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212.아내 없는 날, 난 도스토옙스키와 동거를 시작

by 마부자

늘 같은 자리, 같은 공간, 같은 시간에 눈을 떴는데 오늘은 늘 같던 풍경 중 하나가 사라져 있었다.


새벽마다 옆에서 깊은 잠을 자고 있던 여인이 없다는 사실이 눈을 뜨자마자 확인되었고, 그 순간 잠시 허전함이 스쳤지만 그보다 먼저 느껴진 것은 뜻밖의 개운함이었다.


어제는 단 한 번도 화장실을 가지 않았다.

나도 모르게 꿀잠을 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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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날 효과인지 심리적 자유인지 모르겠지만 옆의 빈자리 덕분에 나는 그 어느 때보다도 가벼운 몸으로 새벽을 열었고, 이 사실을 어떻게 해석해야 할지 스스로에게 묻다가도 일단 몸이 가벼우니 분석은 잠시 미루기로 했다.


아내가 한국에 없다고 해서 세상이 뒤집히는 것은 아니었다. 아침은 여전히 찾아왔고 냉장고는 그대로였으며, 나 역시 같은 자리에 앉아 같은 루틴을 이어갔고, 다만 아침에 분주하게 움직이는 여인이 사라졌다는 점에서 약간의 진공 상태 같은 평온함이 추가되었을 뿐이었다.


새벽에 ‘시도’라는 단어에 대해 글을 쓰며 하루를 시작했고, 혼자 있는 시간이 오히려 생각을 더 또렷하게 만든다는 사실을 느끼며 스스로를 칭찬하다가도, 이 평화가 며칠이나 갈지 모른다는 불안이 동시에 올라오는 묘한 상태를 경험했다.


그리고 정해진 시간에 새로운 고전을 꺼내 들었는데, 며칠 전 공산당 선언을 읽고 나서 갑자기 방향을 틀어 도스토옙스키의 <죄와 벌>을 펼치는 내 모습이 스스로 봐도 다소 과격하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혼자 있는 집에는 러시아 문학 정도는 초대해도 괜찮겠다는 판단을 내렸다.


책을 좋아하는 독자라면 이미 수십 번 읽었을 작품을 나는 53년 만에 처음 펼쳤고, 솔직히 말하면 주변에 책 좋아하는 사람이 거의 없었던 덕분에 이 작품의 줄거리조차 제대로 모른 채 첫 장을 넘겼다는 사실이 나를 더 겸손하게 만들었다.


청춘의 독서에서 짧은 설명을 듣고 읽어야겠다고 마음먹은 그날의 나는 몰랐을 것이다. 아내가 싱가포르로 떠난 다음 날, 집 안에 남은 남자가 러시아 작가와 동거를 시작하게 될 줄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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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자 있는 시간에 누군가가 필요하다고 느낀 나는 아내를 대신해 내 곁에 둘 사람으로 도스토옙스키를 선택했는데, 사실 선택의 여지가 있었던 것도 아니고 집에 있는 책 중 가장 두꺼운 책이 눈에 띄었을 뿐이지만 어찌 되었든 오늘부터 나는 라스콜니코프와 함께 새벽을 보내게 되었다.


묘하게도 집 안은 조용했지만 책 속은 전혀 조용하지 않았고, 나는 빈 침대 옆자리 대신 죄책감과 사유와 혼란이 가득한 러시아 청년을 곁에 두고 첫 장을 읽으며, 사람의 외로움은 반드시 사람으로만 채워지는 것은 아니라는 사실을 다시 한번 깨닫게 되었다.


오늘의 결론은 아직 나지 않았다. 꿀잠의 원인이 공간의 여백 때문인지, 심리적 해방감 때문인지, 아니면 단지 내가 피곤했기 때문인지는 더 지켜봐야겠고, 모레쯤 되면 아내의 빈자리가 다시 커질지 아니면 도스토옙스키가 그 자리를 완전히 차지할지도 모르겠다.


어쨌든 오늘 나는 아내 없는 첫 새벽을 가볍게 시작했고, 러시아 문학과 함께 커피를 마셨으며, 집은 조용했지만 생각은 꽤 분주했던 하루를 보냈고, 이 자유가 해방인지 시험인지는 며칠 더 지나야 판가름 날 것 같다는 생각으로 하루를 정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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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도 감사합니다.^^


치과에 다녀왔습니다. 에피소드는 없었지만 잘 치료되고 있어 한번만 더오면 된다고 합니다. 감사합니다.

영어공부를 다시 해보려고 1개월 무료수강을 시도했습니다. 일단 해보려는 나에게 감사했습니다.

매일 같이 찾아주시고 소중한 댓글 달아주시는 분들께 감사한 마음 전하고 싶었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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