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6.13.어쩌면 누군가 말하는
'작은 일탈'이 아닐까

by 마부자

커튼 사이로 스며들던 햇살은 어느 순간 흐릿한 구름에 묻혀버렸다. 아침마다 지저귀던 창밖의 새들은 이상하리만큼 침묵했고, 아침 공기는 무겁게 가라앉아 있었다.


익숙한 몸짓으로 일어섰지만, 몸은 평소보다 무겁게 반응했다. 하루를 시작하는 일이 마치 하나의 감정을 뚫고 나아가는 일처럼 느껴졌다.


제목: 꽃잎

활짝 핀 꽃나무 아래서
우리는 만나서 웃었다

눈이 꽃잎이었고
이마가 꽃잎이었고
입술이 꽃잎이었다

우리는 술을 마셨다
눈물을 글썽이기도 했다

사진을 찍고
그날 그렇게 우리는
헤어졌다

돌아와 사진을 빼보니
꽃잎만 찍혀 있었다.

꽃을 보듯 너를 본다 중에서 - 나태주


창가에선 익숙하던 햇빛 대신 잔뜩 습기를 머금은 회색빛 하늘이 내려다보였고, 그것은 마치 오늘은 감정을 가라앉히고 살아야 할 날이라고 조용히 말해주는 것 같았다.


두 사람이 현관을 나서는 뒷모습을 바라본 뒤 책상 앞에 앉았다. 생일에 딸이 건넸던 세 권의 책 중, 아직 손대지 못한 이병률 시인의 <바다는 잘 있습니다>가 눈에 들어왔다.


시를 읽는 일은 조심스러운 일이다. 마치 누군가의 마음 깊은 곳을 들여다보는 일 같아서, 감정을 정돈하며 한 페이지씩 조심스럽게 넘겨 나갔다.


그러나 불과 몇 페이지를 넘기지 못하고 시집을 덮을 수밖에 없었다. 시는 역시 어려웠다. 문장 하나, 단어 하나에 모든 의미와 감정을 눌러 담아야 하는 문학.


그 안에 담긴 무언가를 받아들이기엔 지금의 마음이 준비되지 않은 듯했다.


예전에는 류시화나 나태주, 원태연의 시처럼 보다 직관적으로 다가오는 감정선에 위안을 얻곤 했지만, 오늘의 시는 왠지 그 어디에서도 공감을 얻을 수 없었다.


몇 번이고 반복해 읽고, 조심스레 필사도 해보았지만 단단히 닫힌 의미의 문은 열리지 않았다. 지금의 나로선 이 감정의 깊이에 닿기엔 시간이 필요하다는 사실을 결국 이순간 받아들이기로 했다.


시는 소설이나 에세이처럼 줄줄이 넘길 수 있는 글이 아니다. 한 편의 시마다 작가가 쏟아낸 정신의 밀도가 다르기 때문에, 그냥 읽는다는 행위 자체가 오히려 무례처럼 느껴질 때도 있다.


시인은 단어 하나를 고르기 위해 마음의 어딘가를 오래도록 파헤쳤을 텐데, 독자라면 그 깊이를 느낄 준비를 해야 하는 것이다.


그래서 나는 조용히 책장을 덮고, 시집을 다시 책장으로 돌려보냈다. 언젠가 시 한 편이 가볍게 마음에 스며들 수 있는 그런 날이 오기를 기다리며.


짧은 독서를 마치고 짧은 운동을 시작했다. 그리고 시청한 책 추천 영상 하나. 요즘 자주 떠오르는 ‘투자’에 대한 생각도 차분히 글로 정리해보았다.


점심을 먹고 소파에 기대 잠시 쉬는데, 창밖에서 들려온 낯익은 소리. ‘타닥 타닥’ 빗방울이 간만에 창을 두드렸다. 소리에 이끌려 창가에 다가섰다.


멈춰 선 자리에서 들리는 빗소리는 처음엔 단순한 배경음처럼 느껴졌지만, 이내 감정의 무게를 조용히 더해왔다. 마치 내 안에 잠들어 있던 부정적인 감정들이 빗줄기를 따라 차오르는 듯한 기분.


감정을 긍정으로 돌려보려는 작은 시도들이 무색할 만큼, 오늘의 공기는 유독 무거웠다. 결국 창문을 닫고 소파에 앉았다. 책을 펼칠까, 지식이든 감성이든 무언가를 머릿속에 채워넣어볼까 고민했지만, 이내 포기했다.


오늘은 어떤 것도 들어오지 않는 날이었다. 그럴 땐 굳이 억지로 애쓰지 않기로 했다. 아무 생각 없이 나를 끌고 가줄 무언가가 필요했다.


넷플릭스를 켰다. 진지한 영화도, 감성적인 서사도 아니었다. 강렬한 액션과 억지에 가까운 웃음을 담은 영화 한 편을 골랐다.


어차피 무너진 감성을 일으키기보다는, 차라리 평소 절제하고 눌러두었던 것들을 오늘만큼은 허락해주고 싶었다.


믹스커피 세 개를 뜯어 달콤한 아이스커피를 만들고, 어제 아내가 사온 크림빵을 꺼냈다. 단 것을 거의 먹지 않는 나다. 생일이나 특별한 날에도 케이크 한 조각이면 충분하던 내가 오늘은 그런 제한을 스스로 무너뜨렸다.


크림빵 한 입과 아이스커피 한 모금. 입 안을 채운 그 순간의 행복은 생각보다 컸다. 잠시지만 확실한 위로였다. 폭력적인 장면과 억지 웃음, 그리고 과한 당분. 그 삼박자 덕분에 감정의 눅진한 무게는 조금씩 벗겨졌다.


아무 설명하지 않아도, 가끔은 어떤 날의 분위기라는 것이 마음을 채우고 지배할 때가 있다. 오늘이 그런 날이었다. 말로는 설명할 수 없지만, 어떤 기분에는 그저 그런 식의 날이 필요한 것이다.


이것이 어쩌면 누군가 말하는 '작은 일탈'이 아닐까 생각했다. 거창하지 않아도, 그동안 미뤄두었던 감정과 욕망의 틈을 살짝 열어주는 순간.


평소라면 하지 않았을 선택들이 오늘을 조금은 덜 무겁게 해주었다. 작은 일탈의 여운이 채 가시기 전, 시계를 보니 어느덧 아내의 퇴근 시간이 다가오고 있었다.


평소와는 다른 하루를 이어가고 싶었던 나는 그 참에 기분 전환을 확실히 해보고자 아내를 마중하러 회사로 향했다.


아무 예고 없이 나타난 나를 본 아내는 의외의 웃음을 지었고, 그것만으로도 이미 충분한 보상처럼 느껴졌다.

창가에서 멍하니 바라보던 빗줄기와 자동차 앞유리를 타고 흐르는 빗물은 전혀 다른 감정으로 다가왔다.


고요한 우울이 아닌, 누군가를 맞이하기 위해 움직이는 따뜻한 에너지였다. 같은 비인데도, 함께 있을 누군가가 있다는 사실만으로 이렇게 감정의 결이 달라질 수 있다는 걸 새삼 느꼈다.


즐거운 퇴근길, 아내가 말했다. 주말 내내 비가 내릴 것 같으니 집에서 먹을 음식을 미리 준비하자고. 마치 약속이라도 한 듯, 자연스레 발길은 마트로 향했다.


물가가 오를 대로 오른 요즘, 장바구니에 물건을 넣는 손길은 조심스러웠다. 채운 듯 비운 듯 애매한 무게의 카트를 끌고 우리는 다시 집으로 돌아왔다.


마침 금요일이라 급식 없이 일찍 돌아온 막내와 함께 푸짐한 저녁을 차려 먹었다. 평소 같으면 식사 후 산책을 나섰겠지만, 비가 내리는 오늘은 각자의 자리에 앉아 서로의 하루를 조용히 정리하는 시간을 가졌다.


같은 공간, 각자의 방식으로 하루를 마무리하는 고요한 시간이 오히려 가족이라는 이름의 풍경을 더 짙게 만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