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안에도 히어로의 힘이 있다. 포기하지 마라.”
금주 18일째, 명상 후 차 한잔을 곁에 두고 책상에 앉았다. 어제와 마찬가지로 휴대폰은 서랍 안에 넣고, 나만의 루틴을 완성한 뒤 책을 펼쳤다. 손에 든 책은 얼마 전에 장만한 연탄 같은 책, 존 소포릭의 “부자의 언어”. 처음 이 책을 손에 들었을 때, 제목이 주는 무게감에 망설였던 기억이 난다.
사실 퇴사 후 돈과 관련된 생각은 잠시 접어두고 살고 싶었다. 돈에 쫓기지 않으려는 마음이 아니라, 돈이라는 개념에서 스스로를 조금 해방시키고 싶었기 때문이다. 물론 내가 돈에 무관심할 만큼 풍족한 부유층은 아니다. 다만, 27년 동안 직장 생활을 해오며 경제와 수입에 얽매인 삶을 살았다면, 이제는 잠시 다른 관점에서 나를 돌아보는 시간이 필요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 이유로 퇴사 후에는 경제 관련 책을 피하려고 했다. 무언가를 더 배우기 위해서가 아니라, 쌓여 있는 지식과 걱정의 층을 한 겹 벗겨내고 싶었기 때문이다. 그런데도 이 책을 고른 이유는 단순했다. 제목은 경제를 이야기하지만, 그 속에 담긴 언어와 태도가 돈을 넘어선 무언가를 말하고 있을 것 같았기 때문이다.
책장을 넘기며, 나는 돈과 삶을 바라보는 또 다른 시각을 배우고자 마음을 열었다. 경제적 개념을 잊고 싶다는 내 결심과는 반대로, 삶과 돈의 언어 속에서 놓치고 있던 나 자신을 다시 찾고 싶었다.
“부자의 언어”는 단지 부를 쌓는 기술이 아니라, 그 안에 담긴 태도와 가치관을 탐구하는 시간이었다. 오늘 이 책과 함께 나의 루틴 속에서 어떤 깨달음을 얻게 될지 기대하며, 차 한 모금과 함께 조용히 책장을 넘겼다.
얼마 전 우연히 본 ‘하와이 대저택’ 영상이 떠오른다. 제목만으로도 화려한 성공의 상징처럼 느껴졌던 그 영상에서 얻은 한 가지 생각은, 부자가 되는 건 단순히 돈을 버는 기술이 아니라 삶을 대하는 태도라는 것이었다. 그래서 존 소포릭의 “부자의 언어”를 선택할 때도 의심하지 않았다. 이 책이 부자들의 성공 습관이나 재테크 방법을 알려주는 도구가 아니라, 부자가 되기 위한 마음가짐을 이야기하는 책이라는 걸 이미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책을 펼쳐 들었을 때 반가운 깜짝 선물이 함께 있었다. 새해를 맞아 출간된 이 책에는 ‘부자의 언어 카드’ 12장이 들어 있었다. 카드마다 담긴 문구는 책에서 다룬 핵심 메시지들이었다. 그 카드는 단순한 사은품이 아니라, 하루하루 나의 태도를 점검하고 되새길 수 있는 작은 나침반처럼 느껴졌다.
장남이 한때 마블 매니아로 열정을 불태웠던 시절이 떠오른다. 마블의 모든 영화를 섭렵하고, 한정판 피규어를 모으며 그 세계에 푹 빠져 있던 모습은 지금도 생생하다. 어느 날엔 퍼즐 맞추기에 몰두하더니, 마블 퍼즐 1000피스를 4시간 만에 완성하는 신기에 가까운 모습을 보여주기도 했다. 그의 그 열정과 집중력이 참 대단하다는 생각을 하곤 했다.
지금 내가 서재로 사용하는 이 방은 원래 장남의 방이었다. 그래서일까? 방의 모든 벽에는 마블 액자들이 빼곡히 걸려 있다. 아이언맨, 토르, 캡틴 아메리카, 블랙 위도우—어벤져스의 영웅들이 내 사방을 둘러싸고 있는 셈이다.
그러던 어느 순간,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어쩌면 내가 이 힘든 시간 속에서도 포기하지 않고 새로운 도전에 나설 수 있는 용기를 내는 이유가, 바로 이 방 안의 어벤져스들 덕분이 아닐까?”
우주적 힘을 품은 영웅들이 무언의 응원을 보내는 것 같은 기분. 물론, 다소 뜬금없고 유쾌한 상상이지만, 그 상상이 나에게 미묘한 힘을 주는 것만은 분명하다.
어벤져스는 각기 다른 능력과 성격을 가진 사람들이 한 팀이 되어 더 큰 문제를 해결하는 이야기를 들려준다. 그리고 그 이야기는 마치 지금 나의 삶에 닿아 있는 메시지 같았다. 나 역시 내 주변의 가족, 친구, 그리고 스스로의 의지를 팀처럼 여겨 힘들어도 앞으로 나아가고자 하는 것일지도 모른다.
벽에 걸린 마블 액자들은 단순히 장식이 아니라, 나를 둘러싼 상징처럼 느껴진다. 그들이 속삭이는 듯하다.
“네 안에도 히어로의 힘이 있다. 포기하지 마라.”
이 작은 방, 그리고 그 속의 어벤져스들이 오늘도 나에게 새로운 에너지를 주고 있다. 내게는 장남의 추억과 우주적 상상이 결합한 이 공간이, 그 무엇보다 강력한 히어로의 기지가 되어 주는 것 같다.
“부자의 언어”는 예상했던 것보다 두께가 제법 되는 책이었다. 제목만큼이나 안에 담긴 내용도 무거우면서도 풍성했다. 오늘 약 3시간에 걸쳐 읽어보니, 이 책이 단순히 부자가 되는 기술을 넘어, 삶과 태도에 대한 깊은 통찰을 담고 있다는 것을 금세 알 수 있었다.
다 읽지는 못했지만, 책을 덮으며 느껴진 건, 이 한 권이 단순히 정보를 제공하는 데 그치지 않고 스스로를 돌아보게 만든다는 점이었다. 내용의 깊이를 천천히 따라가다 보니, 책 속에 담긴 이야기를 모두 흡수하기 위해 더 많은 시간이 필요할 것 같았다. 그래서 자세한 내용은 내일 완독한 뒤에 일기나 서평으로 남겨 보기로 마음먹었다.
책을 덮고 거실로 나갔다. 책 속의 무게를 그대로 품고 있던 마음이 문득 가벼워지는 느낌이었다. 긴 독서의 시간 뒤에 잠시 숨을 고르며, 오늘 하루를 정리할 여유가 찾아왔다.
“책 속의 메시지가 내일 또 다른 하루를 여는 문이 되기를.”
그렇게 스스로에게 속삭이며, 독서가 끝난 자리에 오늘의 나를 차분히 내려놓았다.
주말은 원래 자전거를 타는 날이지만, 오늘은 체력 회복을 위해 쉬기로 했다. 대신 간단한 운동으로 팔굽혀펴기 150개를 하며 몸을 풀었다. 땀이 살짝 맺히는 그 짧은 시간 동안, 운동이 주는 활력과 정돈된 기분을 다시금 느낄 수 있었다. 운동 후에는 아내와 함께 늦은 아침을 먹으며 여유롭게 하루를 시작했다.
아내의 루틴을 위해 볼링장으로 향했다. 그녀에게 볼링은 단순한 취미 이상으로 중요한 일상이자 회복의 일부다. 볼링장에 가까워질수록 주차장이 가득 찬 차들로 북적이는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주말이라는 이유도 있지만, 내일 있을 동호회 개인전 시합을 준비하기 위해 많은 클럽 동호회원들이 모인 것 같았다.
볼링장의 활기로 가득 찬 분위기 속에서, 나는 아내가 느낄 에너지가 더 크리라는 생각이 들었다. 사람들의 집중된 눈빛과 움직임이 불러일으키는 활기가 그녀에게도 긍정적인 자극이 되기를 바랐다. 아내는 이곳에서 오늘의 작은 목표를 이루고, 새로운 에너지를 얻고자 했다.
게임을 준비하던 중, 이웃 클럽의 한 사람이 다가와 웃으며 인사를 건넸다.
“작년 1월 첫 대회 우승자가 아마 00씨였죠?”
그 말에 아내는 잠시 미소를 지으며 대답했다.
“그쵸~ ㅎㅎㅎ 내일 긴장하세요!”
서로의 농담 섞인 대화 속에서, 분위기는 한층 밝아졌다.
상대방도 “그래요, 내일도 꼭 우승하세요!”
라며 웃으며 인사를 건넸다.
그 짧은 순간, 나는 아내를 바라보았다. 그녀의 눈빛과 자세 속에는 이미 우승자의 기운이 담겨 있었다. 마치 과거의 자신을 되찾고자 하는 강한 의지가 번뜩이는 듯했다.
아내가 그 말을 가볍게 받아쳤지만, 내게는 그 짧은 대화가 그녀에게 큰 에너지를 불어넣은 것처럼 보였다. 지난 시간 동안의 어려움과 혼란 속에서도, 그녀는 여전히 자신만의 무대를 준비하고 있었다. “내일 긴장하세요!” 라는 한 마디 속에는 그녀의 강인한 의지가 엿보였다.
볼링공을 쥔 그녀의 손길은 예전과 다르지 않았고, 시합 전의 작은 설렘과 긴장감이 병실의 고요한 일상과는 전혀 다른 활기를 가져다주었다. 아내의 눈빛과 의지 속에서 나는 그녀의 내면이 얼마나 강한지를 다시 한 번 느꼈다.
“우승 여부와 상관없이, 이 순간 그녀는 이미 우승자였다.” 그날의 눈빛은 단순히 경기에 임하는 태도를 넘어, 삶의 도전에 맞서는 그녀의 모습 그 자체였다. 내일이 어떤 결과로 이어지든, 오늘의 그 눈빛이 우리 모두에게 큰 용기를 주었다.
그 순간, 작년 이맘때가 떠올랐다. 1월의 이 대회에서 아내가 우승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쓰러졌던 기억이 선명히 되살아났다. 생각지도 못했던 우승에 우리는 함께 웃고 기뻐하며 그날의 특별함을 만끽했다. 아내는 술에 취해 들뜬 모습으로 들어왔고, 나도 기분 좋게 축배를 들었던 밤이었다.
그날의 또 다른 기억은 우승의 여운 속에서 얼떨결에 동호회 총무를 맡게 되었던 일이다. 분위기에 휩쓸려 시작된 일이었지만, 아내의 활기와 행복했던 모습 덕분에 부담도 즐거움으로 바뀌었다. 그 순간들이 벌써 1년 전의 일이 되었다는 게 실감이 나지 않았다.
이제 내일, 아내는 다시 1년 전의 자리로 돌아간다. 마치 시간이 멈췄다가 다시 흐르기 시작하는 듯한 기분이 든다. 죽음의 문턱을 넘나들었던 아내가 지금 내 앞에서 웃으며 주먹을 불끈 쥐고 있는 모습은 그 자체로 기적이었다.
"다시는 이런 모습을 보지 못할 줄 알았는데." 내일, 아내가 활기찬 얼굴로 레인 위에 서는 모습을 떠올리면 가슴이 벅차오른다. 하지만 정작 나는 그 모습을 눈앞에서 보지 못할 것 같다. 아니, 보지 않으려고 한다.
아내가 힘차게 공을 뿌리며 작년의 우승을 되찾으려 애쓰는 모습과, 지난 1년 동안 병상에서 힘겹게 싸우던 그녀의 모습이 교차하면, 그 순간 나는 도저히 눈물을 참을 자신이 없다. 응원을 보내는 것도 중요하지만, 아내가 마음껏 집중할 수 있도록 뒤에서 조용히 응원하기로 했다.
"1년의 시간이 우리를 다시 이곳으로 데려왔다." 내일 아내가 보여줄 그 한 순간의 투지가 우리 모두에게 얼마나 큰 의미인지 알기에, 나는 묵묵히 그녀의 곁에서 최선을 다해 지켜볼 것이다. 눈물은 참아도, 마음속의 응원은 끝없이 그녀에게 닿기를 바란다.
오늘은 몸만 풀겠다며 시작한 4게임. 적당히 마무리한 뒤 집으로 돌아오는 차 안에서 아내는 내일의 시합에 대한 열정을 숨기지 않았다.
"내일은 반드시 우승에 도전하겠다."
아내의 목소리에는 열정이 가득했고, 차 안의 공기마저 그 뜨거운 기운으로 채워졌다.
나는 아내의 의지가 대견하고 자랑스러웠다.
"이런 마음이라면 반드시 우승할 수 있을 거야."
진심을 담아 응원하며 나도 내일을 기다렸다.
집에 도착한 뒤, 내일의 시합을 준비하는 아내를 위해 저녁으로 닭볶음탕을 준비하기로 했다. 몇 일 전 이마트에서 사온 닭볶음탕용 재료가 떠올랐다. 아내가 감자보다 고구마를 더 좋아한다는 걸 알기에, 오늘은 고구마와 각종 채소를 듬뿍 넣어보기로 했다. 막내가 "오늘 저녁은 왕창 먹자!"고 한마디 덧붙였으니, 닭 두 마리를 조리하기로 결정했다.
백종원 쉐프님의 레시피를 참고했기에 맛은 걱정이 없었다. 보글보글 끓어오르는 닭볶음탕 냄새가 집안 가득 퍼지는 동안, 아내와 막내는 식탁 앞에서 기대 가득한 표정을 지었다. 저녁을 먹는 동안 우리는 웃음과 대화를 나누며, 따뜻하고 만족스러운 식사를 했다. 결국 닭 두 마리는 하나도 남김없이 깨끗이 비워졌다.
식사를 마친 뒤, 우리는 각자의 시간을 가지기로 했다. 막내는 방으로 들어가고, 아내는 내일의 시합을 준비하며 마음을 다잡았다. 나는 오늘 하루를 돌아보며, 내일의 아내를 위해 어떤 응원을 보낼지 다시금 생각했다.
배부른 몸을 이끌고 책상에 앉아 오늘의 일기를 쓰려는 찰나, 휴대폰 알람 소리가 울렸다. 확인해보니 블로그 브런치에서 온 문자였다. 블로그 이웃이자 “오십의 태도” 작가이신 정은숙님께서 추천해 주셔서 브런치라는 것을 알게 되어, 글을 올려보기로 마음먹고 신청했는데 운 좋게도 바로 승인이 났다. 1월 초부터 시작한 연재는 이제 막 첫걸음을 뗀 상태였지만, 오늘 도착한 문자는 놀라운 소식을 전해주었다. 조회수 5,000명이라는 기록이었다.
처음에는 그 숫자의 의미가 실감 나지 않았다. 브런치를 시작한 지 얼마 되지 않았고, 그동안의 조회수는 대체로 100명 내외였으니, 갑작스러운 상승에 어리둥절할 수밖에 없었다. 왜 이런 일이 일어났는지 정확히는 모르지만, 나의 글이 더 많은 사람들에게 닿고 있다는 사실이 신기하면서도 어딘가 설레는 기분이었다.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앞으로는 글을 더 신중하게 써야 한다." 지금까지도 공감을 주는 글을 쓰기 위해 고민하고 수정을 거듭했지만, 이제는 글 한 줄, 한 문장조차 더 깊이 생각하며 써야겠다는 책임감이 생겼다. 누군가 나의 글을 읽으며 감동을 받거나, 작은 위안을 얻을 수 있다면 그 자체로 큰 보람이 될 것이다.
그동안 글은 나 자신을 위한 치유이자 기록이었다. 하지만 이제는 그것이 단순한 나만의 이야기가 아니라, 읽는 이들과 함께 공유하는 공간으로 확장되고 있다는 것을 느꼈다. 글쓰기가 가져다주는 힘과 무게를 다시금 깨달으며, 나의 다짐을 마음속에 새겼다.
"한 문장 한 문장에 진심을 담아 쓰자." 오늘 5,000이라는 숫자는 단순한 조회수를 넘어, 내게 글쓰기에 대한 새로운 의무와 영감을 안겨줬다. 앞으로 어떤 이야기를 쓰든, 그것이 누군가에게 닿아 따뜻한 공감이 되길 바라는 마음으로 오늘의 일기를 마무리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