿐이었다
그때 불현듯 더 이상 이 어두운 방 속에 갇혀 있다간 미쳐버릴 것 같다는 생각에 미친 듯이 밖으로 뛰쳐나가 무작정 길거리를 헤매고 있었다
그러다 우연히 대전역 앞 허름한 헌 책방 앞을 지나게 되었다
그곳에서 틱낫한 스님의 낡은 책 한 권이 눈에 띄었다
그 책의 부제에는 “지금 이 순간이 가장 경이로운 순간이다”라는 글귀가 적혀 있었고 그 순간 그 글체가 마치 큰 바위처럼 내 눈앞에 굴러들어 옴을 느낄 수 있었다
바로 그때 시간이 멈추는 것을 경험하게 되었다
더 이상 시간은 흐르지 않았으며 이 순간 속에 영원이 있음을 느끼게 되었다
그 순간 눈앞을 가려 온 뿌연 안개들이 걷히고 지는 석양의 노을이 밝아오는 아침 햇살처럼 찬란하게 빛나 보였다
그리고 지금 이 순간의 내 모습을 제삼자인 객관적인 시각으로 바라보기 시작했다
마음속에는 이미 시간이라는 환상의 장막이 걷히고 지금 이 순간의 기적 속에 비로소 주변의 상황들이 보이기 시작했다
이제 나는 그만 멈추어야 했다
그만 지금의 현실을 외면한 채 지금은 존재하지도 않는 지나간 과거와 오지도 않은 미래에 몸을 숨긴 채 지금 이 순간을 괴롭히고 있는 스스로를 이제는 멈추어야 했다
그날 이후 나는 이 시간이라는 관념을 새로운 시각으로 바라보기 시작했다
누구에게나 살다 보면 한 두 번의 실패는 겪을 수는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것도 좀 더 젊고 활기찬 나이에 벌어진 일이라면 얼마든지 다시 일어날 수 있는 힘과 자신감이 있을 터이지만 적지 않은 나이에 인생의 나락을 경험하게 된다면 상황은 완전히 다른 차원의 문제가 아닐 수 없을 것이다
바로 그렇게 희망이라는 빛이 완전히 차단된 즈음에 자각하게 된 “지금 이 순간”에 담긴 경이로움이라는 의미는 나에게 시간이라는 포승줄로부터 벗어나게 해주는 계기가 되었다
더 이상 붙잡을 수 없는 과거와 미래 사이로 숨어다니기를 멈추고 지금 이 순간과 마주해야만 했다
너무나도 불편하고 힘든 대면이었지만 필연적으로 마주해야만 했다
인정할 것은 인정하고 반성할 것은 반성함으로써 지금 이 순간까지 무겁게 짊어지고 있던 모든 구속과 속박으로부터 스스로를 구출해 내야만 했다
방금 전의 나와는 과감히 작별을 고해야만 했다
그리고는 두렵고 어색하지만 다시 새로운 나를 만나는 데 더 이상 망설일 수만은 없게 되었다
무엇을 이루느냐 어떤 사람이 되어야 한다는 압박감보다는 단지 지금 이 순간순간을 어떻게 의미 있고 행복하게 살 수 있겠는가에 집중하기로 했다
더 이상 나이는 문제가 되지 않았고 의미도 없게 되었다
시간은 존재하지 않으며 지금 이 순간 속에 영원이 있다는 자각이 어렴풋이 마음을 사로잡고 있었다
우리의 영혼이 우주의 근원 에너지라는 것을 안다면 우리는 시간이라는 숙명적 한계에서 벗어날 수 있을 것이며 이번 삶만이 전부인 양 그 속에 붙어 있는 단지 한 순간에 지나지 않는 나이라는 구속에 스스로를 매달릴 필요도 없을 것이다
삶은 계속된다
단지 변화만 있을 뿐...
객관적인 입장에서 보면 여전히 아무것도 내세울 것 없는 하찮은 인생처럼 보일지는 모르지만 내 마음속에는 아직도 희망이라는 찬란한 불빛이 단 한순간도 꺼지지 않는 마음의 상태가 되어 있었다
사람마다 추구하는 목표나 이상은 제각각 다를 것이고 그에 따라 사람을 판단하는 기준도 다를 것이다
하지만 상관없다
남들이 나를 어뗳게 생각할지 모르지만 우리의 삶은 우리들 스스로가 결정하고 창조한 나만의 우주라는 사실은 확실하다
그리고 그 우주의 주인공은 아무리 볼품없는 사람일지라도 나라는 사실에는 변함이 없다
다른 사람은 모두 나의 성장과 발전을 위해 존재하는 거울이요 나를 단련시키는 조연에 불과하다
아무리 대단한 존재일지라도 조연이 주연이 될 수는 없다
우리는 인생이라는 긴 영화 속에서 각자가 맡은 역할에 충실하면 되는 일이다
이제 나는 나에게 가장 의미 있고 행복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인지 알게 되었고 이를 위해 지금 이 순간순간을 최선을 다하며 살고자 노력하고 있다
하고자 하는 뜻이 이루어지느냐 마느냐는 더 이상 중요하지 않다
그냥 순간순간 최선을 다하며 성실하게 살 뿐이며 그 살아가는 과정 과정을 느끼며 누리다가 명이 다하는 어느 날 우주의 다른 차원으로부터 부름을 받게 되면 기쁜 마음으로 가면 될 일이다
그 누군가 말했다
“인생이란 폭풍을 피하는 법을 배우는 것이 아니라 폭풍 속에서 춤추는 것을 배우는 것이다”
허무할 것도 아쉬울 것도 없다
어차피 시간은 존재하지 않으며 이번 삶만이 전부는 아니기 때문이다
주지했던 것처럼 이 책은 여느 성공한 사람이나 존경받을만한 위치에 있는 사람들의 성공담이나 삶의 지침서가 결코 아니다
하지만 수많은 좌절과 실패를 경험한 한 사람으로서 비슷한 상황에 처해 있거나 공감을 할 수 있는 사람들과 함께 일생을 통해 단 한 발짝이라도 나아갈 수 있도록 같이 배우고 헤쳐나갈 수 있는 힘이 되었으면 하는 마음으로 이 책을 쓰게 되었다
부디 이 한 권의 책이 삶에 버거움을 느끼고 있는 많은 사람들에게 한줄기의 위로와 희망을 줄 수 있는 샘물이 되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