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작은 행동이 누군가에게는 더 즐거운 하루를 선물할 수도 있다는 것
금주 17일 째, 오늘 아침도 여느 때처럼 후츄와 함께 하루를 시작했다. 새벽의 차분한 공기를 가르며 마무리한 루틴은 익숙하지만 늘 다정하다. 그러나 오늘은 책상 위의 풍경에 작은 변화가 더해졌다. 그 변화는 휴대폰이었다.
늘 곁에 두었던 휴대폰을 조용히 서랍 속으로 밀어 넣었다. 무음으로 전환된 화면은 더 이상 알림의 소란을 일으키지 못했다. 이 작은 행동 하나가 내게 얼마나 다른 집중력을 선물할지 알 수 없지만, 그것이 가져올 여유를 기대해보았다. 이 선택은 그저 충동적인 변화가 아니었다.
얼마 전 유튜브에서 "하와이 대저택" 영상을 보다가 요한 하리의 책 "벌거벗은 집중력" 이야기를 들었다. 그는 말한다. 우리가 집중력이 무뎌지는 원인을 늘 자신 탓으로 돌리는 경향이 있지만, 사실 시대의 변화가 만들어낸 외부 요인들이 우리의 집중을 방해하는 주요 원인일 수 있다고. 이메일과 SNS, 음식과 소음, 그리고 늘 손에 쥔 휴대폰까지 모두가 우리의 의식을 산란하게 만드는 도구들이라고…..
그 말을 들으며 내 책상 위를 떠올렸다. 항상 옆에 놓여 있던 휴대폰과 자주 울려대는 알림의 파도들. 그 순간부터 나는 매일 반복되는 루틴에 작은 질문을 던졌다.
"이 모든 흐름이 나를 돕는 걸까, 아니면 잠식하고 있는 걸까?"
영상에서 말한 것처럼, 휴대폰은 현대인의 집중력에 가장 치명적인 방해 요인 중 하나였다.
특히 독서와 같은 몰입이 필요한 시간에 그 존재감은 더욱 두드러진다. 의식적으로는 신경 쓰지 않으려 해도, 울리는 알람 소리 하나가 눈과 손을 끌어당기는 일은 흔하다. 재난 문자, 스팸 메시지처럼 사소한 알림조차도 마음을 산만하게 만든다.
영상을 보고 난 뒤, 나는 결심했다. 적어도 독서를 할 때만큼은 휴대폰을 멀리 두기로. 오늘 아침 서랍 속으로 휴대폰을 넣으며 느꼈던 낯선 고요는 어쩌면 내가 오랫동안 잊고 지냈던 평화였다. 알람 소리가 들리지 않는 책상은 더 이상 방해받지 않는 나만의 공간이 되었고, 눈길도 더는 화면을 향하지 않았다.
이 작은 변화가 만들어낸 효과로 인해 가끔씩 알람 소리에 집중이 끊기던 순간들이 사라지니, 몰입은 훨씬 자연스러워졌다. 오랜만에 책 속으로 깊이 들어갈 수 있었고, 그 결과 오늘 한 권의 책을 마무리했다.
정재민 작가의 <범죄 사회>는 내가 평소 선호하던 장르와는 조금 달랐다. 그러나 책장을 넘기며 느낀 것은, 낯선 장르에 대한 거리감이 아니라 새로움을 받아들이는 즐거움이었다. 범죄와 사회의 복잡한 연결고리를 탐구하는 작가의 시선은 날카롭고 깊었다. 내가 한 번도 주목해본 적 없는 주제들을 통해, 나는 세상에 대한 또 다른 시각을 배웠다.
그것은 우리 사회가 범죄를 바라보는 방식, 법이 이를 다루는 과정을 다층적으로 탐구한 기록이었다. 무엇보다도 책은 내가 가진 고정관념을 차례로 해체하며, 더 넓고 깊은 시각을 선물해 주었다.
우리는 흔히 범죄를 개인적인 일탈의 결과로 치부하곤 한다. 하지만 작가는 법률 전문가로서의 풍부한 경험을 바탕으로, 범죄란 단순히 개인의 도덕적 실패만이 아니라 사회 구조와 제도의 틈새 속에서 발생하는 복잡한 현상임을 설득력 있게 설명했다. 판사, 법무 심의관, 국제 재판소 연구관으로 일하며 쌓은 경험이 녹아든 문장들은 이해하기 쉬웠고, 그럼에도 깊은 공감을 불러일으켰다.
책은 특히 내가 재판에 대해 가지고 있던 선입견을 크게 흔들었다. 판사들이 결정 과정을 어떻게 거치는지, 그리고 "양형 기준표"라는 것이 법정에서 얼마나 중요한 역할을 하는지 처음으로 알게 되었다. 또한 판사들이 왜 그토록 판례를 중시하는지도 자연스럽게 이해할 수 있었다. 법의 세계는 단순히 "옳고 그름"의 문제가 아니었다. 그것은 끊임없이 합리성을 추구하는 과정, 그리고 동시에 인간적인 딜레마와의 싸움이었다.
"합리적 의심"이라는 개념은 특히 강렬하게 다가왔다. 나는 이전까지 이를 단순히 죄를 확신하기 위한 단계로만 여겼다. 하지만 책은 내게 새로운 시각을 열어주었다. 판사는 재판에서 가해자의 죄를 증명하려는 태도가 아니라, "그가 죄가 없을 수도 있다"는 가능성을 염두에 두며 사건을 검토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 의구심이 완전히 해소될 때 비로소 판결이 내려진다는 사실은, 내가 법과 재판을 바라보는 관점을 완전히 뒤흔들었다.
이러한 관점에서 보면 판사의 역할은 단순히 법을 집행하는 데 그치지 않는다. 그들은 인간의 삶과 자유를 심판하는 무거운 책임을 짊어지고 있다. 저자의 글을 읽으며, 판사라는 직업이 얼마나 큰 스트레스를 동반할 수밖에 없는지 실감했다. 한 사람의 인생을 결정하는 데 있어 오류를 허락하지 않는 그 무게가 얼마나 막중할까.
물론 모든 법조인이 저자처럼 깊은 통찰과 공감 능력을 지니고 있는 것은 아닐 것이다. 하지만 적어도 이 책은, 법조계가 가져야 할 기본적인 태도와 윤리에 대해 강렬한 메시지를 던졌다.
책장을 덮으며 느낀 것은 단순했다. 우리가 사회의 범죄와 법에 대해 갖는 관심은 결코 피상적 이어서는 안 된다는 것. 범죄를 개인의 문제로 치부하지 않고, 그 이면에 있는 구조적 문제와 법의 역할을 성찰하는 일. 그 것 이야말로 우리가 더 나은 사회를 만들어가는 시작일 것이다.
오전 10시쯤, 거실에서 들려오는 익숙한 소리가 내 집중을 잠시 깨웠다. 오늘 출근하지 않은 아내가 막내와 함께 늦은 아침 식사를 마치고, 청소를 시작한 모양이었다. 이른바 "우리만의 합의"를 지키기 위한 모습이었을 것이다. 그 장면은 내게 작은 고마움과 미안함을 동시에 안겨주었다.
어제 아내와 나눴던 약속이 떠올랐다. 아내는 내가 오전 루틴을 완전히 마무리할 수 있도록 기다려주겠다고 했다. 출근하지 않는 날이나 휴일에도 내 운동까지 포함한 루틴이 오후 두 시에 끝날 때까지는 방해하지 않고 나를 배려해 주기로 했다. 대신 그 이후 저녁 7시까지는 아내를 위한 시간을 보내기로 합의했다.
아내의 요청은 특별하거나 과한 것이 아니었다. 그녀는 볼링장을 좋아하지만 대중교통으로 가기 힘드니 차로 함께 가 달라는 것이었다. 그리고 내가 볼링을 치는 대신, 곁에서 매니저 역할을 해주는 조건이었다. 그런 단순하고도 소박한 부탁이 그녀에게 얼마나 중요한지 알고 있었기에 나는 흔쾌히 동의했다.
이렇게 우리는 서로의 하루에 공간을 열어주며, 각자의 필요를 존중하기로 했다. 내가 루틴을 지키는 동안, 아내는 자신의 방식으로 집안일을 정리하고 있었다. 작은 협의와 배려의 결과로 만들어진 이 조화로운 시간은 우리에게 안정감을 주었다.
청소를 하는 아내의 모습이 떠오를 때마다, 나는 그녀가 나의 하루를 위해 얼마나 애써주고 있는지 느낄 수 있다. 그녀의 손길이 닿는 소리들, 그리고 내가 느끼는 이 고요 속에서 나는 늘 그녀의 존재를 실감한다. 우리가 나누는 약속들은 그저 하루를 살아가는 일정이 아니라, 서로를 존중하고 배려하는 방식이 되어 가고 있다.
그리고 두 시가 되면 내 루틴은 끝이 난다. 그 이후로는 아내를 위한 시간이다. 차로 볼링장을 향해 달리고, 그녀가 좋아하는 시간을 지켜주는 일. 그 평범한 순간들 이야말로 우리가 함께 살아가는 방식이 아닌가 싶다.
오늘도 나는 그 소리 속에서 고마움을 되새긴다. 우리 삶이 이렇게 흘러갈 수 있는 건, 이런 사소한 약속들이 쌓인 덕분일 것이다.
나는 그리고 독서를 마치고 블로그 서평을 작성한 뒤 웨이트를 마치고 힘껏 페달을 밟았다. 오늘의 영상은 강용수님의 “마흔에 읽는 쇼펜하우어”의 담겨있는 내용과 함께 했다. 오늘 본 내용 중 기억에 남는 문장은 다음과 같다.
“밖이 아닌 안에서 행복을 찾아라.”
“우리의 모든 불행은 혼자 있을 수 없는 데서 시작된다.”
“고독을 사랑하는 사람만이 자유를 사랑할 수 있다.”
하와이 대저택
아직 읽어보지 못한 쇼펜하우어의 책이 머릿속에서 맴돈다. 많은 자기계발 전문가들이 추천하는 책이니, 언젠가는 꼭 읽어보겠다는 다짐을 하며 오늘의 문장을 떠올렸다. 샤워를 마치고 준비를 하던 중, 막내가 갑자기 볼링에 가겠다고 나섰다. 예상치 못한 제안이었지만 아내도 나도 흔쾌히 동의했다.
특히 나로서는 막내의 참여가 고마웠다. 아내 혼자 볼링을 치는 것보다 함께하는 사람이 있으면 더 재미있고 덜 지칠 것이 분명하기 때문이다. 평소 볼링장을 가면 아내가 혼자 공을 굴리는 모습을 옆에서 지켜보며 조용히 매니저 역할만 하곤 했는데, 막내가 함께라면 그 풍경도 한층 더 활기차게 변할 것이다.
오후 5시까지 볼링장에서 진행하는 게임비 할인 이벤트가 우리 가족의 계획에 딱 들어맞았다. 4게임에 1만 원, 혹은 6게임에 1만 2천 원이라는 알찬 조건. 평소 같으면 아내는 4게임만 해도 힘들어할 텐데, 오늘은 달랐다. 막내가 먼저 6게임을 제안했고, 아내는 흔쾌히 동의했다. 그 모습을 보니 문득 생각이 스쳤다. 아내의 체력이 거의 회복된 것이 아닐까?
얼마 전 까지만 해도 4게임도 벅차 했던 아내가 지금은 더 긴 경기를 즐길 준비가 되어 있다는 사실이 새삼 반가웠다. 몸이 회복되니 마음도 한결 가벼워진 듯하다. 우리 가족은 그렇게 게임의 시작 버튼을 눌렀다.
이번 주 일요일에는 볼링장에서 개최하는 개인전에 참가할 예정이다. 아내는 지금 그것을 목표로 연습을 하고 있다. 오늘의 모습을 보니, 이번 경기는 꽤 기대해도 좋을 것 같다. 그동안의 연습이 결실을 맺어 좋은 결과로 이어지길 바라는 마음이 자연스럽게 든다.
볼링장이 주는 소소한 즐거움 속에서 우리는 함께 시간을 나눈다. 가족이라는 울타리 안에서 각자의 리듬이 조화를 이루는 순간, 일상의 무게는 한결 가벼워진다. 오늘도 우리는 그렇게 하나의 게임을 시작했고, 그 속에서 서로의 존재를 확인하며 웃었다.
대얼마 전 까지만 해도 하우스볼을 대충 굴리며 즐기던 막내가, 갑자기 볼링을 제대로 배워보고 싶다는 말을 꺼냈다. 그 말에 조금은 놀랐지만, 동시에 흐뭇한 마음도 들었다. 함께하는 시간이 늘어나겠다는 기대감도 있었지만, 무엇보다 막내가 무언가에 진지하게 도전하려는 모습을 보게 된 것이 반가웠다.
막내의 열의를 보며 내가 쓰던 볼 중 손가락 크기가 맞는 것을 골라주고, 볼링 아대도 하나 챙겨주었다. 그리고 기본 자세부터 코치하기로 했다. 그 순간 나는 모든 스포츠가 그렇듯, 처음에는 대충 해도 나름의 성과가 나오는 듯 보이다가 본격적으로 배우기 시작하면 점수나 성적이 떨어지게 된다는 사실을 떠올렸다.
이 과정은 늘 비슷하다. 점수를 올리려는 욕심과 바른 자세를 익히려는 노력이 충돌하면서 생기는 갈등. 점수에 연연하다 보면 자세를 놓치게 되고, 자세를 신경 쓰다 보면 점수가 떨어진다. 그리고 많은 사람들이 이 지점에서 좌절하고, 결국 포기해버리곤 한다. 나는 이런 과정을 너무 잘 알고 있었다.
그래서 막내와의 첫 레슨에서 가장 먼저 말해준 것은 바로 그것이었다. “점수에 집착하지 말 것.” 본격적인 자세를 배우기 시작하면 당연히 점수가 떨어질 것이다. 하지만 그것은 오히려 성장의 신호다. 중요한 것은 점수 대신 자세에 집중하는 일이고, 지금의 하락은 더 나은 미래를 위한 투자라는 점을 이해하는 것이다.
막내에게 이 이야기를 전하며, 당분간 점수가 오르지 않더라도 포기하지 않겠다는 다짐을 받았다. 그 약속이 막내의 마음을 얼마나 강하게 붙잡아 줄 지 알 수는 없지만, 그것이 시작이다.
볼링은 단순한 스포츠가 아니다. 그것은 반복과 인내, 그리고 꾸준함의 예술이다. 잘못된 습관을 바로잡고, 기본에 충실하는 과정을 통해 점차 나아지는 자신을 발견하는 것이 핵심이다. 그런 점에서 막내와의 이 코칭은 단순히 볼링 기술을 가르치는 시간이 아니라, 끈기와 인내를 함께 배우는 순간이 될 것이다.
막내에게 집중하며 코칭을 이어가던 중, 옆 레인에 엄마와 초등학생으로 보이는 아들이 함께 볼링을 치게 되었다. 첫인상은 약간 서툴지만 즐거워 보였다. 어머니는 볼링 초보인 듯했고, 아들은 오늘 볼링을 처음 접하는 것처럼 보였다. 작은 손으로 공을 들기도 버거운 아들은 스텝 없이 공을 던지는 데 그쳤고, 공은 대부분 가터로 향했다.
그런데도 어머니는 아들에게 이렇게 던져라, 저렇게 던져라 하며 열심히 가르치려 하셨다. 하지만 기본기가 전혀 없는 아들에게 그 모든 조언은 그저 벽에 부딪히는 말처럼 보였다. 시간이 흐르자 아들의 표정엔 흥미를 잃어가는 기색이 역력했고, 어머니 역시 살짝 짜증이 나는 듯 보였다. 물론 이는 내 추측에 불과했지만, 그들의 상황이 눈에 띄는 것은 분명했다.
그때 문득, 막내를 코칭 하던 내 시선에 아들이 들어왔다. 막내의 자세와 동작을 유심히 바라보는 모습에서 그는 이미 배울 준비가 되어 있는 것처럼 보였다. 잠시 망설였지만, 결국 다가가기로 했다.
“혹시 괜찮으시다면, 기본기만 조금 알려드려도 될까요?”
내 제안에 어머니는 흔쾌히 허락하셨다.
일단 아들의 손 크기에 맞지 않는 하우스볼을 교체해 주었다. 손가락 구멍이 작아 공이 제대로 굴러가지 않는 것이 첫 번째 문제였다. 다음으로는 간단히 4스텝을 가르쳤다. 너무 자세히 설명하면 오히려 부담이 될까 봐, 최소한의 기본만 알려주었다. 손의 위치와 공의 궤적을 자연스럽게 연결하는 방법을 약 5분 정도 설명했다.
내 자리로 돌아와 지켜보니, 어린아이라는 점은 분명 강점이었다. 그의 습득력은 놀라울 만큼 빨랐다. 몇 번의 시도 끝에 그는 첫 스트라이크를 쳤고, 커버도 가끔 성공시켰다. 그 순간 그의 얼굴에 다시 흥미와 자신감이 번지는 것을 보았다. 아이의 성공에 어머니도 활짝 웃으셨고, 나는 그저 미소를 지었다.
옆 레인에서 어머니와 아들의 표정이 눈에 띄게 밝아졌다. 조금 전 까지만 해도 흥미를 잃어가던 아들은 자신감이 생긴 듯했고, 어머니 역시 짜증 대신 웃음이 가득했다. 가끔 아들이 스트라이크를 치거나, 예상보다 좋은 결과를 냈을 때 둘은 손바닥을 마주치며 하이파이브를 했다. 웃음소리가 레인 위를 가볍게 떠다녔다. 그 모습을 바라보며 나도 모르게 입가에 미소가 번졌다.
사소한 행동이었다. 그저 공을 다시 골라주고 기본적인 자세를 알려준 것뿐이다. 하지만 그 작은 관심이 한 아이와 그의 어머니에게 즐거운 경험을 만들어줄 수 있었다는 사실이 새삼 놀라웠다. 별다른 노력이 아니었는데도, 내가 건넨 도움으로 누군가가 행복해하는 모습을 보니 마음이 따뜻해 졌다.
나는 그들의 행복을 바라보며 깨 달았다. 우리가 다른 사람들에게 베푸는 작은 관심과 도움이 때로는 우리가 생각하는 것 이상으로 큰 변화를 가져올 수 있다는 것을. 그 작은 행동이 누군가에게는 더 즐거운 하루를 선물할 수도 있다는 것을.
오늘 나는 그것 만으로도 충분히 행복했다. 내 하루의 한 부분이 그들 모자의 웃음 속에 녹아 들어갔다고 생각하니, 마음 한 편이 뿌듯해 졌다. 우리의 삶은 결국 이런 작은 순간들로 채워지는 것이 아닐까. 웃음과 함께한 이 짧은 시간이 그들 뿐 아니라 나 에게도 오래 기억될 행복으로 남을 것 같다.
결국 아내와 막내는 예정대로 6게임을 완주했다.
게임이 끝나고도 아내는 상기된 표정으로 말했다.
“확실히 내가 체력이 좋아졌나 봐, 더 치고 싶은 마음이 드네, ㅎㅎㅎ”
그 말에 나도 웃음이 나왔다.
“프로님! 오늘은 여기 까지만 하시지요. 내일도 오셔야 하고, 모레는 시합이신데.”
그제야 아내는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아! 모레 시합이 있군요. 알겠습니다.”
그렇게 우리는 가벼운 농담과 함께 볼링장을 떠났다. 아내의 체력이 회복되고 있다는 사실은 단순한 신체적 변화 이상으로 우리 가족에게 긍정적인 에너지를 주는 것처럼 느껴졌다. 그녀가 볼링을 즐기며 밝은 얼굴로 시간을 보내는 모습은 나와 막내에게도 작은 행복이 된다.
집으로 돌아와서는 어제 마트에서 사 온 음식으로 간단히 저녁을 해결했다. 특별할 것 없는 메뉴였지만, 함께하는 저녁은 언제나 만족스럽다. 그리고 늘 그랬듯 각자의 시간을 가지며 하루를 정리했다. 아내는 시합 준비를 위해 볼링 관련 영상을 보고, 나는 책상에 앉아 조용히 오늘의 하루를 되돌아봤다.
오늘 하루는 어쩌면 아주 평범한 날이었을 지 모른다. 하지만 아내와 막내가 함께한 볼링장, 옆 레인에서의 짧은 인연, 그리고 소소한 저녁 식사까지, 이 모든 것이 합쳐져 특별한 기억으로 남았다.
가족이라는 것은, 이런 평범한 일상을 함께하며 쌓아가는 것이 아닐까. 서로에게 기대고, 함께 웃고, 사소한 순간에 고마움을 느끼는 그런 하루들이 쌓이고 쌓여 우리의 이야기가 만들어진다. 오늘도 그 하루 중 하나였다. 그리고 그 것만으로도 충분히 행복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