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오전, 우리 집에는 비상사태가 선포될 정도로 정신이 없었다. 아내와 딸이 동시에 반차를 쓰고 귀가했기 때문이다.
이 집에서 동시에 반차를 쓰고 들어오는 일은 거의 독립선언급 사건인데, 그 이유는 인천공항 출정이라는 거대한 계획이 있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그 출정의 이면에 얼마전 내가 던진 한 마디가 이렇게 거대한 프로젝트로 발전할 줄은 몰랐다는 것을 뒤늦게 깨달았다.
지난달 딸이 “요즘 싱가포르가 그렇게 좋대”라고 말했을 때 나는 별 의미 없이 “네가 다 알아보고 엄마 랑 둘이 다녀오고 가이드까지 하면 비용은 아빠가 낼게”라고 던졌다.
그 말은 내가 물 위에 던진 작은 떡밥이 아니라 대형 참치를 낚는 미끼였다는 사실을 며칠 뒤 깨닫게 되었다.
딸은 비행기표가 나왔다며 예약할 거냐고 물었고, 아빠라는 직책은 한 번 뱉은 말을 다시 삼키지 못하는 구조로 설계되어 있기에 나는 결연한 표정으로 허락을 했다.
그날 이후 내 휴대폰은 예약 완료, 숙소 확정, 식당 예약등의 결제 승인이라는 알림 폭탄을 맞기 시작했다.
송금을 하고 나니 일이 일사천리로 진행되었고, 나는 그 속도를 보며 기술의 발전이 무섭다고 말하면서도 동시에 “그래도 이런 건 참 편하다”라는 모순된 감정을 느꼈다.
얼마전 막내도 친구들과 일본을 자유여행으로 다녀왔듯이 영어 또는 외국어 한마디 못해도 당당히 자유여행을 가는 시대에 살고 있다는 사실이 새삼 놀랍게 느껴졌다.
이번에도 딸과 아내가 패키지가 아닌 자유여행으로 떠난다고 하니, 이제 우리 집은 여행사 없이도 돌아가는 시스템을 갖춘 셈이 되었고 나는 자연스럽게 “재정 후원자 겸 공항 배웅 담당”이라는 직책을 부여받았다.
출발 직전 아내에게는 “절대로 딸에게 복종하라”고 귀에 못이 박히도록 말해주었고, 딸에게는 “엄마가 혹시 쉰소리를 해도 이해하고 잘 데리고 갔다가 꼭 데려와라”고 신신당부했는데, 두 사람은 그 말을 들으며 이미 서로를 감시할 준비를 마친 표정이었다.
두 사람의 관계는 세상 둘도 없는 친자매처럼 붙어 있다가도 어느 순간 돌변하여 원수 모드로 돌입하는 롤러코스터 같은 구조이기에, 나는 혹시 싱가포르에서 국제 분쟁이 일어날까 봐 미리 외교적 조율을 마친 셈이었다.
딸에게는 “잘 모시고 오면 금전적 보상”을 약속했고, 아내에게는 “잘 따라다니면 다음엔 내가 같이 간다”는 당근을 제시했더니 두 사람은 전혀 다른 이유로 흔쾌히 동의했다.
나는 협상에 성공한 유엔 사무총장 같은 기분으로 현관을 나섰다. 동대구역 앞에서 커다란 캐리어를 들고 인사를 나눈 뒤 집으로 돌아오는 길은 묘하게 조용했다.
동대구-광명-인천공항에 도착했다는 연락이 왔고, 잠시 뒤 두 모녀가 면세점에서 무얼하고 있는지 알려주는 카드 긁는 알림이 몇 차례 도착하자 비로소 원정대가 실전 모드에 들어갔음을 실감했다.
오후 여섯 시 ‘탑승완료-출발’이라는 메시지를 받고 나니 집 안이 갑자기 넓어진 느낌 아닌 느낌이 들었다.
딸은 매일 자기 집에서 지내던 터라 큰 변화가 아니었지만 아내가 이렇게 오랫동안 집을 비우는 것은 재작년 병원 입원 이후 처음이라는 사실이 묘하게 가슴을 건드렸다.
그리고 잠시 뒤 그런 허전함이 먼저인지, 자유의 해방감이 먼저인지는 아직 판단이 서지 않는 현실에서 망설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녁시간이 되어 “이제 나 혼자 먹는 밥이네”라고 중얼거리다가도 “며칠은 좀 편하겠네”라는 생각이 슬그머니 올라오는 걸 보니 내 마음도 꽤 솔직하다는 걸 인정하게 되었다.
아마도 모레쯤이면 결론이 날 것이다. 딸에게 “거기 두고 와라”라고 말할지, 아니면 “꼭 데려와라”라고 말할지.
그 결정은 아마 집안 정리 상태와 내 밥상 퀄리티 그리고 모녀의 현지 상황에 따라 달라질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며 오늘의 싱가포르 원정대를 조용히 배웅했다.
오늘도 감사합니다.^^
밝은 표정으로 비행기를 탔다고 인증샷을 보내준 것 만으로도 감사했습니다.
어머니가 콜라비로 깍뚜기를 담궈 보내주셨는데 너무 맛있었습니다. 감사한 마음으로 저녁을 먹었습니다.
캐리어를 끌고 가는 모녀의 뒷모습을 보며 그냥 감사한 마음이 들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