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말이면 나는 늘 아내와 함께 볼링장으로 향한다. 예전에는 나 역시 공을 들고 레인 앞에 섰지만 오십견이라는 이름의 통증이 어깨에 자리를 잡은 뒤로는 자의 반 타의 반으로 공을 내려놓았고 그렇게 올해도 자연스럽게 아내의 볼링 매니저 역할을 이어가게 되었다.
매니저의 기본은 운전기사라는 생각이 이제는 꽤 분명해졌다.
특히 어제처럼 영하의 한파가 몰아치는 날에는 경기 내용보다 이동과 체온 관리가 더 중요해지고 그래서 나는 아내의 컨디션이 흐트러지지 않도록 묵묵히 곁을 지키는 쪽을 선택하게 된다.
클럽대항전은 매달 정해진 주에만 열리지만
실제로는 매주가 준비의 연속이다.
클럽원 대부분이 모여 땀을 흘리고 대형 선풍기를 틀어가며 겨울과 싸우는 이 시간은 승부보다 관계와 리듬을 확인하는 자리라는 생각이 점점 더 분명해진다.
운동을 마친 뒤 우리는 인근 식당으로 자리를 옮겼고 테이블은 자연스럽게 술조와 비술조로 나뉘었다. 예전 같으면 나는 망설임 없이 술조의 중심에 앉아 분위기를 만들었겠지만 이제는 비술조의 한쪽이 내 자리가 되었다.
그 자리가 낯설지 않을 만도 한데 아직은 그렇지 않다.
내 앞에 소주잔이 없다는 사실이 마치 나에게 맞지 않는 갓을 쓰고 앉아 있는 느낌을 주고 서른다섯 해를 함께한 술이라는 존재가 여전히 마음 한구석에서 미련처럼 남아 있음을 인정하게 된다.
술이 한두 잔 들어가자 술조의 분위기는 빠르게 무르익었고
자연스럽게 타인에 대한 이야기가 오가기 시작했다.
술자리에서 가장 손쉬운 안주가 뒷담화라는 사실을 모를 리 없지만 오늘의 나는 그저 조용히 듣는 쪽을 선택했다.
오늘의 주제는 몇주 전 클럽대항전에서 생긴 작은 충돌과 그에 대한 우리 클럽회장의 선택에 대한 옳고 그름의 문제에 대한 이야기로 시작되었다.
회장이라는 자리에 있으면 회원의 이익을 위해서는 개인의 불편함을 감수해야 한다는 말도 맞고 취미는 즐겁자고 하는 것인데 큰 손해가 없다면 양보하는 것이 더 좋은 것이라는 회장의 태도 역시 틀리지 않았다.
오늘 어제의 이야기를 다시 떠올리며 내가 왜 그토록 마음이 불편했는지를 곰곰이 생각해보니 문제는 손해가 아니라 공정함이었다는 결론에 닿는다.
오래도록 암묵적으로 지켜오던 룰이 우리 클럽에 유리한 상황이 되자 사전 논의 없이 바뀌었고, 그 결정의 주체가 상대 클럽의 회장이었다는 사실이 회원들의 신뢰를 흔들었다.
상대 회장은 그 룰 변경이 자신들에게 이익이 된다는 것을 충분히 예측하고 있었고, 우리 회장은 그 상황을 문제 삼기보다 양보를 선택했다.
그 순간 회원들이 느낀 감정은 패배감이 아니라 대표로서의 역할을 내려놓았다는 느낌, 다시 말해 책임을 피했다는 인상이었다는 점이 오늘따라 또렷하게 떠올랐다.
클럽 활동이 취미라는 말은 맞지만,
승부가 걸린 순간만큼은 이야기가 달라진다.
등수에 따라 상금과 몇 달간의 혜택이 이어지는 구조에서 회원들이 원하는 것은 개인의 선의가 아니라 명확한 기준이고, 그 기준이 지켜질 것이라는 믿음이 클럽을 움직이는 힘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회장이라는 직책을 맡는다는 것은 자신의 생각을 잠시 접어두는 일부터 시작된다고 본다.
만약 그 역할이 불편하고 부담스럽다면 차라리 평회원으로 남는 것이 더 솔직한 선택이고, 스스로 선택한 자리라면 대표로서 타 클럽과의 마찰 앞에서는 우리 편의 이익을 대변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오늘 나는 회장의 양보가 왜 어른스러움으로 읽히지 않았는지를 조금은 알 것 같다.
공정함이 무너지면 즐거움도 오래가지 못하고, 대표가 기준을 지키지 않을 때 공동체는 가장 먼저 방향을 잃는다는 사실을, 나는 그날의 불편함을 통해 다시 확인했다.
그래서 오늘의 나는 옳고 그름을 가르기보다 기준이 흔들릴 때 마음이 왜 이렇게 불편해지는지를 오래 들여다보았고, 즐거움은 양보로 지켜질 수 있어도 공정함은 지켜내지 않으면 사라진다는 사실을 조용히 마음에 적어두고 하루를 마무리한다.
오늘도 감사합니다.^^
1. 새벽에 화장실에 가지 않고 푹 잤습니다. 아침에 눈을 뜨며 감사했습니다.
2. 우연히 찾아온 한권의 에세이를 읽으며 함께 웃을 수 있는 가족이 아직 곁에 있음이 감사했습니다.
3. 막내가 알바를 마치고 0다방에서 아빠를 위해 까페라떼를 사왔습니다. 생각지도 않은 따뜻한 까페라떼 한잔이 너무 감사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