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폭풍 속에서 춤추다

(9) 정말 두려웠었다

by 현덕

개인적인 이야기를 좀 해보고려 한다

30대 혈기왕성하던 시절 잘 다니던 공기업 사보 편집실에 사표를 던지고 호기롭게 사업에 뛰어들었다

당시 그다지 큰 사업체는 아니었지만 우리 지역 전주에서는 꽤나 유명했던 관광지 내의 알찬 사업체였다

그때 당시 5년 동안은 말 그대로 돈을 쓸어 담았다

매일 밤 현금을 세다 지쳐 벼갯닢 속에 돈을 쑤셔 넣고 잠이 들곤 했다



"과거의 내가 술주정뱅이로 막살았다고 지금도 여전히 술주정뱅이인가?

술주정뱅이로 살았던 나와 지금 현재의 나와 무슨 상관이 있는가

이미 지금은 존재하지도 않은 꿈속의 내 모습이었는데 스스로를 낙인을 찍어 여전히 과거의 내 모습에 스스로를 구속시킨다면 영원히 지금의 나는 없는 것이며 유령처럼 실체 없이 우주를 떠도는 헛된 존재일 수밖에 없을 것이다" -어느 블로그에 올라온 글-



철 모르던 그때 돈이란 당연히 이렇게 쉽게 벌리는 줄만 알았다

감사한 마음이란 1도 없었으며 최고급 승용차에 번 돈 아까운 줄 모르고 펑펑 써가면서 사람들 몰고 다니면서 돌아다니기 일쑤였다

그러는 동안 그 당시에는 아무런 생각 없이 내뱉었던 말과 행동들에 많은 사람들이 상처를 입었다는 사실을 훗날 뼈저리게 느끼게 될 거라고는 그때는 결코 알지를 못했다





그러던 중 IMF를 맞아 온 나라가 뒤집어지면서 나 역시 그 태풍으로부터 벗어나지를 못하고 파산을 맞아 전재산이 압류되고 처자식과 함께 하루아침에 길바닥에 나앉게 되었다

갚아야 할 빚을 청산하기에는 너무도 감당할 수 없는 규모였다

돈이란 언제든지 내가 원하기만 하면 당연히 굴러들어 오는 줄만 알았고 사람들은 언제나 내 주변에서 온갖 호의와 웃음으로 맞이해 주는 줄만 알았다



하지만 영원한 것은 없다는 사실을 그때서야 처음 뼈저리게 느꼈다

언제까지나 함께할 것만 같았던 행복도, 언제까지나 따라줄 것만 같았던 부와 명예도, 영원할 것만 같았던 사랑도 언젠가는 사라져 버린다

채권추심회사에서는 하루가 멀다 하고 빚독촉 전화를 해대곤 했다

새벽 2시건 3시건 상관없이 아무 때나 전화를 해서 온갖 협박과 욕설로서 불안에 떨게 했다

지금에야 이러한 행태가 불법으로 금지되고 있지만 당시만 해도 이러한 개념자체가 없었다



단 하루도 맘 편히 지낼 수가 없었다

할 수 없이 처자식을 처가에 남겨두고 홀로 도피성 외유에 나서게 되었다

첫 행선지는 뉴질랜드였지만 그곳에서는 꽃다운 처녀들도 쓰레기차 수거원으로 일해야 될 만큼 할 수 있는 일들이 없었다

수중에 겨우 몇 백만 원 정도밖에 없었던 나에게 서로 소통할 수 있는 언어도 서툴고 아는 사람도 한 사람 없는 그곳에서의 1년은 정말 힘든 시간이었다





결국 호주로 건너가 수중에 있던 돈을 탈탈 털어서 중고 volvo 차 한 대를 사서 그것으로 호주 전역의 주말마켓을 돌아다니면서 겨우 호구지책을 해나갔다

참고로 호주에서는 volvo차를 탄다고 하면 사람들이 쉽게 다가오지 않는다

그 차를 탄 사람들은 난폭하고 터프한 사람이라는 인식이 있어서 중고로 나온 차도 무척 쌌다는 사실을 나중에 알게 되었다



마켓은 어떨 때는 잠자는 시간만 빼고 꼬박 3박 4일을 달려야 겨우 도착할 수 있는 곳도 있었다

지금처럼 Gps가 열려 있는 시대도 아니어서 특히 밤에 잘 수 있는 숙소를 찾지 못해 밤새 호주내륙의 황량한 벌판을 지나다 보면 예측할 수 없는 엄청난 열대성 폭우를 만나는 경우도 흔했다

가끔 한밤중에 인적 없는 산속의 좁은 길을 차를 타고 지나다가 갑자기 나타난 캥거루와 부딪쳐 혼비백산했던 때가 한두 번이 아니었다



그날도 멜버른에서 차로 꼬박 3일을 쉬지 않고 달려야 겨우 도착할 수 있는 호주 남동쪽 끝에 있는 세계적인 영적 휴양지인 바이런 베이로 가던 중이었다

가는 길 내내 사람 하나 볼 수 없는 내륙의 황량한 길을 혼자서 지나야 한다는 사실은 정말 보통의 마음으로는 쉽지 않은 모험일 수밖에 없는 일이다

2일째 되던 날 한밤중에 생판모를 오지의 황량한 길을 지나다가 태어나서 단 한 번도 겪어본 적도 없는 정말 어마어마한 폭우를 만나게 되었다





얼마나 많은 비가 열대성 폭풍과 함께 몰아치는지 마치 구멍 뚫린 시커먼 하늘에서 바닷물이 내리꽂는 듯했다

너무나도 낯선 땅에서 한밤중에 마주친 미친듯한 폭풍과 폭우를 만나게 되자 차를 몰고 나아가야 할지 멈추어야 할지 판단을 하지 못한 채 그냥 공포 속에 떨 수밖에 없었다

바로 눈앞에 보이는 것은 그냥 어둠 속의 거대한 폭포수 속에 있는 듯이 아무것도 볼 수가 없었으며 길가에서 찢기며 흔들리는 나뭇가지는 비틀거리며 달리는 차창을 사정없이 후려치고 있었다



그렇지만 멈출 수는 없는 일이었다

이렇게 죽으나 저렇게 죽으나 마찬가지일 것 같으면 가다가 죽는 것이 나을 것 같았다

그때의 그 공포감은 안 겪어본 사람은 감히 상상조차 할 수 없는 너무나도 압도적인 두려움이었다

칠흑같이 어두운 광풍과 폭우 속을 뚫고 차가 멈춘 곳은 지금도 그 지명을 알 수 없는 중간쯤의 어느 해변가였다



그리고 그곳에서 내 눈앞에 펼쳐진 그 압도적인 광경은 정말 형용할 말을 찾을 수 없을 만큼 너무나도 초현실적인 것이었다

꿈인지 생시인지 구분을 할 수가 없었다

바로 그곳에는 온천지가 암흑 속에 파묻힌 것 같은 짙은 어두움 속에 가파른 수직 해안절벽이 끝없이 아스라이 굽이쳐 펼쳐지고 있었다

온 우주를 뒤엎을 것만 같은 시커먼 파도들의 울부짖음과 소용돌이는 칠흑같이 어두운 천지창조 당시의 원초적인 원시바다를 바라보는 것만 같았다





끝도 모를 어두운 수평선 어딘가로부터 천지를 뒤흔들듯 부서지는 파도의 굉음과 흰 이빨은 마치 지옥의 문이 열린 것처럼 도저히 현실감이 느껴지지가 않았다

온천지를 뒤흔들 것만 같은 대자연의 울부짖음 이외에 어떠한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그 순간 나의 내면의 깊은 곳으로부터 어떤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동안 수돗물에 마른 식빵 씹어먹으면서 숱한 나날을 낯선 나라 낯선 땅에서 때로는 차 속에서 때로는 노지에서 장돌뱅이처럼 홀로 떠도는 삶이 덧없이 느껴졌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느낄 수 있는 한 가지는 이 살아 움직이는 우주의 거대한 소용돌이 속에서 나는 여전히 살아 숨 쉬고 있다는 사실이었다

그와 동시에 내 마음 깊은 곳으로부터 내 안의 원죄적 고통과 어두움으로부터 벗어나 다시 태어나고 싶다는 열망을 느꼈다

이 압도적인 우주의 소용돌이 속에 모든 것 던져버리고 이 모든 혼돈과 고통 이전의 원초적인 고요와 평온함을 찾아가고 싶었다



그리고 인도로 향했다

히말라야의 산악마을 심라에서부터 인도의 최남단의 첸나이에 이르기까지 거의 1여 년 동안 인도 전역의 수많은 아슈람과 명상센터를 돌아다니며 살아가야 하는 이유를 찾고자 했다

그리고 그곳에서 만난 수많은 현지인들의 다양한 삶의 모습을 직접 생생히 접하면서 '모든 것은 마음먹기에 달렸다'는 단순한 진리에 공감할 수 있게 되었다





그리고 다시 호주로 돌아와 멜버른에서 명상센터를 개설하여 본격적으로 수행의 길로 들어서게 되었다

그렇게 명상센터가 겨우 자리를 막 잡아가려는 그 무렵 비자문제로 귀국해야만 했다

그러나 그사이 가족과 나 사이에는 그 떨어져 있는 세월만큼이나 알 수 없는 간극이 벌어지고 있었다

무엇보다도 가족의 생계를 책임지지 못하고 내 앞가림하기 급급했던 내가 또다시 현실을 외면하고 호주로 되돌아갈 수는 없었다



결국 호주의 생활을 접고 국내로 돌아와 생활전선에 뛰어들었으나 보이지 않는 정신계 수행에 대한 열망과 현실세계와의 마음의 충돌과 갈등으로 인하여 실생활에서의 적응이 정말 힘들고 고통스러웠다

현실과 이상사이의 균형 잡기가 쉽지가 않았다

결국 가족에 대한 책임도, 실질적 수행으로 인한 성장도 모두 놓쳐버린 채 이도저도 아닌 어설픈 삶을 살게 돼버린 것이다

변명할 것 없는 무능함으로 대부분의 삶을 허비해 버린 셈이다



그러던 몇 년 전 어느 날 대전역 앞 허름한 헌책방에서 마주친 틱낫한 스님의 낡은 책에 실린 ‘이 순간의 경이로움’에 대한 실재적 자각이 온몸으로 체득되는 순간 안개 같던 모든 혼돈이 걷히고 모든 것이 단순하고 명료하게 정리가 됨을 느낄 수가 있었다

그와 함께 젊은 시절 잘 나가던 그때 저질렀던 수많은 구업과 오만함, 그리고 평생을 두고 쌓아온 잘못된 습관과 생각들이 지금의 나를 만들었다는 냉엄한 사실을 역지사지로 느낄 수가 있었다





그리고 나에게 닥친 이 모든 고통과 시련의 모든 것은 내 안의 모든 잘못된 정보를 바로 잡고 더 나은 나로 성장할 수 있도록 설계된 우주의 작동방식이라는 사실도 깊이 체감할 수 있게 되었다

더 이상 지난 과거의 흉터와 아직 오지 않은 미래에 대한 환상과 두려움에 속박되지 않도록 ‘지금 이 순간’에 집중하며 최선을 다 해야 했다

결국 지금 이 순간에 집중하며 음과 양으로 생활 속에서 마음을 챙기는 삶이 가장 이상적인 삶의 방향이라는 것을 그때 깨닫게 되었다



수행이라는 명목으로 특정한 어떤 형식이나 장소에 얽매어 현실과 동떨어진 삶을 살 필요는 없었다

그냥 생활 속에서 성실하게 살면서 잠들기 전에 하루를 뒤돌아보고 길을 걷다가도 자신을 되돌아봄으로써 꾸준히 나를 성장시킬 수가 있는 것이었다

특히 지난 과거에 대한 나의 온갖 부정적인 기억과 불확실한 미래에 대한 막연한 환상으로부터 벗어나 지금 현실에 최선을 다하며 그 결과에 감사하고 느끼고 누릴 수 있다는 단순한 진리를 이제야 비로소 손에 잡힐 듯 자각할 수 있게 됐다는 사실이 얼마나 다행스러운 일인가





정말 보통의 평범한 일반인들보다도 훨씬 늦은 나이에 겨우 철이 들게 된 것 같다

바로 이것이 지금 연재하고 있는 이 글의 <제1권> 내용의 주제가 '지금 현재 이 순간'에 집중하자는 이유이기도 하다

과거는 이미 아무것도 만지거나 붙잡을 수 없이 오직 기억만으로 존재하는 꿈과 크게 다르지 않다

꿈속에서 겪었던 과거와 미래가 현실 속 삶에서 무슨 의미가 있는가?




혹자는 과거에 남겨놓은 사진이나 역사적 유물로 볼 때 여전히 존재하는 실재가 계속된다고 생각하는데 이는 본질적으로 볼 때 그 당시 실재했던 것과는 완전히 다른 고체화된 기억일 뿐이다

그 딱딱한 흔적 역시 우주의 근본원리인 양자의 세계에서는 파동으로만 존재하는 에너지일 뿐이며 그마저도 단 한순간도 똑같은 모습이 아닌 또 다른 모습으로 매 순간 변해가는 과정에 있는데 그것이 꿈속에서 있었던 기억과 무슨 차이가 있겠는가





과거는 이미 지나간 꿈일 뿐이다

볼 수가 있는가 만질 수가 있는가

과거에 내가 술주정뱅이로 막살았던 사람이라고 지금도 내가 여전히 똑같은 사람인가?

꿈과 같이 이미 지나버리고 없는 것이지만 과거가 우리에게 주는 의미인 반성과 회개를 통해 개선하고 바뀌고 나면 나는 전혀 새로운 존재로 있는 것이다



술주정뱅이로 살았던 나와 지금의 나와 무슨 상관이 있는가

이미 지금은 존재하지도 않은 꿈속의 내 모습이었는데 스스로 낙인을 찍어 여전히 과거의 내 모습에 스스로를 구속한다면 영원히 지금의 나는 없는 것이며 유령처럼 실체 없이 우주를 방랑하는 헛된 존재일 수밖에 없다

무슨 발전이 있겠는가



결국 죽어서도 그의 잠재의식 속에 새겨진 술주정뱅이라는 무겁고 어두운 업력을 스스로 짊어지고 저세상을 가게 됨으로써 우주의 다른 차원의 세계를 가더라도 스스로 그의 의식 수준에서 벗어나지 못한 채 비슷한 차원의 세계와 공명될 수밖에 없을 것이다

자, 이제 우리 모두 함께 모든 마음속 무거운 짐 벗어던지고 새로운 나를 발견하고 창조하여 영원한 우주의 나그내로서 희망찬 매 순간 길을 여행해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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