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에 큰아이가 다니는 중학교에 영양사 선생님께서 새로 오셨다.
아마도 20대이신 것 같고, 아주 멋쟁이라고 한다. 이후 점심 메뉴가 다양해져서 예전엔 관심이 없던 식단표가 요즘 아이들 사이에서 대화의 주제가 될 정도이다.
오늘의 점심 메뉴에는 무려 '회오리핫도그'가 포함되어 있다.
회오리 핫도그는 고속도로 휴게소에서 쉽게 볼 수 있는데 페스츄리 빵을 사선으로 감싼 길쭉한 소시지를 기름에 튀겨서 먹는 간식이다.
그러니까 그 모양이 꽤 긴 형태인데, 어제 아이들의 화두는
'과연 한 사람당 회오리 핫도그 하나씩 전부 나오는가!' 였다. 귀여운 먹보 녀석들.
절반만 줘도 좋을 것 같고, 1/3까지도 괜찮고, 1/4은 너무 아쉬워서 안나오느니만 못할 것 같다는 것이 중론이다. (ㅋㅋㅋㅋ)
아이는 기대감을 품고 학교에 갔다.
(귀여워 귀여워 먹을 때 귀여워)
딸: 엄마 대애박이야!
엄마: 뭐가?
딸: 회오리 핫도그가 절반씩 나왔어!!!!!!!!
'대박'이라는 단어하나로 십여 가지도 넘는 감정을 표현하는 아이의 어휘가 거슬리지만
신이 난 아이에게 찬물을 끼얹을 수는 없는 법.
오늘 나온 회오리핫도그는
양이 적당했고, 우려만큼 눅눅하지도 않았고, 겉에 뿌려진 powder형태의 소스도 충분해서 아이들의 기대치를 상회했던 모양이다.
회오리핫도그에 이어, 역시 선생님이 MZ세대라 그런지 메뉴가 대박 좋고, 덕분에 학교 생활에 활력이 생겼다며 칭찬릴레이가 펼쳐진다. 선생님이 우리 학교로 오신 건 정말 대박이라고.
800명이 넘는 학생들을 먹이기 위해 400개가 넘는 회오리핫도그를 튀겼을 식당 선생님들의 노고가 오죽했을까. 그 번거롭고도 뜨거운 열기에도 불구하고 '기꺼이' 그 일을 하신 선생님들의 정성이,
어제와 다른 메뉴에 오늘도 담고 있을 그들의 마음이, 마치 어떤 형태를 이루어 만질 수 있는 실재처럼 생생하게 느껴진다.
정해진 예산에서
요즘 아이들이 어떤 메뉴를 좋아할까 관심 있게 찾아보고, 골똘히 고민하고, 셈을 하고, 계산기를 두드려보다 고개를 젓기도 하고, 해결할 수 있는 방법이 있을까 또다시 고민하고, 결국은 가능성을 발견해 냈을 MZ세대 선생님의 모습이 상상됐다.
새로 오신 영양사 선생님께서 일을 더 많이 만든다며 핀잔하는 게 아니라, '아이들이 좋아하겠네!' 하는 마음을 한데 모아 열심히 조리실을 가동했을 조리사선생님들의 모습도 떠올랐다. 아마 이것은 상상이 하니라 내가 실제로 보지 못했을 뿐 학교식당이라는 공간에서 일어나고 있는 실체일 것이다.
오늘 많은 학생들이 가정에서 '우리 영양사 선생님 대박'이라고 이야기했을 것만 같다. 전해 들은 많은 부모님들께서 아마도 지금 나와 비슷한 표정을 지으며 아이들에게 '선생님께 감사하다'는 말을 하겠지.
덧붙여 아이에게 이런 말을 했다.
네 이야기를 들으니, 엄마는 선생님을 만나 뵌 적도 없지만 무척 감사하고 응원하는 마음이 생긴다.
세상에 진심을 내어 놓았을 때, 세상도 너에게 좋은 에너지를 내어준다는 것을 기억했으면 좋겠다.
애정을 담아 내 몫의 일에 최선을 다했을 때
그 진심 어린 행동이 상대방에게 이로움을 낳고,
그 이로움의 에너지가 부메랑처럼 나에게 돌아와 마음 한 곳에 짜르르 느껴질 때,
'노동'으로 인한 보람과 기쁨을 맛보는 순간 중 하나이다.
수고로울 로, 움직일 동이라는 한자가 조합된 노동(勞動)이라는 단어는 사람이 생활에 필요한 물자를 조달하기 위하여 스스로 몸과 정신을 움직이는 행위를 의미하므로 주체성이 강조되어 있다.
부지런할 근, 수고로울 로 한자로 조합된 근로(勤勞)의 의미는 사용자와의 약정에 따라 그 내용을 성실히 이행하는 수동적 의미가 포함되어 있다.
일상생활에서 가사노동대신 가사근로, 정신노동 대신 정신근로라는 말을 쓰지 않는 것을 떠올리면 두 단어의 차이를 느낄 수 있을 것이다.
반가운 표정으로 밥을 먹고, 신나게 조잘대는 아이들의 모습이 선생님들께 노동의 동력이 되었으리라.
잠시, 나의 가사노동에 대한 동력을 생각해 본다.
삼재를 살아가는 오늘의 생각_25)
진심을 진심으로 받으면 세상에 좋은 스승이 많아진다.